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1] 법문사의 비밀

양효성 2010. 3. 9. 22:12

 

책이야기 [1] 법문사의 비밀...

[웨난, 상청융 지음 유소영, 심규호 옮김2000년 일빛 출간]

 

 

                                                    嵌寶石水晶槨子[감보석수정곽자]

 

現場(현장)처럼 실감나는 말은 없다. 현재의 장소 - 그 말은 살아있음을 뜻한다. 나아가 이미 지나가 버린 역사의 현장, 사건의 현장 등은 그 시절 그 사건을 현재로 되살리는 묘한 판타지를 만들어 낸다. 시인이나 화가가 차를 마시던 장소, 살던 집, 산책로 이 모두가 그 작품이 되살아나는 환상을 준다. 그래서 요즘 ‘드라마의 현장’이 유행이고 이런 문화에 한발 앞선 일본인들의 여행코스가 되었나?

한국일보에서 출판한 ‘문학기행’은 愛藏書(애장서)가운데 하나로 이런 주제로 향토기행을 해보라고 사진을 잘 찍는 C선생에게 아이디어를 준 것인데 지금 그는 ‘名人’을 만드는데 넋을 놓고 있다. 갓 대학에 들어간 Y가 혹 그 일을 할 수 있을지? 아무래도 여력이 있으면 ‘채만식문학관(군산)’, ‘정지용기념관(옥천)’ 등등 문학기행 사이트를 만들어 두기라도 해야 할까? 그런 생각을 하며 박물관-미술관-문학의 현장 등등을 생각하다보면 ‘책이야기’라는 사이트는 여행-박물관-화랑-책-예술 이렇게 묶어지게 될지 모른다. 이것이 내가 말하는 학문의 연계와 총체적 종합에서 한 개인의 삶에 구체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그런 ‘實事求是’로 이어지지나 않을지...

그런 의미에서 ‘법문사의 비밀[웨난, 상청융 지음 유소영, 심규호 옮김2000년 일빛 출간]’은 고고학을 주제로 하는 ‘소설’로 보아야 할 것이다. 프랑스인들은 철학을 소설로 한다는 말이 있는데 아마 싸르뜨르나 까뮈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중국인은 역사를 소설로 한다는 말이 성립되는 것은 열국지-수호지-삼국지 등이 입증하는 것인데 한발 더 나간 것이 ‘법문사의 비밀이다. 오늘 이야기의 핵심은 한발 더 나아가 독자가 이 작가를 통해서 제재와 대상이 살아있는(?) 박물관을 다시 보게 만든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소설은 환상으로 시작되고 끝나고, 거기 독자의 상상이 용해, 융합되는 선에서 공감대를 만들어 가는데 그것대로 대단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 책에는 ’발굴품‘이라는 객관적 대상이 있다. 그 대상은 대부분 말을 하지 않는다. 당시의 기록과 이 책의 저자가 나레이터의 역할을 한다. 그러면 비로소 진열장의 여인들은 향로를 들고 나와 향을 사르고 찻잔에 차르 따르고 거문고를 켜며 또 절을 한다. ’한 권의 책을 들고 박물관에서‘ 우리는 唐나라로 돌아갈 수 있고 또 新羅 문화의 원류를 경험할 수 있다.

 

秘色磁花沿盤 

 

이 작가의 책을 나는 세 권 보았다. 청나라 만력황제의 정릉에 다녀와서 ‘황릉의 비밀’을 보았고, 다음에는 ‘마왕퇴의 귀부인’을 먼저 읽고 장사의 박물관에서 그 귀부인과 시녀들을 만났다. 그리고 한나라의 急就章을 번역하면서 한자교과서에 기호의 지시대상인 이 문물들을 나란히 놓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이 박이정에서 출판한 사유의 급취장이 되었다. 그 시절에 취재차 서안을 여행했는데 중국인들과 1일 여행으로 漢나라의 서울인 함양을 보고 무제의 능침을 보고 그야말로 덤으로 이 법문사에 들린 것은 2007년8월8일 오후 5시였다. 急就章 311구에 ‘馮翊京兆執治民’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漢나라의 수도를 장안성을 중심에 두고 서쪽에 扶風, 동쪽에 馮翊이라는 위성도시를 두었다는 뜻인데 당시 장안성에는 50만이 살았고 도로폭은 45m정도, 총 36㎢였다고 하는데 이 곳이 바로 그 扶風(부풍)현이었다. 지친 다리를 끌고 더위와 싸우면서 무엇보다 힘든 것은 중국인 가이드의 해설을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의 벽이었다.

 

嵌寶石水晶槨子[감보석수정곽자]

 

                                            四十五尊造像盝頂銀函[사십오존조상록정은함]

 

지금 나에게는 저자보다도 이 책을 번역하신 분들이 더 고마운 까닭은 이런 이유다. 그런데도 이 책을 읽은 것은 요즘이다. 긴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다. 그냥 읽어 보고 언젠가는 그 장소에 가보라! 그것이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말의 전부다. 이 책의 원본[萬世法門]을 나는 중국에서 샀다. 절강인민출판사에서 2001년에 3번째 찍은 이 책은 약33만6천자에 1만권을 찍었다고 한다. 또 번역본 보다는 그림이 많다. 이것이 중국의 저력이고 앞으로 세계를 선도하는 나라가 된다면 또 이것이 펀더멘탈이 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선안 부풍현의 법문사 탑  

 

이 책의 현장 - 그곳은 중국의 西安에 있고 이 책은 한국의 서점에 있다. 또 마왕퇴와 법문사의 보물은 한국에 다녀갔다. 그러나 지금도 그 현장에 가면 우리는 이 책이 말하는 현실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미리 읽어두는 사람은 나처럼 먼저 보고 다음에 읽는 우를 범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책장을 서서히 정리하면서 몇 권의 책이야기는 남겨두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