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금추낙원의 부채

양효성 2009. 11. 17. 07:22

* 金秋樂園의 부채

 

名譽退職? 내가 무슨 명목의 명예가 있단 말인가? 이 사회의 메커니즘과 자연이 준 생명에 이끌린 引退가 더 알맞은 말이겠지...1년 아니면 2-3년 어느날 갑자기 평생 끌고 다니던 자기 그림자를 밟고 놀라는 것처럼 心亂한 채 또 북경행 비행기에 올랐다.

학교를 그만두고 집에서 무얼 하나? 백 명도 안되는 교직원 가운데 신임의 이름도 전공도 모른 채 또 새학기를 기다리고 있다. 명퇴한 선배들이 학교에 다시 들르지 않는 것은 물론 길에서 우연히 눈에 뜨이더라도 그 자리에 서 있다가 마주치지 않으면 ‘나는 내일 출근해야 되니까?’ 하면서 발길을 돌리던 내가 아닌가? 아마 그 선배는 가까운 산이 아니면 공원을 산책했거나-마을회관의 노인대학에 다녀왔을지도 모른다.

 

이번에 숙소로 정한 지질대학의 校庭 한 가운데 招待所와 학생회관이 있고 아카시아 나무 한 그루가 댕그라니 솟아있는 모서리에 단층 벽돌- 중국식 기와를 얹은 창고 비슷한 조그만 건물이 있다. ‘金秋樂園-황금의 가을 파라다이스’이다.

월드컵으로 들썩였던 2002년 여름- 나는 매미소리와 함께 초대소에 짐을 풀고 조카 병선이와 아침 저녁을 마치면 이 앞을 어슬렁거리곤 했다. 어느날 아침 교실 서너 개를 합한 이 회관의 세 개의 탁구대에서는 ‘핑퐁’소리가 어린아이의 해맑은 웃음소리와 어울려 메아리치고 있었다. 中米外交의 물꼬를 튼 바로 그 핑퐁 소리가...중국어로 핑퐁은 ‘兵兵’ 받침의 오른 쪽과 왼쪽 발을 하나씩 떼 내 ‘乒乓(Ping Pong)’하면 된다. 재미있는 形相的 擬聲語(?)이다.

마침 별로 붐비지 않아 나도 客氣를 부리고 싶었으나, 입구에는 이런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이곳은 본 대학에서 工作을 마친 회원들만 이용하는 장소임으로 관계가 없는 분은 이용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좀 이상한 번역이지만 지질대에서 은퇴한 ‘黃金의 가을’을 맞이한 敎職工(교직원)의 회관이 분명했다. 아! 그래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스윙을 할 때마다 방학을 맞은 손자 손녀들이 응원을 하고 있었구나. 이 노인들은 이 학교를 일구고 키우는데 평생을 함께 했고 그리고 또 여기서 餘生을 함께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그 핑퐁소리를 듣는 순간 그 메아리의 신선함이 다시 한번 짜릿하게 느껴졌다.

 

어느날 아침 나는 또 한번 이 樂園앞을 지나다 哀切 晴朗한 목소리에 이끌리게 되었다. 이번엔 탁구대를 치우고 어린 손자-손녀를 이끈 할아버지-할머니들이 목청껏 노래방 기계를 바라보며 춤추듯 부드러운 老指揮者의 손을 따라 和音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광활한 초원의 끝에서 들꽃의 향기를 부르는 듯-지평선을 붙잡으러 달리는 말을 쫓듯-하늘에 노을의 絨緞을 깔 듯 노래는 굽이굽이 애끊는듯-呼訴하는듯-高低가 간절하였다.

잠시 그 노래에 취했다가 나는 급히 숙소에 돌아와 妙齡의 服務員을 대동하고 사진을 한 장 찍어도 좋으냐고 통역하게 하였다. 지휘자는 손을 잡아끌며 나에게도 한 곡을 請하는 것이었다. 내 스스로가 音癡라기 보다는 韓族의 가락을 한 곡도 익히지 못했던 교육이 그렇게 원망스러웠던 일이 없었다.

숙소에 돌아와 늦잠에서 깨어난 田宇와 詩談을 나누던 중 나는 매우 음악적인 노크소리와 함께 뜻밖의 방문객을 맞이하게 되었다. 아까 그 半白의 지휘자였다. 그는 이번 금요일 음악회에 초청한다는 뜻과 아까 그 노래의 樂譜를 선물로 주고 떠났다.

점심 때 맹처장과 환담하는 자리에서 악보를 보였더니 한 잔 술에 그는 그 초원의 노래를 목청껏 불렀고 우리 일행은 다시 한번 흥겹게 술잔을 들고 꿈속의 내몽고를 달렸다. 그리고 ‘꼭 몽고에 가보시라!’는 맹처장의 간절한 표정만 간직한 채 약 한 달 동안 괜히 바빠 다시 그 낙원을 기웃거리지 못했다.

 

紫竹園 공원에서의 댄스파티를 보며 이곳이 동양인가를 느꼈던 지난 여름-밤마다 소공원에서 녹음기를 틀어놓고 춤추는 여인들-아침마다 떠오르는 해를 그리듯 크고 부드럽고 길게 태극권을 하는 할머니들-결국 나는 그 音盤을 사지 못했지만 청화원 서생인 조카가 귀국하는 길에 그 심부름을 시킬 생각을 하며 가을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10 몇 억이 산다는 사회주의(?) 그 중국의 금추낙원-은퇴하고도 동료들이 그 교정에서 청춘을 구가하는 그들만의 파라다이스에서 지워지지 않는 인상 한 가지...

‘그 노인들의 머리는 한결같이 白髮이었지만 그 손에 쥐어진 부채는 똑 같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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