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를 벱니다 [오동촌가는길6]
오늘은 대만의 雙十節-寒露인데 앞집에서 일 년 내내 지은 벼를 벱니다.
예전에는 낫으로 베어 볏가리를 쌓아 露積을 했지요. 봉분처럼 말입니다. 날이 들면 볏단을 풀어 낱알을 훑는데 널찍한 판자 같은 무쇠판에 긴 톱날처럼 홈을 파서 그 사이로 벼를 한 움큼 씩 쥐고 훑어냈는데 그 도구를 稻扱[도급]이라고 했답니다. 벼를 뜻하는 ‘稻’에 ‘거두어 모으다. 收斂하다’는 뜻을 가진 ‘扱’이라는 한자였는지 모릅니다. 그 다음에 ‘둥글레라’고 둥그런 드럼통 같은 겉면에 철사를 구부려 고슴도치처럼 박아놓고 발판[페달]을 굴려서 그 힘으로 낱알을 훑어 냈고 또 모터를 달아 힘을 덜고, 그 다음에는 바람을 돌려 쭉정이를 날려 보내고 그렇게 벼를 터는 도구는 진화를 거듭했는데 요즘은 이 모든 일을 단번에 합니다.
‘기계가 벼를 베어 낱알을 모으면서 쭉정이는 뿜어 날려버리니 세상- 참!’
좋아졌다고 하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생각해보세요!- 저 기계가 1억이 넘는데 일 년에 500마지기를 수확해요. 1마지기에 5만원 씩 받으니까...얼마예요- 기름값에 인건비에 정비해야 하고 또 몇 년 쓰면... ’
그 기계는 낡고 삭아버린다는...그런 속내였다.
‘한 철 일하고 나면 어떻게 사는가?’
‘아! 이 사람이야 농사도 있고...또...아무 걱정 없어유...’
새참으로 맥주 한 컵...빵 한 조각...
벼를 베고 난 자리에는 기계가 가지런히 볏짚을 토해냈다. 그 벼는 소가 먹을 것인데 이 사장님이 거두어 가기로 했단다. 이것이 순익인지도 모른다.
일은 여기서 한 나절에 끝난 것이 아니라 벼를 말려 정미소에 싣고 가서 찧어야 비로소 쌀이 된다. 쌀을 말리는 것도 수분이 어느 정도 있어야지 깡마르면 안 되는데 정부에서야 15%로 수매하지만 17%정도는 되어야 밥맛이 난다고 한다. 예전에는 눈썰미로 지금은 건조기의 컴퓨터가 이 일을 하지만 주인의 눈길이 자주가야 벼는 잘 熟成된다. 이 마을에서는 그런 벼를 그대로 두었다가 먹을 때만 조금씩 껍질을 벗겨[精米] 밥을 짓는다. 그것도 조금 덜 벗기고 더 벗기고 하면서 현미를 만들기도 하고...
이 동네의 벼는 일조량이 적고 한냉하여 경기도의 유명한 쌀처럼 찰지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공기는 달고 골짜기의 물은 맑다.
‘萬病의 根源이 營養過多 아닙니까? 아- 옛날에는 밥심으로 살았지만...’
중국인들은 반찬을 먹기 위해 밥을 먹고 한국인은 밥을 먹기 위해 반찬을 먹었다고 또 누가 그랬었다. 요즘은 밀가루를 너무 먹어 쌀이 남아돈다고 한다. 어디서는 굶어죽는데 어디서는 풍년이 되어 공황을 걱정하는 그런 세상이다.
쌀은 밥도 되고 술도 된다. 또 熱을 내리게 하고 元氣를 돋우는 藥의 효능도 있다고 本草綱目은 말한다. 태국의 밥이 맛이 없다고 하지만 쌀품평회에서 1위를 한 품종도 있다고 한다. 영양과다와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며 밥을 털어 넣듯 급히 먹는 서울 사람을 생각해본다.
이번 겨울에는 이곳에서 나는 이 쌀을 달고 시원한 공기와 함께 천천히 吟味하려 한다. <*>
추석이 훨씬 지나 찬 이슬이 맺히고 무서리가 내리는데 여기서는 겨우 벼베기가 시작입니다.
올 여름 비는 무던히도 내렸지만 ? 글쎄? 작년보다는 수확이 많은 것 같은데...
순식간에 벼는 베어지고 낱알은 모두 옮겨져...
일년의 시름이 날아가는 순간에 농사 60년의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가고...
논 가운데서 새참을 준비하고...
벼벤 자리에 가을이 내려 앉았다. 다섯마지기가 한 배미로 합해져 비행장이 된 논에는 드러누은 볏짚만...
봉황산은 한층 우뚝 솟아오른다. 멀리 지붕만 보이는 우리집...
아직 가을을 기다리는 황금의 다랑치 논... 물은 맑고 공기는 달다.
기계가 들어갈 자리를 낫으로 베어놓고 다음 순서를 기다리는...
논둑에는 억새가 먼저 찾아와 주인처럼 올 수확을 가늠하며...
잘 익은 벼들을 바라본다.
이 억새처럼 사위어 가는 내 머리의 백발을 생각하면서...
다시 들판을 본다.
아침상에는 아직 햅쌀이 올라오지 않았지만...이제 곧 새밥을 지을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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