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북경의 걸인[2]

양효성 2009. 11. 18. 19:55

북경의 걸인[2]

 

언어를 가르치는 대학으로 한국에는 한국인에게 외국어를 가르치는 외국어대학이 유명한데 중국에는 외국인에게 중국어를 가르치는 큰 대학이 있다. 1962년에 북경의 서북쪽 오도구에 문을 연 어언문화대학은 40년간 약160개 국가 9만 명에게 중국어를 가르쳤고 지금도 매년 9천명의 이방인들이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으니 이곳은 동쪽의 외교가와 대칭을 이루는 외국인 거리라고 할만하다. 이들은 방 한 칸을 둘이 사용하지만 중국학생들은 두 줄로 이층침대에 8명이 잠수함의 船室같은 생활을 해야 하니 酸素가 그리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서점 이름에도 '酸素( O₂)'가 있다. 노인들의 생활도 별반 다를 것이 없어 꽁위(公寓-아파트)라고 해야 거실 겸 부엌과 변기와 샤워꼭지 한 개와 침실 등 협소하기 이를 데 없다. 그래서 그런지 북경은 세계에서 공원 면적이 제일 넓다. 이화원-원명원-북해공원-중산-천단을 비롯한 天地日月의 제단 공원-용담-자죽원 등등 대부분 황가 공원이지만 아파트와 도심 곳곳에 소규모의 공원이 있다. 여기서 북경인들은 태극권으로 새벽을 깨우고 춤을 추고 또 체육복권으로 설비한 각종 기구로 운동을 하고 노인들의 산책과 연인들의 포옹으로 밤이 깊어간다.

 

이 대학의 뒷담에도 소공원이 있다. 경계를 따라 炎天을 덮은 아카시아와 백양나무는 아파트와 빌딩의 창만이 아니라 자동차의 소음까지 가려준다. 벽돌이 매끄럽게 깔린 공터의 반대편엔 등나무가 터널을 이루고 있는데 ‘ㄱ’자로 꺾어가며 기둥을 따라 걸터앉을 의자가 잇대어 있다. 이 긴 의자에는 담소하는 아주머니와 손자를 어르는 할아버지와 시장에 다녀오는 부인들이 장바구니를 내려놓고 땀을 들이고, 아랑곳없이 연인의 무릎을 베개 삼아 하늘을 이불삼은 청춘들의 체온이 스며있다.

 

내가 거지를 만난 것은 소나기가 지나간 아침 죽 한 그릇도 무거워 이 의자에서 캔커피를 마시고 있을 때였다. 初老의 이 거지는 여섯 개의 보따리를 어깨에 주렁주렁 메고 있었다. 앞의 세 개는 가슴을 가리고 뒤의 세 개는 엉덩이까지 내려온 큰 보퉁이였다. 각양각색의 이 보퉁이 가운데 분명 한 두 개는 먹을 것과 옷가지나 이불일 것이다.

 

기다란 시멘트 의자에는 새벽의 소나기가 남긴 시든 등나무 잎이 드문드문 흩어져 있었다. 거지는 잠시 내려다보더니 한손으로 그 잎들을 쓸어내고 보퉁이를 내려놓은 뒤 편안하게 앉았다. 생각해보니 나는 그냥 아무렇게나 앉았던 것이다. 거지는 양쪽 단이 그래도 가지런하고 때가 낀 흰 양말과 신발도 짝을 맞추어 신고 있었다. 한참이나 등나무 잎 사이로 번지는 햇살을 세고 있던 이 거지는 이윽고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내 눈동자가 갑자기 확대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국보를 감정하는 골동상인처럼 신중하게 한참이나 그것을 드려다 보다가 여기 저기 버튼을 누르기 시작했다. 구름을 벗어난 햇살이 잠시 그 진지한 눈빛과 손가락을 비추고 사라졌다. 그의 열중하는 모습에 빨려들어 가면서 문득 내 뇌리에 그가 배터리도 없이 통화되는 핸드폰을 개발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발명왕 거지!’

 

그도 나도 북경이 타향인 것은 같다. 그는 중국말을 잘 할 테고 나는 중국말이 먹통이지만 그나 나나 별로 말을 할 필요가 없는 신세라는 점에서는 같다. 그의 전화기는 누가 버린 먹통이고 내 주머니에는 충전이 된 신형 핸드폰이 있지만 벨이 울리지 않는다는 점은 또한 서로 같다. 그는 주렁주렁 먹을 것 입을 것을 들쳐메고 다니고 나는 돈을 가지고 다니는 것은 다르지만 배를 채우는 것도 서로 같다. 그는 별을 보고 잠들고 나는 TV를 보며 잠들지만 누구의 꿈이 더 달콤한지는 가늠하기 힘들다.

 

북경에는 드문드문 거지가 보인다. 한 자리에 죽치고 앉아 행인의 눈치만 해바라기하는 걸인- 동상이 걸린 손으로 얼후를 켜며 크리스마스의 이브를 밝히는 ‘겨울 나그네’- 베트남의 하롱베이에서도 거지를 보았다. 처음에는 고깃배인줄 알았는데 유람선을 따라 맹렬히 노를 젓는 그 아낙네는 뱃전에 다가와 아이를 감싸 안고 손을 벌리고 있었다.

세상에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사람이 있는가하면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사람들이 있다. 나아가 이 양자의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정말 무기력한 사람도 있다. 내 주머니에는 돈이 있고 핸드폰이 있고 집에는 볼펜과 종이와 책이 있다. 아침을 먹는 것도 귀찮고 배를 불리면 식곤증으로 더 괴롭다. 해는 지평선에서 떠서 부지런히 서편으로 가는데 그저 멍하니 벤치에 앉아 있다. 어떻게 이렇게 멍하게 앉아있을 수 있을까? 해가 중천에 떠서야 고개를 돌리고 보니 그 발명왕 거지는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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