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 마시는 다육이
그러던 어느 날 : 게으른 사람은 생명을 돌볼 수 없다. 농부, 의사, 경찰, 등대지기 모두들 생명 앞에서 밤잠을 설치고 끼니를 거르며 그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게으른 사람은 생명을 돌보기는커녕 죽이기 일쑤다.
지금 내 일이래야 강아지 밥 주고 빈둥거리는 것이 일과인데 혼자 있을 때 차려놓은 내 끼니조차 거르고 빈둥거리기 일쑤이니 내가 밥을 굶으면 목줄에 매인 강아지도 함께 굶는다. 일주일에 한번 물주면 되는 난초를 몇 번 길렀는데 그 물조차 주지 않아 시들고 마르고 끝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는 살아있는 것을 기르기 싫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다육이를 한 분 사게 된 이야기는 이렇다.
골동품공동경매가 열린다는 친구의 권유에 이끌려 천안에서 1번 국도를 따라 소정면 운당리의 갈림길에 이르자 길가에 비닐하우스가 늘어서있고 그곳이 바로 경매장이었다. 생전 처음보는 경매의 모습은 흥미로웠다, 열기가 한참 오르자 머리를 식힐 겸 잠시 밖으로 나서자 바로 옆의 비닐하우스에 정갈한 장독이 진열되어있고 그 하우스 안에는 다육이들이 자라고 있었다.
- 이 겨울에 어인 꽃인가?
국화차 : 그런 사이 안주인이 미소를 띠고 ‘들어와 보세요!’라며 인사를 건넨다. 웃음과 인사가 인색한 동네에서 겨울과 꽃과 반가움은 언 손을 훈훈하게 만들었다. 주인은 먼저 국화차를 한 잔 건넸다. 코에 어리는 향기와 두 손에 감싸인 온기가 겨울을 녹였다. 국화차는 중국인들이 겨울철에 즐겨 마시고 茶山이 아들에게 준 편지에도 나오는 多情한 차다. 눈을 밝게 하고 감기에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나도 북경에서 즐겨 마시던 차다. 국화의 노란 꽃 이가 더운 김에 헤엄치듯 풀리면서 비닐 벽에 걸린 그림이 눈에 들어오고 멱서리에 광주리며 오지그릇이며 할배의 손때 묻은 살림살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특히 비닐 벽에 걸린 유화 한 점도 심상치 않았다.
바깥주인은 천안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것이 취미라 하면서 친구가 그려준 그림이라고 거든다.
장독 옆에 둥그렇게 물을 가두고 수초를 기르고 있는데 그 사이로 개구리가 헤엄치고 있다. 금붕어도 몇 마리 보이는데 ...
‘거기 고기가 몇 마리 쯤 있을 것 같아요?!’
안주인의 물음에 글쎄- 서 너마리...이런 추측은 어이없이 빗나갔다.
‘한- 200마리쯤 될거예요...’
난로가의 고목분재 잎은 힘겨워보였는데 꽃이 피면 아름답단다. 그 마른 가지에 철쭉이 피는 상상을 해보았다. 정말 필까? 봄이 오면...한참 들여다보며 年輪-歲月-歷史...그런 생각도 떠올랐다. 만약 이 분재를 서재의 창틀에 놓아둔 학자가 있다면 그 학문의 경지를 가늠해볼 수 있겠다는 그런 생각도 해보았다.
‘물건을 사서 맡겨두고 가는 손님도 있어요...’
주인의 말에 용기를 내어 삭아서 철심을 박은 통나무절구, 멜빵 없는 지게, 손잡이가 달린 다리미를 헐값에 사서 맡겨 두었다.
비닐하우스를 가득 메운 다육이를 바라보며 ‘茶향기를 맡고 사는 너는 참 행복하겠구나...’중얼거리며 다육이는 귀족이나 기르는 것으로 내 분수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내게 주인은 국화차를 한 줌 약봉지에 넣어 주었다. 그 향기는 집에 돌아와서도 은은했다.
