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다리 시낭송회

김명기 시 낭송회-31회 배다리 시낭송회 -집으로 돌아가기 싫은 날...

양효성 2010. 5. 29. 17:52

 

 

 

           김명기 시 낭송회-31회 배다리 시낭송회

                                 -집으로 돌아가기 싫은 날이 있었는지?

 

 

  5월을 보내는 마지막 토요일 - 배다리에서 시인은 ‘집으로 돌아가기 싫은 날이 있었는지?’ 묻는다. 이 물음은 길을 못 찾고 방황하는 사람에게, 또 맹목적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일에 馴致(순치)된 ‘생각 없는 동물들’에게 자신을 돌아볼 계기를 마련해준다.

  그는 ‘한쪽다리 부러진 채 담벼락에 기댄 늙은 사다리[홍명진 낭송]’를 본다. 그리고 부러진 채 불구가 되어 오랜 시간을 견딜 수 있는지 자문한다. 나아가 인생은 언젠가 부러질 날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닌가 물어본다.

 

  ‘생각 없는 동물들’을  ‘목줄을 풀어 놓아도 좀체 집밖을 나설 줄 모르는... 늙은 개'와 나란히 세워 놓는다.

  ‘그 개는 우체부<새 소식을 알리는>가 와도 더 이상 짖지 않는다.’

 

  낭송회에 모인 사람들은 차례로 詩를 읽는다.

  친구따라 왔다는 젊은이는 ‘막걸리집 미자씨네 툇마루'에 앉아 양철지붕 위로 떨어지는 풋풋한 땡감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한때 많은 푸르름들이 저렇게 사라져 갔다’는 시인의 증언을 대신 낭송한다.

 

  老熟(노숙)한 동화 작가는 ‘낮은 곳에서 흔들리고 흔들려도 부러지지 않는 긍정의 힘’을 힘주어 읽는다. ‘돌무더기 속에서 갓 자란’ 파란 상추를 함께 그려보면서...

 

  친구를 데려왔다는 주안 사는 정우진 씨는 낙원동에서 악기를 사고는 뒷골목 ‘강원도집’에서 국밥을 먹었다고 ‘행주질에도 더 이상 밀려나지 않는 묵은 때’를 기억해 낸다. 시인은 그 옆에 ‘경상도집’도 ‘전라도집’도 있다고 거든다.

 

  어느 삼복 처서 다 지나고도 미쳐 달아오른 老炎(노염)에 시인은 시인같지 않은 차림으로 묵밥집 앞을 지나다 체 게바라를 만난다. 이 젊은이는 프린트된 티셔츠의 체 케바라와 더운피가 흐르는 상면을 한다. 이 순간 그는 죽어 있는 것에서 살아있는 것을 보고 또 살아있는 것들이 죽어 있는 것을 확인하는 도착을 실감한다. 한 장의 티셔츠에 어깨죽지가 뻐근하도록...

 

  사회를 하는 분이 인일여고에서 국어를 가르치신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세 소녀의 등장 때문이었다. 

이 부끄럼 타는 소녀들은  ‘...詩 다락방에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그 계단을 오르면 詩가 보인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그 공포<?>의 계단을 오른 것이다. 소녀들은 나란히 ‘슬픔의 기원’, ‘-만큼’, ‘생각을 찍다’를 읊었다.

 

 

시인 김명기<배다리에서>

 

 

 

  詩人은 詩를 ‘자신과의 疏通’이라고 한다. ‘疏通’과 ‘所通’은 같으면서 약간 다른 말이다. 그래서 자신의 詩가 비교적 길고 또 리얼리즘에 충실하려 한다고도 한다. 시인은 2년 가까이 킹크랩을 낚는 배위에, '내린 눈들이 점점 부풀어 올라 솜이불 같던'갑판을 치는 파도에 출렁거리면서 '한 겨울의 와카나이港', '오릭스號에서의 일주일'을 썼다.  ‘수평선이 보이지 않는 바다’라는 구절이 보인다. 왜냐하면 2-3m의 산같은 너울사이에 배가 갇혀 있으니까.... 어쩌다 파도에 배가 얹혀지면 찰나의 수평선 같은 것이 잠시 보인다는...그러나 흔들리지 않는 육지에서도, 삶에서도 또 이 시인이 아닌 많은 사람들에게는 이 세상의 수평선도 지평선도 보이지 않을지 모른다.

  뱃머리를 돌리면 그만큼 가난의 길이가 길어지는 가족을 생각하면서 ‘일주일을 설탕물만 마시면 설탕물도 쓴맛이 난다’는 ‘뱃놈’들의 삶은 듣는이의 가슴을 메이게 한다. ‘겨울바다에 가보았지?’라는 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은 부분이고 전체는 전체다. 詩란 완성된 전체가 오직 부분으로 완결되는 특징이 있는 물건이다. 토막으로 완전한 것은 詩밖에 없다. 絶實한 삶의 한 토막 - 永遠으로 뻗은 사다리의 한 階段이 詩인지도 모른다. 오히려 더 절실한...

 

  이 다락방의 주인 곽현숙 씨는 詩人을 만나고 詩를 보면 詩가 달라진다고 한다. 지금 개봉되고 있는 윤정희의 ‘詩’가 이 여주인을 닮았는지도 모른다. 윤정희의 본명으로 제작된 이 시는 그의 생애였다고 한다는데, 아니면 이 집 주인과 서로 통하는 데가 있는지도 모른다. 영화를 아직 보지 않고 멋대로 해보는 상상이긴 하지만...

 

  주인은 나지막하게 ‘잠시 한눈 파는 사이 霜降의 밤을 지나온 바람에’걸려 넘어져 ‘오로지 작은 꽃잎에 매달려 짧게 지나간 사랑했던 날들’을 아슬아슬하게 읊조린다. ‘눈물을 머금은 말처럼...’

 

 

 

수줍은 여고생 - 詩를 트리오로 낭송하는 건 드문 일이다.

 

 

 

 

  그러한 잠시 낭송회는 막을 내린다.

  김명기 시인의 시에 ‘쑥갓꽃’이 있다.

 

‘...

붉게 퍼져가는 저녁 안으로

느실느실 돌아오는 사람들

흔한 저 푸성귀 닮았다, 텃밭같은 세상

제가 꽃인줄도 모르고 피어 잘라 먹히는...

...’

 

체 게바라의 무거운 티셔츠 한 장도 사들지 않고

집에 가기 싫은 날도 있었는지

생각해 보지도 않고

늙은 개처럼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아벨 서점 시다락방 입구...김명기의 '그런날 있었는지' 전문

 

1층은 온통 시집과 그림책들...

저 계단이 바로 '시를 향한 입구'로 매달 마지막 토요일오후2시에는 수많은 시의 순례자들이 오르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