은행잎을 날리며 - 晩秋旅行 落穗
1960년대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半世紀 전 10월의 경복궁 뒷담 길은 지금의 청와대 정문이었는데 그 길을 걸어 어머니와 나는 國展[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다녀오곤 했다. 吳之湖의 熱帶魚를 본 것도 그때였다. 야트막한 오르막에는 은행나무들이 줄지어 섰고 그 노란 잎이 우수수 가을바람에 휘날릴 때마다 그만큼 파란 하늘이 얼굴을 내밀곤 했었다. 거리의 청소부는 대빗자루로 인도의 은행잎을 쓰러 손수레에 담곤 했었다.
‘얘- 저기 좀 봐라!’
어머니가 손으로 입을 가리시고 미소를 띤 그곳엔 한 청소부가 쓸기를 포기하고 빗자루로 한 잎 두 잎 헤적이며 은행잎을 헤아리고 있었다.
따스한 가을 햇살-그리고 샛노란 은행잎과 짙푸른 가을하늘 그리고 쌓이는 은행잎을 한적하게 헤아리는 청소부!...100점의 그림보다 그 장면은 가을을 떠올릴 때마다 지워지지 않는 영상이다. 반세기 전의 흑백시대에서!
두 대의 관광버스가 앞서 달린다.
반세기만에 만나는 어렸을 적 친구들이 만추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기억의 저편에 있던 친구들 그리고 낯선 그 아내들...아마 모두들 손자를 둔 만년의 만추여행...시골에 사는 나는 3호차가 되어 승용차로 그들의 뒤를 따른다. 청령포를 지난 버스는 동강을 돌아 멀리 가버렸다.
‘가랑잎이 날리는 소리가가 참-좋네!’
낮술을 한 잔하는 바람에 핸들을 대신 잡은 아내가 한마디 한다.
‘음...’
은행잎이 날리고 파란 하늘이 태백준령을 가로지른 가을길은 잠시 지나온 길을 떠올리게 한다. 지는 가을 잎도 파란 하늘도 잊고 살아온 시절...
강원도를 지나 봉화에 들어선 휴게소는 인적이 없는데 버스서 내린 친구들은 잠시 허리를 펴고 있다. 노란 은행잎이 깔린 그루터기에 부끄러움도 잊은 채 두 부인네가 벌러덩 누워 포즈를 취한다. 너나없이 카메라의 렌즈가 모여들고 렌즈 안에서 두 소녀가 활짝 웃고 있다.
아내를 童心으로 돌아가게 하는 남편은 能力이 있다. 아니면 남편에게 동심을 일깨우는 아내가 능력이 있는 것일까? 모두들 그 남편 K를 돌아보고 그도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었다.
‘K는 장개를 잘 간 것이여!!’
모두들 한 마디 한다. 아무튼 다시 보니 K는 男性의 性의 魅力을 구석구석 갖추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불영단풍터널을 장난감 같은 빨강버스는 구비 돌고 푸른 바다를 끼고 해어름을 달린다. 그리고 저녁에 이 부부는 ‘浪漫에 대하여’를 우리에게 선물했다.
老年이 되어 한 때 奉天으로 불렸던 瀋陽에서 中國語를 배운 일이 있었다. 젊은 선생님은 교정의 단풍이 아름다우니 하교 길에 꼭 보러가기를 당부했다. 교정에 줄지어 선 야트막한 은행의 노랑잎은 그저 그랬는데 중국학생들은 그 노랑잎에 감탄을 자아내 마지않았다.
‘한국사람들은 저 알을 먹는다지요?!’
‘음...’
중국천하라는데 중국도 어찌 먹는 곳이 없겠는가만 이곳에서는 그저 그 물든 잎을 보는 것이 전부인 모양새였다. 山이라고 찾아볼 수 없는 이미 우리로서는 한 겨울인 삭막한 滿洲벌판의 은행잎!
지금 우리 집에도 은행이 한 그루 있다. 새벽이면 길 위로 늘어진 그 은행잎을 쓸어 모은다. 엊그제 立冬에는 그 알을 대충 쓸어 모아 연못가에 쌓아두었다. 보통 霜降에 그 은행을 털곤 했는데 올해는 알도 잎도 예년만 못 하다. 하늘이 맺어준 그 새하얀 은행 알...그리고 껍질을 까면 연록색의 생명! 그것을 거두기에도 吟味하기에도 짬이 없었던 긴 겨울 같던 半世紀! 올 겨울엔 그 銀杏을 다듬어 ‘장개 잘 간 K’에게 한 움큼 보내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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