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그람의 무거움-홍승주의 ‘내 몸을 건너는 만월’
39회 배다리낭송회[2011년2월26일 土]
** 낭송회를 마치고 시인은 말한다.
시집을 부치려고 우체국에 들렀더니 무게가 250그람이라고... 앞으로 무게를 좀 줄여야겠다고 한다. 그 무게라는 말을 ‘禪僧이 話頭를 내려놓는다.’는 말로 나는 들었다. 선승이 어떤 경우에 화두를 내려놓는지 잘 모르면서 그런 생각이 문득 스쳐갔다. 하지만 250그람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독자들은 얼추 느낄 수 있다.
시인은 또 자신의 시를 객관적으로 보게 되었다고 한다. 거울에 자신을 비추면 말이 없고 또 모두가 반대인 것을 알게 된다. 우리가 시를 읽을 때 우리와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처럼 시인의 타인들에게는 다이아몬드의 結晶처럼 난반사를 일으키는지도 모른다.
그의 詩는 대개 對象의 동작이나 정지된 모습이 한 줄 소개되며 시작 된다.
우리는 그 대상에서 우리들이 이미 갖고 있던 이미지를 따라 가다가 시인의
고샅길에 이끌려 문득 새로운 풍경을 만나게 된다. 우선 한 편의 시를 읽어보자.
자루거미
고향집 엄마가 차에 실어준 자루에서 거미 한 마리 기어 나와 유리창 사이에 가느다란 줄을 잇고 있습니다.
차가 동네 어귀를 빠져 나올 동안 비긋는 처마 밑에 쪼그려 앉아 있던 엄마
자줏빛 꽃무늬 옷이 채송화만큼 낮아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 나는 자주 돌아보곤 했는데 빗줄기를 타고 온 것일까요 늙은 엄마는 어느새 젖은 길 하나를 허공에 띄워 놓았습니다.
그녀가 느릿느릿 풀리고 있습니다. 들깻잎을 담던 자루, 산비탈 수수밭이 들어간 자루, 오딧물이 든 자루, 검은 염소 울음을 울던 자루가 하염없이 풀어져 차 안이 출렁거립니다
목울대까지 차오른 늙은 엄마를 내 몸으로 여미고 여밉니다.
시속 백 킬로로 달리는 고속도로 위에서 몸을 지운 자루거미가 아슬아슬 흔들리고 있습니다.
** ‘고향집 엄마가 차에 실어준 자루에서 거미 한 마리 기어 나와 유리창 사이에 가느다란 줄을 잇고 있습니다.’라는 첫 행에 거미가 한 마리 나온다. 그 거미는 지금 흔들리는 공간에 있다. 故鄕의 어머니와 他鄕의 딸이 헤어지는離別의 끈을 거미는 아슬아슬하게 이어가고 있다.
그 거미에 어머니가 묻어 있다. ‘비긋는 처마 밑에 쪼그려 앉은 엄마’의 눈물은 거미가 늘이는 줄에 이슬처럼 맺히고 거미처럼 오그라든 그 어머니의 그림을 詩人은 여미고 또 여민다.
‘시속 백킬로’의 현대인들의 바쁜 삶속에서 어머니를 잃어버린 그리고 고향을 저버린 아픔을 詩人은 우주선에 갇힌 迷兒처럼 箱子[버스]안에서 되새기고 있다.
어머니는 채송화처럼 작아지고 들깻잎-수수-오디 등등의 고향은 스마트폰의 싸늘한 거미줄[web]속에서 표정을 잃고 있다. 이미 어머니를 저 세상에 보낸 사람에게나 아니면 저녁이면 아파트 경로당에서 돌아올 어머니를 모신 사람들에게나 이런 삶은 매우 삭막하다. ‘백킬로의 고속도로’위에서 우리는 어느 쪽이든 선택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기로에 서있는지도 모른다.
16회에 이곳에서 ‘먹염바다’를 낭송한 이세기 시인이 오랜만에 찾아와 이 시를 다시 낭송했다. 시인이 시인의 시를 낭송한 탓인지 반복해서 들은 탓인지 이 시는 인상에 남는다.
** 풋자두 한 봉지를 샀다.<풋,풋,풋>, 누구였을까? 그때 잘 마른 지붕위에 불꽃을 던진 이는? <불타는 우물>, 나는 돌과 돌 사이에 산다<間石洞>, 어둠속에서/ 담 밖을 넘보는/ 저 넝쿨 장미들<넝쿨장미는 고양이 울음을 운다> 등등 모두 이미지를 담고 있는 첫 행이다. 그 이미지를 간직해두었다가 한 호흡을 쉬고 전문을 새겨 읽는 것도 묘미가 있을 것이다.
** 배다리낭송회가 벌써 40회를 바라보고 있다. 개코 막걸리에서 선배와 술을 마셨다. 그리고 이 시를 다시 읽어보았다. 그리고 이튿날 술이 깨어 또 다시 읽어 보았다. 아마 다음에도 다시 한 번 읽어 보아야겠다.
月蝕
1
논물이 차오르는 봄밤 개구리가 운다 겹겹의 개구리 울음이 어머니 한숨을 물고 달아난다 어머니 사방으로 풀려나간다 탱자울타리를 넘어 논둑길을 돌아 미루나무를 친친 감는다 멀리 불빛이 깜박이는 신작로로 내달린다
껍데기만 남은 어머니
검은 밤이 부풀어 오른다
2
고양이울음이 담을 타고 온다 검푸른 담쟁이넝쿨 잎들을 훑으며 온다 고양이울음이 삼층 창문에 척척 달라붙는다 유리창에 담쟁이넝쿨처럼 뻗어 가는 고양이울음 잎사귀마다 울음을 펄럭이며 발톱을 세운다
달을 뭉텅뭉텅 베어 문 고양이가 쓰윽 입가를 훔친다
3
텅 텅 텅, 어머니가 빈 몸으로 떠 있다 .
** 꽃샘바람이 차다. 이 바람이 그치면 정말 봄꽃이 필까? 올 겨울은 너무 추워 바람이 그치고 또 겨울이 올까봐 겁이 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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