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의 시낭송회
‘누구나 詩人이 되는 날’ - 제37회 배다리詩낭송회
‘이번 마지막 토요일이 크리스마스네요! 시낭송회는?’
‘그럼 당연히 하지요!’
30년만의 추운 성탄절이라는데...신앙으로서의 종교에는 소속하지 않은 나로서는 생각해보니 평생 처음 첫 성탄나들이인지도 모른다. 정말 추운 날씨다.
입구에 ‘누구나 시인이 되는 날’이라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6월과 12월에는 자작시나 애송시를 읊는 날이라는 것.
맨 처음 정송화 시인의 ‘서로 따뜻하게 하소서’가 낭송 된다. ‘십이월이 다시 돌아와 겨울은 그 냉정한 손으로 땅을 죽였습니다.’로 시작 되는 詩는 ‘순한 짐승들은 몸을 기대어 서로 따뜻해지려고 하고 - 아이들이 가슴이 따뜻해지고 절망이 죽고 노여움이 풀리어’ 생명의 겨울로 바뀌며 ‘예수여! 사람들을 서로 따뜻하게 하소서’로 맺어진다. 썰렁하던 다락방에 훈기가 돈다.
이어서 I 여고 여학생이 정송화 시인의 ‘당신을 내 삶의 끈으로’를 낭송한다. ‘사람을 그리워하는 나이가 지나갈 때 / 내 아들이 돌아오는 / 문을 열어두고 기다리며 살던 그때처럼 / 내 삶의 문을 열어두고 당신을 / 내 생명의 끈으로 살아가렵니다. / ’
잠시 인천여자친구를 만나러 온 청년이 다음에는 시를 지어 와서 낭송해보겠다고 들뜬 인사를 한다. 청년의 인천의 첫인상은 크리스마스의 배다리 헌 책골목으로 추억될 것이다. 아마 그의 詩가 ‘살을 에는 성탄절 배다리를 / 戀人의 손을 잡고 걸었네...’로 시작될지도 모른다.
단골손님[그분의 성함을모른다]은 ‘커피는 친구와 술은 여인네와...’로 시작해서 詩를 함께 공부하는 친구와 ‘뜨거운 커피 식을 때 까지 ... 두어 시간... 웃다가 深刻하다 하였다’는 일상을 노래한다. 그 시간을 늘리기 위해 ‘뜨거운 물’을 준비하는 과정이 眞率하다.
I 여고 여학생들도 이제 단골이 되어간다. 친구의 손을 잡고 또 소개로 자꾸 늘어난다. 이번에는 다섯 명이 팀을 짜서 나왔는데 김진희는 리더격이다.
일상의 마찰에서 오는 갈등을 ‘가슴에 피어있는 장미꽃 / 손끝이라도 닿을 수 있다면 ... 나를 구원해줄 수 있다면...’ 간절한 소망으로 ‘내가 忍耐해야할 것들을...’ 고민한다. 이 소녀에게도 이미 疏通이 필요한 나이가 되었나보다. 그리고 간절한 목소리로 ‘울게 하소서’를 부른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Georg Friedrich Handel (1685 - 1759)의 Opera ‘Rinaldo’에 나오는 아리아다. 그 가사에 자유la liberta! 라는 단어가 가슴에 와 닿는다.
Lascia ch'io pianga la dura sorte / 울게 내버려주오 슬픈 운명에
E che sospiri la liberta! / 나 한숨짓네 - 자유 위해
E che sospiri E che sospiri la liberta! / 나 한숨 짓네, 나 한숨 짓네 자유 위해
Lascia ch'io pianga la dura sorte / 울게 내버려주오 슬픈 운명에
E che sospiri la liberta! / 나 한숨짓네 - 자유 위해
Il duol infranga queste ritorte di' miei martiri / 이 슬픔으로 고통의 사슬을 끊게 하소서
sol per pieta, di'miei martiri sol per pieta. /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
Lascia ch'io pianga la dura sorte / 울게 내버려주오 슬픈 운명에
E che sospiri la liberta! / 나 한숨 짓네 자유 위해
E che sospiri E che sospiri la liberta! / 나 한숨짓네, 나 한숨짓네 - 자유 위해
Lascia ch'io pianga la dura sorte / 울게 내버려주오 슬픈 운명에
E che sospiri la liberta! / 나 한숨짓네 - 자유 위해
그 다음 손님은 중년의 숙녀다.
‘한 해가 가면 갈수록 虛無! ...오빠가 세상을 떠나고...버리는 연습을 해야겠다는...蒐集을 좋아했는데 버리는 것의 절실함’을 새삼 느낀다면서 ‘인천 여류 詩모임’이 있었다는 회상을 한다. 소책자를 만들고 다방이나 회관을 빌려 시를 읊었다는 그 모임은 이제 끊어진 듯 하지만 그는 이 다락방에서 다시 詩에 대한 그리움을 이어간다.
