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살은 누구나 천재화가[머시깽이의 시골생활]
이제 다섯 밤만 자면 엄마가 와요. 어제는 광복절이었는데 할아버진 왕할아버지 생각이 나시나 봐요. 할아버지는 아이들이 시골에서 자라야한다고 늘 말씀 하시죠. 사람은 땅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70만년을 살아왔다고 하시면서 말입니다. 또 시골생활은 주말농장이나 체험학습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말씀하시곤 하죠. 더구나 어린애가 집을 짓는 것을 본 것은 평생 기억되리라고 흐믓해 하십니다. 동생은 그림으로만 보던 포크레인을 보고 신기해하고 저는 미장 아저씨를 쫓아다니며 수돗가에 제 이름을 쓰기도 하죠! ‘아가씨는 이런데 오면 안 돼요!’ 미장 아저씨는 손을 저으시지만 제가 이름을 쓴 걸 보시면서 웃고 계시죠.
‘아빠는 일곱 살에 한글을 배웠지만 저는 다섯 살에 한글을 익혔거든요!’
할머니는 글씨를 모두 거꾸로 썼다고 하시지만 할아버지는 공군레이다병사는 유리판에 숫자를 모두 거꾸로 쓴다면서 고개를 끄덕거리십니다.
집은 아직 완성되지 않고 이사도 하지 않아 우리는 왕할머니가 쓰시던 그릇과 이불로 피난살이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데크의 난간에 무수히 파랑색 볼펜으로 하트를 그립니다. 하트를 그리면 제 마음은 뿌듯해져요. 차를 마시면서 할아버지는 묻습니다.
‘데크[난간마루]는 무슨 색으로 칠하지?’
‘분홍색이요!’
저는 거침없이 말합니다. ‘분홍공주’라는 동화책을 읽어서인지 저는 분홍색이 좋아요. 그런데 그 동화는 분홍색만 좋아하던 공주가 다른 색도 좋아하게 되면서 끝이 납니다. 그래도 저는 분홍이 좋아요!
‘마루도 분홍이고 머시깽이 옷도 분홍이면 예쁜 머시깽이가 안 보이잖아?!’
저는 얼른 들어가서 하늘색 원피스를 입고 나옵니다.
‘어때요! 분홍색이 안 되면 무지개색으로 칠해요!’
그 사이 할아버지는 창고서재에서 엄마가 쓰시던 파스텔을 찾아오십니다.
할아버지는 하트마다 다른 색을 칠하면 예쁘다고 하시는데 제 생각은 달라요. 비슷한 색깔들을 모아서 타일처럼 네모반듯하게 칠하면 그 안에 볼펜으로 그린 하트들이 보이겠지요?!
날이 밝아 일어나자말자 난간으로 나가 마저 하트에 색칠을 합니다. 부지깽이는 할아버지 지팡이를 들고 혼자 놀고 할머니는 ‘우리 머시깽이 천재다! 천재!’ 흐뭇해하시면서 피카소가 어렸을 때 그림을 못 그려서 50이 넘어 아동화를 그리다가 입체파가 되었다고 하시면서 미술대학에 보내야겠다고 하십니다.
할아버지는 ‘저러다가 입학하면 학교를 옮겨 다녀야할지?!’ 걱정을 하십니다. 학교 벽에 낙서를 하면 안 되잖아요?! 다섯 살엔 누구나 천재예요. 우리에겐 자유가 있잖아요. 날이 들고 데크에 오일스텐을 바르면 제 하트는 지워지겠지만 그 위에 여섯 살의 하트를 그려도 된다고 할아버지는 말씀하셨어요.
아침을 먹고 나니 농부아저씨가 오셔서 무씨를 뿌리는 것을 보았어요. 또 어제는 너무 더웠는지 매미가 데크에 쓰러져 있었는데 할아버지가 바구니로 덮어두었다가 살려 보냈어요. 또 내가 똘똘이 고양이로 부르는 어미 고양이를 할아버지가 사진으로 찍었어요. 이제 들고양이는 점점 우리와 가까워지고 있어요.
우리는 낮잠을 즐기고 아침에는 새소리를 듣고 동녘에 해가 뜨면 서쪽에 희미한 달님이 미소짓는 모습을 보아요. 말벌이 나르면 가만히 있어야 되고 잠자리가 날면 손짓을 해도 되요. 저녁에는 거미를 보는 것이 재미있어요. 한손에 강아지풀을 들고 콩잎이 자라는 것을 보기도 해요.
엄마! 이제 다섯 밤만 자면 되는 거지요? <*>
할아버지는 하트에 색칠을 하라시지만 지 생각은 달라요!
아침에 일어나 타일하트를 마저 칠하고 있어요.
어때요?! 빨강-주황-보라색 타일 안에 하트들이 보이잖아요?!
부지깽이는 부지깽이 대신 할아버지 지팡이를 들고 놀고 있어요!
이제는 쉬야하고 응가를 어린이 변기에 하는 것을 보면 대견해요!
수돗가에 제 싸인이 있어요-
7월31일에 수도를 남들었나봐요.
저와 동생 이름이 보이시죠?!
할아버지는 꽃을 좋아 하시는데 노랑 메리골드가 너무 이뻐요-
가을에는 고구마를 캐고 그 왼쪽에 메밀꽃이 피면 '메밀꽃 필 무렵' 그 꽃을 볼 수 있겠죠?!
저 비닐밭에 김장을 할 무우하고 배추를 심고 그 옆에는 이미 메밀 싹이 나왔어요.
저 앞의 파랑지붕 창고서재에는 엄마와 왕할머니의 추억이 모두 남아 있어요.
앞발이 잘린 어미 고양이는 이제 우리를 무서워하지 않아요.
살려보내는 매미와 제가 그린 하트가 보이네요-
할아버지는 2층에서 제 그림을 내려다보시나 봐요-
엄마! 이제 다섯밤만 자면 되죠?!
우리는 여기서 잘 지내고 있어요- 안녕!!
이렇게 다섯밤만 지내면 엄마와 함께 잘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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