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다리 시낭송회

現場의 시인 문동만 - 나는 흔들리고 싶다. - 제34회 배다리시낭송회

양효성 2010. 9. 26. 11:28

 

 

        現場의 시인 문동만 - 나는 흔들리고 싶다.

                     제34회 배다리시낭송회[2010년9월25일 마지막 토요일]

 

그는 고달파 보인다. 그는 코스모스가 피어 있는 파란 하늘을 걸어서 ‘鐵路위의 詩人들’을 만나러 왔다고 했다. 꼭 그렇게 말한 것은 아니지만 배다리 詩朗誦이 열리는 시 다락방이 경인전철 옆에 있고 또 詩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모두 詩人이라고 불러보기로 하자.

詩人은 그래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도 가끔 아내와 다툰다고 한다. 오늘도 다투고 와서 문자라도 보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한다. 아마 자신의 理想을 향한 투정을 그 아내가 堪耐[감내]해야 하는 어려움을 그렇게 말했는지도 모른다.

 

‘꽃은 공중에 뿌린 제 향기를 거둬 땅 밑의 외롭고 쓸쓸한 것들로 옮기는 참이다...먼발치 있는 너를 생각한다. 너는 어둡고/ 따뜻한 母土에서 내 말을 들을 것이다/ 나는 결핍을 말하고 너는 낙화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낙화>’

 

<마지막 술집을 찾아서>에는 이런 구절도 있다.

‘미안하군, 살이 찌지 않는 아내여/홀로 술 먹는 밤조차 이해해 주는 당신/’

 

그런 당신을 詩人은 스스로 ‘아내의 정부’가 되어 자신을 되돌아보는지도 모른다. ‘아내는 아파 드러누웠고 잠시 아내의 동태를 살피러/ 집에 들른 것/ 어떤 남자가 양푼에 식은밥을 비벼 먹다가/ 그 터지는 볼로 나를 쳐다본다/’

 

34회가 되는 배다리시낭송회에서 문동만 시인의 詩를 들었다. 오늘도 정송화 시인을 비롯해서 수재를 만난 부평의 단골손님, 두 아이의 어머니, 수원에서 와 감정이 실린 목소리로 시를 낭송해주신 분들...성황을 이루었다.

1969년 忠淸水營이 있던 보령에서 태어나 1994년에 <삶 사회 그리고 문학>에 처음 시를 발표하고 1996년에 <나는 작은 행복도 두렵다>, 2009년에 <그네>라는 시집을 묶어냈다. 오늘은 22편의 自選詩들이 낭송되었다.

 

그의 詩에는 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고 한다. 그러나 좀 더 가까이 가보면 한 사람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다락방의 무릎이 마주 닿을 듯한 가까운 거리는 하늘과 땅처럼 멀어 보이지만 호흡이 가다듬어지는 동안 詩人은 놀랍게도 청중에게 매우 가까워온다.

 

맨 처음 등장하는 사람은 저울질 하는 아버지다. ‘아버진 저울질 하나는 끝내줬다/ 파단 마늘단, 어머니 무르팍에서 꼬인 모시꾸미도 오차없이 달아내셨다...아버지가 세상에서 가장 정확히 볼 수 있었던 건 그 눈금이 아니었나 싶다<저울에게 듣다.>’

 

피라미드의 저승으로 가는 使者의 손에도 미국 대법원의 벽에도 저울은 걸려 있다. 平衡이란 글자는 모두 저울이라는 뜻이다. 어머니는 무르팍에 모시를 비벼 실을 꼬고 아버지는 저울에 내다 파는 이 詩人의 삶은 도시로 옮겨 오며 ‘균형이란 무엇이고 치우침이란 무엇인가 그런 머리로/ 내 혼동의 추가 잠간씩 흔들린다./...<저울에게 듣다> ’.

아버지의 시골저울과 다른 그 보이지 않는 도시저울의 눈금에서 일어난 혼란을 도시에서만 살던 청중들이 공감하면서 詩人과의 거리는 가까워진다.

그리고 ‘가벼우나 무거우나 역동의 무게로 살라’는 呼訴에 동참한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어디서 비롯되는가? 그는 자면서도 ‘입벌린 것’들을 깨어서 바라보고 개펄에서 농게의 ‘순식간에 사라지는 집게발’을 直觀하다가 아파트를 수리하러가는 수리공의 ‘물에 에인 날들’에서 보이는 빈곤과 그보다 더한 실업의 아픔을 ‘숨기는 것과 드러내는 것, 사이에/ 내 마음 있어서...<은둔기>’ 불암산 계곡을 헤매기도 한다.

 

때로 버겁다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할 때가 있다. 버거운 까닭을 반성한다면 새로운 세계의 시작으로 대단한 일이다. 그것을 실천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놀라운 일이 될 수 있다.

 

‘등굽은 사내들은 축구공을 꿰매고 있다...이 지상에 어떤 뼈들이 곧겠는가...그러나 나도 당신들도 모든 뼈들을 보지 못했다. 잠복한 직립의 뼈들을 <직립의 뼈들>...’

