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동막 도당굿 - '한국의 굿-경기도도당굿'을 보고...

양효성 2010. 7. 18. 19:13

 

 

졸업 그리고 100일[7]

 

동막 도당굿

'한국의 굿-경기도도당굿'을 보고...

안동대학교 민속학과 이상윤

 

  경기도, 서울 지방의 공동체 신앙으로써 전승되는 도당굿의 특징은, 무당이 공동체 신앙의 주된 인물이 된다는 점에 있다. 그러나 경기도, 서울지역이 수도권 개발지역으로 빠른 성장을 시작하면서, 도당굿은 그 전승력을 잃어갔으며 현재에는 몇몇 마을에서 기념적인 행사로만 도당굿을 올리고 그 외의 지방의 도당굿은 모두 사라진 상태다.

 

  86년 동춘동의 도당굿. 그러니까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에 존재했던 공동체 신앙의 모습이다. 대상신격으로는 짚 움막의 형태를 하고 있는 도당할아버지와 도당할머니가 되겠다. 타 지역의 골맥이 동신제와 비슷한 모습을 보이는데, 특이하게도 거리제와 장승제를 병행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동막 도당굿이 제형과 무당굿형을 겸비한 기무사제형태의 동제라는 것에 대해 추측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내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동막 도당굿의 특징이나 실정이 아니라, 이것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자 한다. 그 전에, 굿이란 여러분의 머릿속에서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가? 우선 나부터 말해보자면. ‘고리타분’한 것이다. 그렇다. 아마 대게의 사람들이 그럴것이다. 굿부터 시작하여 한복, 탈춤, 너와집등 민속의 모습은 고리타분하고 믿지 못할것으로 사람들에게 각인되어 있다.

 

  물론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생활하고 있는 이 시대의 모든 것들 역시 10년, 20년 후에는 모두 고리타분한 것이 되어버린다. 아니, 현대의 놀라운 기술성장을 생각해본다면 아마 5년 내에 우리의 모습은 원시적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이 시대, 우리는 우리의 것에 아름다움을 느끼고 만족하며, 행복하게 살아간다. 민속 역시 그 시대가 향유했던 문화라는 걸 감안하고 본다면, 편협한 시선 속에서 그것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멀리 갯가가 보이고 솔숲이 우거진 이곳이 지금의 연수동 아파트숲이라고 어찌 생각할 수 있겠는가? 

 

28쪽의 서방백제대장군

 

삼당주가 우물을 칠 때는 머리 감고 목욕하고...

비단 神만이 아닌 이런 마음으로 우리 조상은 가족의 아침 저녁을 지었다.

 

 

  28페이지에 보이는 장승을 보라. 위협적으로 생긴 얼굴에 거대한 장승은 없고, 대충 깎은 듯한 나무에 먹으로 낙서를 한 듯 어눌한 얼굴의 장승이 그곳에 있다. 그러나 이 장승은 마을사람들에게는 재액을 담당하는 하나의 신물이며, 그 마을과 끝을 함께할 동반자이다. 이런 시각을 가지고 있는 채로 장승을 바라보면, 그곳에는 친숙한 얼굴의 든든한 수호신이 서 있는 것이다.

  또, 비장한 표정의 만신과 동네 사람들이 참여하는 굿도 묘한 향기를 풍긴다. 진심으로 마을의 안위를 걱정하고, 신을 두려워하며, 만신을 통해 신의 만족스런 말이 들려오면 진심으로 기뻐하는 사람들의 순수한 모습이 담겨져 있다. 안정. 이것이 굿이 가지는 가장 큰 의미이자 아름다움의 형태인 것이다.

 

  동막 도당굿을 넘어서, 경기도, 서울지방엔 수많은 도당굿이 존재하고 우리 나라에는 수많은 동제가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을 보존하고 눈여겨보는 사람들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현재에서 과거를 사랑하는 방법을 모른다면, 우리 역시 미래로부터 무시되는 하나의 원시인이 되어버리고 만다. 한번 더 사진을 펴들고 찬찬히 살펴보자. 그리고 사람들의 표정, 장승, 만신의 춤을 눈여겨보자. 그리고 그 속에서 흐르는 안도와 평온의 감정을 따라 책장을 넘겨 보도록 하자.

                                                          <사진, 해설 김순환. 글 황루시, 이보형 1971년 열화당.>

 

 

집에 있던 책을 찾을 수 없다. 금년 아벨서점에서 상윤이를 생각하며 이 책을 다시 샀다. 굿을 迷信이라고들 했다. 상윤이가 살고있는 동춘동은, 아파트 숲으로 가려지고 증권, 은행, 관청 등등 현대화 되었다. 어디서 이 소나무 숲을 다시 볼 수 있을까. 마을사람들은 마을神 앞에 모여 새해를 祈願하고 있다. 지금 반상회와 비슷하다고 할까. 그 시대의 변화 속에서 공동체의 정신이 무엇인가 상윤이가 다시 생각해보기를 바랬다. 2009년 4월 18일, 마우춘 가는 길에서 이런 생각을 했던 것이 새롭다. 過去란 忘却하고 있을 때만 지나간 時間이다. 오늘 意味있는 過去는 現在요 未來다. 傳統과 創造란 단어는 이 刹那에만 永遠하다.

 

 

그리스에서 民主主義 投票를 할 때 주민들을 모으기 위해 '祝祭'를 했다. '祝'은 神[示]에게 사람[儿]의 말[口]을 전하는 行爲요 '祭'는 고기[肉]를 오른 손[又]에 들어 神[示]에게 바치는 행위를 말하는 글자다. ‘굿’이 그와 비슷하다. 神檀樹아래 神市를 열었을 때 그와 같지 않았는가? 또 그리스에서는 不正한 자를 도자기파편에 적는 투표를해서 追放하기도 했다. 哲學이 亡하면 바로 굿을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