‘노을을 밟고 피로해 돌아오면 잠시 풀잎처럼 눕는다’로 시작되는 울림은 세련되고 잔잔하다.
이번엔 민희 학생이 고은의 ‘눈길’을 읽고 ‘넬라 판타지아’를 부른다.
Gabriel' Oboe가 원곡으로 '엔리오 모리꼬네'의 작곡, '킬링필드'를 만든 '롤랑 조페' 감독이 1986년에 만든 '미션[1986년 作]'의 삽입곡이라는데 ‘나는 환상 속에서 바른 세상을 봅니다. / 모두들 평화롭고 정직하게 사는 세상을 / 나는 항상 자유로운 영혼을 꿈꾸고 있습니다...’그런 노랫말인가 보다. 그저 미션을 보았고 그리고 잊혀져가는 이야기를 이 어린 학생들을 통해 되새김질해보는 오후는 신선하다.
다음에 수원에서 매달 찾아오는 두 아이의 어머니는 ‘노숙인 다시서기 지원센타’에서 밥도 지어드리고 노래로 불러드리고 다시 먼 길을 달려 와 성탄 선물로 아들딸의 바이얼린 二重奏를 준비했다. 고사리 손들이 연주하는 곡목은 獨逸國歌를 닮았다. 이어 어머니는 정송화의 ‘사제여!’를 낭송하다 흐느낀다. 다락방이 숙연해진다. ‘사제여! 당신은 누군가의 향기로운 바람으로 남습니다...옛 고향의 아랫목...고향으로 돌아가기에는 부끄러운...돌아오라는 기별도 없는 마지막 가족의 이름으로...’ 이런 구절에서는 그가 울지 않더라도 청중의 가슴은 이미 울고 있다. ‘사제여! 당신은 누군가의 목소리로 남습니다’ 이렇게 詩는 맺어진다.
이 시가 ‘어머니를 위한 성가[동아사]’에 실려 있다는 것을 뒤에 알았다.
열두번째로 처음 온 오가람 양은 윤동주의 새로운 길을 읊고 이어 학익동에 사시는 전문배씨가 ‘시인의 자리’에 등단한다. 11월11일을 고정희 시인과 더불어 ‘詩의 날’로 정했는데 빼빼로데이에 묻혀버린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매달 마지막 토요일이 詩의 날’이 되어가는 배다리를 칭송한다. 그는 젊어 보이는데 중학교 2학년때부터 아벨서점에 30년 경력이라고 한다. 그는 바보 같은 곰보 동냥아치 이야기를 구수하게 읊조린다. 다 같이 어려운 시절 할머니는 손자에게 10원을 안 주면서 동냥아치에게는 수제비를 한 양푼 끓여준다. 대신 보채는 어린 시인에게 天使 같은 곰보 동냥아치는 구걸한 돈 10원을 쥐어준다. 이런 한 토막의 아이러니는 布施의 人類愛에 共感의 微笑를 보내게 한다. 뚜르게녜프의 산문시 乞人에도 그런 同情이 있다. 이어서 1994년 강릉의 해변에서 故 김남주 시인과 낭송했다는 한일방직에서 재봉틀을 돌리던 ‘민자누나’를 낭송할 때는 그 미소가 겆힌다. 시인의 집에 貰들어 살던 누나는 救社隊에게 輪姦을 당하고 결국 문학산 소나무에 스스로 목을 매었다. 정신대 할머니도 살아났는데 환경이랄까? 상황이랄까? 타의에 의해 그는 生을 버렸다. 어떻게든 그는 살아있어야 했었다.
나는 이세기 시인의 시집 ‘언 손[창작과 비평]’을 소개하고 시집을 사서 읽자고 했다. 그의 시집에는 북성부두, 화수부두, 가좌동 등등 인천의 지명이 등장한다. 그 자리에 낙서를 하거나 술집의 벽에 쓰거나 그 자리에 그 詩가 남았으면 한다. 여러 사람들이 이어 쓰다보면 詩碑도 서지 않겠는가? 이세기 시인은 붓글씨에 능하다. 이어서 조혁신의 ‘삼류가 간다’가 우리 동네 이야기를 담았다고 한마디 했다. 곽여사가 배다리관통도로 저지를 위해 기자회견을 하는 장면이 며칠 전 인천일보에 크게 실렸었다. 이 사람들이 다락방의 역사를 만들고 또 풍부하게 한다고도 했다. ‘裏面紙에 쓰는 크리스마스카드’는 그에게 안부를 묻는 이야기다.