 

그는 直立의 뼈를 보려고 한다. 詩人의 말한다. ‘적어도 그 이름을 기억하는 한 그의 말에 책임을 지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책임질 수 없는 말은 詩에서 피하고 싶다’고 조심스럽게 선동을 억제하는 발언을 한다. 잘 옮겼는지 자신은 없지만 그렇게 들렸다. 최소한 ‘그러한 것들을 드러낼 수 있는 責務가 詩人에게 있다.’ 그런 뜻으로...<청어>라는 물고기를 통해 자신을 불사른 어느 烈士의 경우를 暗示하면서-

 

그러나 그는 그런 暗示의 어둠에 갇혀있는 것 같지는 않다. ‘흔들림이야말로 결연한 사유의 진동/ 누군가 먼저 흔들렸으므로/ 만졌던 쇠줄조차 따뜻하다<그네>/’

그리고 청중은 그것이 아픔인줄 알면서도 기꺼이 그의 그네에서 흔들리고 싶어진다.

‘아직 누군가의 몸이 떠나지 않은 그네/ 누군가의 몸이 다시 앓을 그네<그네>’

 

<매미>울음 아련한 여름이 가더라도 갯가엔 <벙어리 어부>가 뜰채를 들고 <기러기>를 멀리 보내고 서리 내리는 날 <상수리묵>을 쑤어 보름달에게도 한 점 권하는 그런 저녁에는 詩人의 고달픔도 조금은 덜 수 있지 않을까?

 

 

 

 

 

 

 

 

 

 

 

 

 

 

 

 

 

문동만 시인의 자작시 낭송

 

 

 

* 그의 시는 천천히 한줄 한줄 쉬어가며 읽으면 어떤 삶의 한 자락이 떠오른다. 아마 그의 끈질긴 참을성때문일 것이다. 

  오늘 밤 자정 KBS위 '낭독의 재발견'은 이 詩가 읽혀진 인천 배다리 비좁은 다락방에서 녹화되었다고 한다.

친구들이 그 누추한 다락방을 눈여겨 보아주었으면 한다. 30년 헌 책을 팔고 있는 아주머니가 마련한 詩의 다락방을...

 

 

           그네

 

               아직 누군가의 몸이 떠나지 않은 그네,

               그 반동 그대로 앉는다

               그 사람처럼 흔들린다

                흔들리는 것의 중심은 흔들림

                흔들림이야말로 결연한 사유의 진동

누군가 먼저 흔들렸으므로

만졌던 쇠줄조차 따뜻하다

별빛도 흔들리며 곧은 것이다. 여기 오는 동안

무한대의 굴절과 저항을 견디며

그렇게 흔들렸던 세월

흔들리며 발열하는 사랑

아직 누군가의 몸이 떠나지 않은 그네

누군가의 몸이 다시 앓을 그네

 

 

 

 

우리는 서로 등을 밀어주었다

 

닿지 않는 등허리 한복판만큼

쉬 벗겨지지 않는 내밀한 허물

거기서 우리는 뒤틀린 등짝과 엉덩이와

언뜻 거울에 비치는 까칠한 턱을 보았다

 

우리는 때가 많이 밀리는 같은 병(病)을

앓았기에 누구도 부르지 않고

서로의 등을 밀었다

 

묵묵한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등이 인간의 맨얼굴이라는 걸

 

사람들의 몸에서 이끼 냄새가 났다

아마도 인간의 첫 수원지(水源地)에서 자라난

건강한 이끼일 것이다

 

 

가난한 성에서

 

 

 

가끔 들르는 이곳은 나의 일터

두 팔을 벌리면 베란다 창이 다 가려지는 도시의 누옥

실어증에 걸린 사람들과 미쳐서 말이 끊이지 않는

사람들이 아래윗집에서 배수구로 말을 통하는 곳

 

혼혈인 듯 눈이 깊은 아이가 자전거를 타며 싱그럽게 웃는다

여자들은 억센 음절이나 묵음으로 홑겹의 몸에 닥칠

겨울을 기다리고 있다

 

저들은 어디에서 쫓겨났거나

가까스로 성주로부터 세간 한칸을 얻은 사람들

제정신이 아닌 소녀는 무턱대고 아무 차문을 열고

입정거리를 낚아채가고

 

상한 간(肝)을 돗자리 위에 널어놓고

화투를 치는 몇몇의 머리맡에

몇 남지 않은 적단풍이 떨어진다

아홉 평 칸칸의 새한도 속으로 들어가는 노부부의

병로한 행색이 나의 전생 같다

 

가난이 그치지 않는 성에서 나는 가깝고도 먼 곳을 본다

강 건너엔 땅을 너무도 사랑하여서

땅을 사면 그 땅에서 돈다발이 열리고

집을 사면 집이 새끼를 쳐 번성한다는

기이한 풍속도 눈에 선하다

 

시래기처럼 밤새 바스락거리던 몇몇은 각혈을

멈추고 끝내 강을 건너 운구되기도 하리라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줄 몰랐어요'

                                                                  집사람이 한마디 한다.

 

       L선생은 이 낭송회에 처음 참석했다.

  ‘저하고 동갑이더군요! 구로동에서 이런 문학을 접하기도 했었지요!’

말레이시아에서 일하는 또 다른 L을 급히 만날 일이 있었다. 그의 친구인 J의 국수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L선생이 한 말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중앙공원에 내려서 맥주 한 잔을 더하면서도 내내 그의 시어들이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가을달이 한참 밝을 시간인데 구름이 끼고 우리가 앉은 자리에서는 빌딩의 숲이 너무 높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