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중국인의 품성 : 섬세함에 대하여... [심양의 추억 2]

양효성 2012. 1. 31. 18:31

                       

                        중국인의 품성 : 섬세함에 대하여...

                                                                                        [심양의 추억 2]

 

 

심양의 겨울은 추웠다. 零下 20度는 기본이었다. ‘만주벌판’이라는 말 그대로 심양에는 이렇다 할 산은 그만 두고 언덕 비슷한 것도 눈에 뜨이지 않았다. 랴오닝의 성도이자 7백만이 살고 있다는 심양은 건물의 지붕을 빼고는 모두 하늘이요 땅이요 地平線이었다.

 

그래도 실내는 겨울 동안 영상 18도를 유지한다는 것이 시정부의 방침이었다. 해가 뜨면 거침없이 대륙을 횡단하는 시베리아의 북풍이 파란 하늘을 투명하게 화살처럼 가르고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그런 상황에 36度를 지탱하는 생각하는 난로를 창조한 조물주의 위대함에 새삼 고개를 숙이곤 했다.

 

이런 날에 고마운 것은 말할 것도 없이 태양이었다. ‘가자! 東方으로!’ 라는 이름으로 ‘브라디보스톡’이라는 이름을 짓고 ‘해 뜨는 땅’으로 ‘日本’이라는 國名을 만든 사람들을 실감하곤 했다.

 

잿빛 구름이 하늘을 가리는 날은 견디기 어려웠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은 이런 날 북구의 겨울을 느끼기에 가장 좋은 친구였다. 메이옌팡[梅艶芳]이 李白의 靜夜思를 노래로 불러주면 새벽에는 서리 대신에 흰 눈이 내리고 그 눈은 봄이 와도 녹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急就章 번역 일을 틈틈이 돕던 예즈가 원형의 틀에 반투명 천을 끼워 새와 꽃을 그린 액자를 창틀에 놓아 주었다. 花鳥圖라고 할까? 너무나 흔하게 보아 온 그리고 그 틀도 조잡하여 나는 시큰둥하였다.

    ‘돈이 아깝지도 않니?! 그런 돈이 있으면 책이라도 한 권 사고 시간이 있으면 책방에... ’

    ‘.......예쁘잖아요?!...... 책은 도서관에 가면....... ’

대학원생이라지만 손녀벌이나 되는 외국 소녀는 뾰루퉁 하면서도 미소는 잃지 않았다. 善意의 샘물이 마음의 深層에 자리 잡고 있으면 惡意도 미소로 받아들인다. 간난아이의 天眞爛漫이 그럴 것이다. 아무튼 누구나 말하는 중국인의 樂天主義라는 것이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낙천주의로 추위도 봄날을 기다리는 희망으로 눈밭에서 새소리를 듣고 얼음 속에서 꽃을 볼 수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것이 모여 추위에 떨고 있는 외국의 노인네를 걱정해주는 纖細[섬세]함으로 표현되었는지도 모른다.

 

난방이라고는 무쇠로 된 온수파이프가 벽에 붙어 있을 뿐, 전기담요와 난로로 손을 녹이며 뜻도 모를 사전을 뒤적이며 겨울은 더디게 지나갔다. 몇 년 전만해도 중국에는 형광등이 희미해지다가 꺼지곤 했다. 전기사정이 좋지 않았던 것이다. 그 뒤로 나도 13억이 어렵게 나눠 쓰는 전기 생각을 하며 이불을 하나 더 덮기로 했다. 자금성에서 보았던 황제의 이불을 생각하면 아마 두 배는 더 두꺼운 솜이불 속에서 솜이불이 좋기는 좋다는 생각을 되새기곤 했다.

 

병자호란 이후 한국의 포로들도 지나쳤을 北市場에는 비닐봉지에 술을 담아 저울대로 1斤에 얼마씩 팔기도 하는데 꽃시장도 성황이었다. 백합에 카네이션 장미 수선화 등등 봄은 여기 먼저 와있었다. 노란 香을 풍기는 난초는 싼 것이 40위엔이나 했지만 나는 가끔 그 蘭盆을 사기도 했다.

 

집으로 돌아오며 잡다한 생활용품과 이 그림틀을 짐이 되었다. 혹 국내학자들에게 도움이 될까 해서 수 십상자의 책을 꾸리다 보니 부서질 것이 뻔 한 이 그림틀을 들었다 놓았다 하다가 결국은 가져왔다.

 

벌써 해가 여러 번 바뀌고 그 사이 나는 도시에서 이제 시골로 또 이삿짐을 옮기고 첫 겨울을 맞고 있다. 해가 바뀌었지만 내 짐은 그냥 집안으로 옮겼을 뿐 정돈 된 것이 없다. 그러던 사이 우연히 눈에 띈 그 액자가 커튼도 달지 않은 창틀에 놓여졌다. 아침 햇살을 받으면 그 어린 시절 수틀에 한 땀 한 땀 놓아가던 고모의 들꽃이 떠오르곤 한다. 그리고 마음이 다수어지는 것이다.

 

내게는 딸아이가 있다. 그리고 그 딸아이의 딸이 주말이면 집에 와서 논다. 그림을 그리고 동화책을 읽고 밤에는 하늘의 별을 본다. 아침 햇살에 비치는 꽃과 새 - 그리고 할아버지보다 더 어려운 할아버지를 걱정하고 제 빵을 나누어주는 그런 섬세한 아이로 자랐으면 한다. <*>

 

    

이 쪽창에서 겨울 아침 해는 동산의 숲에 가려 더디 뜬다.

 

그렇지만 이 어두운 방에 새는 먼저 날아와 울고...

 

꽃은 먼저 핀다.

 

이 꽃의 향기와 새의 울음을 듣는 중국인의 섬세함도 또 그것을 사서 창틀에 놓아두는 중국인의 섬세함도

모두 어려운 시절을 역사의 이름으로 이겨낸 심성에서 비롯되는 것일 것이다.

겨울이 길어도 봄은 다시 온다는 말은 우리에게도 다를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