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와 시집 간 딸이 읽는 소설들[1]
이순원의 ‘아들과 함께 걷는 길’
할아버지가 된지 벌써 5년이 되었다. 그리고 이순원의 ‘아들과 함께 걷는 길[1996 해냄]’이 출간된 지 15년만에야 읽고 나서 내가 아버지 없이 자랐다는 것을 깨달았다. 외손녀는 지금 다섯 살 외손자는 겨우 두 살 - 아이들이 의식이 있거나 핏덩이이거나 자식 키우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새삼스럽다. 아이가 투정을 부리고 밥을 제 때 잘 안 먹고 갑자기 소리를 지르면 어찌할 줄 모르는 것이 다 애비 없이 자란 경험 부족에서 온 것이 아닌지?!
‘내 아이만은 다르다!’ 그 생각은 점점 흐릿해지고, 일일이 친구들에게 물어보기도 ‘손주 자랑한다!’는 핀잔 때문에 껄끄럽다. 두꺼운 아동심리학을 드문드문 읽어도 살에 와 닿지를 않는다.
딸아이와 사이도 뭔가 비닐 한 장이 쳐진 것처럼 말끔하지 못하다. 그래도 대화가 있다면 홈쇼핑을 할 줄 모르는 내가 인터넷으로 책을 사달라는 부탁일 때뿐이다. 집 앞에 책방이 사라지고 ‘홈쇼핑 대행서비스’ 이런 가게가 노인층을 대상으로 생겼으면 하는 이야기는 단편소설 쯤 될 테니까 생략하고...
아무튼 몇 년 전 딸아이는 이순원의 ‘19세’와 성석재의 소설집[제목은 모르겠는데...황만근이라는 사람이 나오는 것 같다.]을 내게 선물했다. 김승옥의 ‘1960년인지? 서울 겨울’ 하는 소설을 읽은 것이 마지막이니 아마 소설을 읽지 않은지 거의 30년이 된 시점이었다. 아무튼 이 두 권의 소설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고 주위 사람들이 빌려가기도 했다.
몇 년이 흐르고 이번 아내가 병원에 며칠 있는 동안 간병인과 기사노릇을 하는 과정에 조혁신 그리고 동인문학상 수상작가[헬레나가 나온다]의 단편집과 현대문학상 수상작품집을 통해 몇 사람의 현대작가들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 이어 내게 소설이 소화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성탄절 배다리시낭송회에 가는 길에 아벨서점에서 김구연 선생이 골라 준 ‘아들과 함께 걷는 길’을 사게 된 괒ㅇ이 그렇다는 말이다. 이런 긴 이야기를 하는 것은 혹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소설도 읽고 또 그 책을 통해서 어름하게 한 집안의 남자가 해야 할 일이나 아니면 생각이라도 해볼 기회를 가졌으면 하는 것이다.
가장 멋있는 책 소개는 ‘한번 읽어 보라!’는 것이고, 가장 잘 읽는 방법은 ‘책을 사서 밑줄을 긋고 포스트 일을 붙여가며 두고 - 두고 보는 것’이 아닐까? 어쨌든 이 책에는 대관령 길을 걸어 내려가는 삼대가 있다. 앞서 말했지만 애비 없이 자란 나에게는 의식이 생긴 여섯 살에 눈을 뜨고 보니 이승만 대통령과 동갑이라는 증조할아버지가 있었다.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삼촌도 없이 집안의 유일한 남자는 증조할아버지뿐이었고 그분은 별 말씀이 없었다. 부자간의 葛藤같은 것은 처음부터 있을 수 없었다. 딸아이를 키우면서 애비가 해줄 수 있는 일을 망각하고 지나친 것은 어쩌면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당연히 어머니가 그러했듯이 딸아이도 제 에미가 키우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 아닌가 하는...
친구들이 요즘 종교, 정치, 아이들 - 세 가지 提題는 대화의 禁忌라고들 한다. 닭장이나 벌집을 닮은 아파트에서 사는 말하는 동물인 우리는 닭이 알을 잘 낳으라고 모짤트의 음악을 듣는 것처럼 여자대통령을 찍으라고 모두들 거시기 같은 大物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말을 하든 안 하든 하나가 되어가는 세상에 骨肉相爭이라는 말은 적어도 心理的葛藤이나 志向하는 바에 한해서 이 말은 지금 내게 심각하다. 교실의 붕괴에 傳統의 繼承이니 東洋的 精神世界니 倫理와 哲學이니 正義란 무엇인지 등등 말들이 많지만 적어도 이순원은 담담히 그리고 조리정연하게 이런 혼란의 얼킨 실타래 를 풀어가고 있다. 뿌리[族譜라고 번역해야 할지?]라는 책에서 열세살 쿤타킨테가 아버지와 여행을 떠나는 장면이 오래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순원의 대관령 길은 오래 숙제로 품고 있던 딸아이와의 침묵 그리고 외손주들과의 앞길에 記憶이 아닌 삶으로 살아있을 것 같다. <*>
이순원의 '아들과 함께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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