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모음

강화 석조여래와 마네의 ‘풀밭위의 식사’

양효성 2010. 10. 7. 10:44

 

 

           강화 석조여래와 마네의 ‘풀밭위의 식사’

 

                                                             강화 하점면 석조여래입상 보물615호

                                                             소 재 지 : 인천 강화군 하점면 장정리 산122

 

강화도하면 팔만대장경의 전등사, 인천이 바라보이는 涵虛洞天 정수사, 진달래축제의 법련사 등이 떠오르지만 千年을 외로이 서있는 산속의 석가모니는 쉬 俗人의 눈에 뜨이지 않는다.

 

돌에 새겨져 서있는 부처님의 속세의 주민등록은 강화군 하점면 장정리 산122번지로 그것을 새기고 세운 분의 갸륵한 뜻을 우리는 보물615호로 기리고 있다.

 

강화도 하면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으뜸이라는 의미의 마리산[摩尼山 469m]인데 섬 안에 들어서면 어디서고 보이는 것은 高麗山[436m]이다. 두 산은 높이가 비슷한데 마리산이 서해를 지킨다면 고려산은 고려의 도읍이었던 강화를 지키고 있다. 그 高麗山과 마주 보이는 산이 291m의 봉천산이다. 이 산 기슭에 석가모니가 계시고 두 산 사이에 그 유명한 지석묘가 있다.

 

목탁소리가 끊긴 폐사지에서 만나는 부처님은 내게 더 慈悲롭다. 나와 그 사이에 사람을 끼우지 않고 직접 내 말을 들어주시기에-

 

두꺼운 판자를 자른 듯한 화강암에 조각된 여래의 입상은 지금 전각에 안치되어 이슬을 피하고 있다. 본래 야외에 세워졌다면 어딘가 불당이 있을 터인데 가늠하기 어렵다.

부처의 옥안은 매우 엄격한 느낌이다. 일직선으로 안면을 가로지른 눈매와 중앙을 버틴 콧날에 부드러운 입술과 눈썹이 조화를 이루고 있지만 그 안광의 위엄은 좀처럼 누그러들지 않는다. 그 시대의 정신이 이 모습에 담겨있는 것일까?

 

해설을 참고하면 이렇다.

... 사실에서 벗어난 큰 귀, 목이 짧아 가슴에 형식적으로 묘사된 삼도(三道)의 표현 등이 좁고 위축된 듯한 둥근 어깨와 함께 신체를 더욱 평평하고 움츠려 보이게 한다.

 

두꺼운 법의는 통견(通肩)으로, 깊게 선각(線刻)된 옷주름이 가슴 부근에서 반전(反轉)되어 U자형으로 흘러내리고 있다. 이 옷주름이 발까지 덮고 있어 신체의 굴곡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오른손은 허리 아래로 내려 손바닥을 밖으로 향해 소원을 들어준다는 與願印(여원인)을 하고, 왼손은 가슴 앞으로 들어 중생의 두려움을 없애준다는 施無畏印(시무외인)의 형태를 취한 것처럼 보인다. 부처의 배경이 되는 보트[舟〕모양의 거신광배(擧身光背)에는 장식적인 무늬가 새겨져 있다.

 

이 안에는 따로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이 아래위로 표현되어 있는데, 테두리는 두 줄의 철선(凸線)으로 구획하여 꽃무늬를 새겨 넣었고, 주위에는 불꽃무늬를 둘렀다. 판석에 조각된 만큼 평평하고 선으로 새긴 듯한 경향이 나타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모든 면에서 생략되고, 단순화되는 점은 시대가 내려가는 것을 말해 준다.

 

머리에 표현된 계주라든가, 비만한 얼굴, 목이 밭고 어깨가 올라붙어 움츠린 듯한 자세, 형식적이며 간략하게 처리된 옷주름 선 등은 고려시대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 준다.

 

또한 신체에 비해 머리와 손이 커졌을 뿐 아니라 목이나 두 귀, 어깨 등의 세부 표현에서도 균형 잡히지 않은 모습이 나타나고 있으나, 당시의 시대적인 조각 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는 불상으로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강화도에 들락거린 지 수 10년인데 이 부근에만 오면 해가 저물어 되돌아가기를 수십 번이었는데 이번 나들이에는 아예 처음부터 이곳을 찾았다. 일행 네 명은 모두 조용한 사람이니 생각 따로 몸 따로 그리고 간혹 뜻이 맞으면 조용히 웃을 뿐 별 말이 없다. 공통점은 파란 가을 하늘을 우러러 보자는 것- 올 여름에 이어 추석까지 궂은 날이 너무 많았으므로...

 

초지대교를 건너 갯가의 길은 정겹다. 수해에 쓰러진 벼들은 휩쓸리고 누은 채로 노랗게 물들고 드문드문 벼를 거두고 있다. 10월5일- 좀 늦은거 아닌가? 읍내를 거쳐 48번도로를 따라 고인돌에 잠시 들르고 창후리에서 늦은 아침을 하고 이곳에 왔다. 표지판은 잘 되어 있다. 전원주택을 몇 채 지나고 바로 등산로 입구에서 부처님을 뵈었다.

절털르 가늠할 수 없는데 드문드문 이 부근에 절이 있었을 것이고 寺下村도 형성되었으리라...

부처님이 준비하셨을까? 가을밤이 떨어져 있고 졸졸 실개천도 흐른다. 풀밭에 앉으니 새소리 풀벌레소리 쓰르라미의 울음과 발밑에는 질경이가 씨를 맺고 들풀이 깔렸다.

 

차 한 잔을 마시는데 마침 산책을 나온 詩人을 알아보는 일행이 있다. 한참 詩談이 오고 갔다. 유리알의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이 보내주는 바람을 마시고 아무 생각이 없는데 갑자기 오가는 詩談에 마네의 그림 '풀밭위의 식사'가 떠올랐다.

 

      그 그림이 내게 주었던 것이 이런 한가로움이었던가?

      ‘閑暇’ 그 말을 생각하며 풋밤의 향기를 부처 앞에서 느꼈다...

 

                             천년 전의 이 불상에 경배하던 사람들도 잠시 생각했다.

                                                                    때는 2010년10월5일 화요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