사회자도 학생들에게 좋아하는 시집을 사서 독후감을 쓰라고 했더니 새삼 스쳐 지나갔던 詩들이 새롭게 느껴지더라고 거들었다. 타인의 눈을 통해 세상을 새롭게 본다는 것은 정말 인간이 더불어 사는 복인지도 모른다.
동춘동에서 온 박정란 씨는 드디어 동화구연의 자격을 얻었다. 아마 ‘빈집’인가 그런 시를 읊조리는 가락이 감동을 준다. ‘저 산위로 해는 꼴깍 넘어갔다...10남매를 키워서 집지킬 자식 하나 없고나...’ 애절함이 묻어난다.
이어서 심순덕의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를 읊조린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서 맨손으로 빨래질을 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 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 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썩여도 끄떡없는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 보고싶다...외할머니 보고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 줄만 알았는데...
한밤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엄마를 본 후론
아, 엄마는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벌써 2시간을 넘겼다. 주안에서 오신 李春河 씨는 전라도 담양의 溪山풍류를 소개하며 ‘옛 정자에서 열리는 白日場’, 한준희 씨는 긴 이야기와 더불어 ‘내 아내는’를 낭송했다.
이 낭송회가 시작될 때 그리고 지금도 부인 정송화 씨와 함께 해온 前 인천문협회장 김구연 선생은 이 낭송회가 더 잘 이어지도록 조언의 말씀을 하신다. 古稀를 바라보며 많은 친구들이 술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럼 飮酒死라는 말도 있는가? 그보다는 고통과 번민과 가난과 환희와 함께 屈曲많은 생을 마감했는지도 모른다. 문학을 지망한다면 그런 어려움을 끌어안을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400연 편이 넘는 자신의 童詩와 그리고 교과서에 실린 동시들을 제쳐두고 素月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를 暗誦하신다. 작가가 - 평생 문학작품을 읽어온 원로작가가 한 편의 詩를 고르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시간이 훌쩍 지나고 기다리던 부인은 딸의 권유로 한편의 詩를 낭송한다. 전라도 말이 질펀한 ‘해남에서 온 편지’는 판소리 사설같이 띄어쓰기를 안 하는 것이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아홉배미 길 질컥질컥해서 오늘도 삭신 꾹꾹 쑤신다. 아가 서울 가는 인편에 쌀 조깐 부친다. 비민하것냐만 그래도 잘 챙겨묵거라. 아이엠 에픈가 뭔가가 징허긴 징헌갑다. 느그 오래비도 존화로만 기별 딸랑하고 지난 설에도 안와브럿다. 애비가 알믄 배락을 칠 것인디 그 냥반 까무잡잡하던 낯짝도 인자는 가뭇가뭇 하다 .나도 얼릉 따라 나서야 것는디 무진 것이 목숨이라 이도저도 못하고 그러냐 안. 쑥 한 바구리 캐와 따듬다 말고 쏘주 한 잔 혔다. 지랄 놈의 농사는 지먼 뭣 하냐. 그래도 자석들한테 팥이란 돈부, 깨, 콩, 고추 보내는 재미였는디 너할코 종신서원이라니…그것은 하느님하고 갤혼하는 것이라는디…더 살기 팍팍해서 어째야 쓸란가 모르것다. 너는 이 에미더러 보고 자퍼도 꾹 전디라고 했는디 달구똥 마냥 니 생각 끈하다. 복사꽃 저리 환하게 핀 것이 혼자 볼랑께 영 아깝다야.
*내가 있는 학교의 제자 중에 수녀가 한 사람 있었다. 몇 해 전 남도 답사길에 학생 몇이랑 그 수녀의 고향집을 들르게 되었는데 다 제금 나고 노모 한 분만 집을 지키고 있었다. 생전에 남편이 꽃과 나무를 좋아해 집안은 물론 텃밭까지 꽃들이 혼자 보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흐드러져 있었다.
이지엽 시인의 시로 그는 1958년 12월 25일 태어난 58년 개띠로 해남에서 태어나 1982년 '한국문학' 으로 등단했다고 한다.
오늘은 연말이라 그런지 유독 감사의 마음을 담은 글들이 많았다. 언제나 그렇듯 다락방의 주인은 마지막 한마디를 한다.
헌 책을 쓰다듬다보면 ‘예수의 얼굴을 닦는’ 기분이라고...그리고 ‘책이 사람을 닮게 하라’는 老牧의 말씀을 읽는다.
‘책이 사람을 닮게 하라!’
그리고 케이크에 촛불을 켜고 37회 낭송회 생일을 축하했다. 성탄의 노래와 함께.... <2010,10.25 聖誕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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