이틀 뒤 : 다시 ‘茶마시는 다육이’에게 들르게 되었다. 물론 이번에는 車를 몰고 지게와 절구를 찾아오기 위한 심산이었다. 눈이 내릴 듯 을씨년스러운 날씨에 목줄기를 타고 넘는 茶는 따스했다. 손님들이 한 둘 다육이를 사가면서 정담을 나누곤 했다. 물은 일주일 뒤에 한 방울만 뿌리 곁에 주라든지, 여행을 다녀와도 다육이는 살아있다든지, 작을 화분을 사서 자라는 재미를 보라든지...詩人이 죽고 信義가 죽고 政治가 죽고 古典이 죽고 宗敎가 죽고 生命이 시드는 시절에 沙漠에서 자란 可憐한 다육이는 서서히 내게 蘇生하기를 祈禱했다. 나는 물끄러미 다육이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어떻게 물을 주지 않는데도 살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고 보니 나도 다육이를 길러본 일이 있었다. 이태 전인가?! 새집을 짓고 어머니가 가꾸시던 채송화밭을 다시 일궈보려고 백방으로 채송화를 찾아보았지만 그것도 쉽지 않았다. 씨앗은 메마른 땅에서 터져 나올 가망이 없고 모종도 구하기 어려웠다. 이웃사람들도 도 이상 돈이 안 되는 이 꽃을 돌보지 않았다. ‘세계’인지 그런 거창한 이름이 붙은 식물원에서도 그 모종을 구할 수 없었는데 ‘세계’만큼이나 비싼 입장료가 미안했던지 나오는 길에 손톱만한 다육이 한 뿌리를 기념품으로 돌려주었었다. 다듬이돌 위에 놓여있던 이 외로운 다육이를 사랑한답시고 머시깽이-부지깽이 두 꼬맹이들은 틈만 나면 물을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부지깽이가 장난을 치다 넘어지며 이 다육이를 엉덩이로 깔아뭉개고 말았다. ‘세계’라는 족보를 품고 태어난 이 고귀한 생명은 말간 물을 흘리며 처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같은 물건을 사더라도 어느 집의 물건은 쓸모 있고 또 오래 가서 골동품이 되기도 하지만 어느 집의 물건은 이내 망가져 쓰레기통을 배부르게 하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집 물건은 재수가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꽃도 강아지도 잘되는 집이 있고 그렇지 못한 집도 있다.
그러는 사이 : 싸리나무 광주리와 눈여겨 보아둔 다듬잇돌을 닮은 茶卓도 하나 고르고 올 가을 간장을 담글 독도 뚜껑[覆蓋]과 함께 자동차의 뒷자리에 옮겨 실었다. 쇠절구를 공이와 함께 또 실었다. 그리고는 잎을 피워버린 菊花위에 찻물을 더 붓고 이윽고 다육이들을 돌아보았다. 어머니는 가시 돋친 선인장을 기르고 여름이면 백합처럼 하얀 꽃이 달빛을 기다리며 피어나는 것을 바라보시곤 했다. 몇 년을 기르고 어느 해 여름이면 한 번 피는 그 꽃은 어머니의 歲月을 닮았다. 지금 찻잔에 가라앉은 노란 국화도 어머니의 風霜을 닮았다. 그 어머니는 지금 계시지 않는다. 비닐하우스의 천정에서인지 이슬 한 방울이 다육이의 잎에 떨어지고 부서졌다. 나는 그 물끼를 닦지 않았다.
‘선생님도 한 번 길러 보세요! 정말 물을 안 주셔도 돼요...그냥 한 포기 드릴께요?! 큰 걸 좋아하세요- 어린 걸 좋아하세요?’
사람들은 굳이 말을 안 해도 눈빛-몸짓-자태에서 사람의 속을 꿰뚫어 보기 마련이다. 나는 굳이 값을 치렀다. 그냥 얻은 것은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을 해가 가고 달이 차고- 歲月을 통해 깨달았기 때문이다. 집에 돌아와 부엌에도 놓아보고 거실의 창틀에도 놓아 보았다. 창밖엔 눈이 내리는데 이튿날도 그 다음날도 다육이는 파랗게 거기 그대로 있었다. 아주 오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사전을 뒤적여보았다. 다육이가 잎이 많아 그런 이름이 붙었나 했는데 물을 저장할 수 있도록 적응된 다육질의 두꺼운 조직을 지닌 식물이어서 多肉이었나보다. 仙人掌류는 줄기에만 물을 저장하며 잎은 없거나 있다 할지라도 아주 작지만, 龍舌蘭류는 주로 잎에 물을 저장한다. 대부분 뿌리가 땅속 깊이 넓게 퍼져 있으며 사막이나 비가 매우 적게 내리는 계절이 있는 지역에서 자란다고 한다.
사막이나 비가 매우 적게 내리는- 그렇다면 지금 내게 위로가 될 수 있는 이 한그루의 생명은 나와 많이 닮았다. 아무래도 다시 茶마시는 다육이를 한 번은 더 찾아가야할 것 같다. 그래서 명함에서 주소를 여기 옮겨 놓는다.<*>
영화농원
충남연기군소정면운당리19-1번지 2호
<전화>010-6392-4489
최영휘-박순화
눈내리는 겨울에도 다육이는 자란다
이 작은 沙丘[모래언덕]에 다육의 천국은 펼쳐지고...
앞줄 맨 완쪽 우주목이라는 이름이 붙은 다육이는 지금 내집 거실의 창틀에서 봄을 기다리고 있다.
이 수조에는 몇 마리의 고기가 헤엄칠까?
여기서 국화차를 마시는 다육이를 본다
벽에 걸린 유화를 바라보며-
이 철쭉 분재는 歷史를 느끼게 하는데-
이 다육이는 정말 꽃봉오리가 맺혀있다.
한 잔의 차가 겨울을 녹여주는 따뜻한 화원은 밖에서 보면 그저 평범한데...
소정면운당리의 길가에
매주 목요일과 일요일 경매가 열리는 골동품가게와 이웃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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