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다리 시낭송회

배다리 시낭송회 [1]제29회 황규관 시인

양효성 2010. 3. 28. 14:39

 

            배다리 시낭송회 [1]제29회 황규관 시인

 

                       흐르는 詩의 물길 따라...

 

2010년3월의 마지막 토요일 27일 오후 2시에도 아벨서점에서 시낭송회가 있었다. ‘2시에도’의 ‘-도’가 중요하다. 지난 2월에도 1월에도 시 낭송회가 있었으니까! 벌써 29회가 되었다.

이 낭송회를 주관하는 사람은 아벨서점의 여주인이다. 주인은 詩人을 초청하고 詩를 몇 수 골라 選集anthology을 몇 권 만든다. 그러니까 이 叢書도 29번째가 되는 것이다.

오후 2시가 되면 K선생님의 능숙한 사회로 참석자들은 이 엔솔로지에서 마음에 드는 詩를 골라 읽는다. K선생님과 인사를 하고 싶지만 기회가 없었다. 우선 K선생님이라고 해두자! 무표정한 활자는 사람의 숨소리로 메아리를 만들어 귀청을 울리고 가슴을 데운다. 똑같은 크기의 활자는 낭송하는 사람의 선 자리와 지나온 자리와 꿈꾸는 자리를 오가며 때로는 비뚜러지고 때로는 곧게 하늘로 벋어 오른다. 황규관 시인은 여러 사람의 여러 모습으로 변한다.

그의 ‘유토피아’였던 ‘우리집 앞마당’은 배다리가 되었다가 송림동이 되었다가 또 철산동이 된다. 그렇게 ‘동네 한 바퀴’를 돌다 보면 ‘내 속에서 내 벗들/ 싸우고 지치고 취하여도/ 나에게 안부 전하지 말아다오/ 不通이 내 뜨거운 마음이어서/나는 더 멀어지겠지’라는 구절에 이르러 오히려 더욱 ‘철산동 뚱뚱한 우체국 아가씨’가 그리워지고 잊고 살았던 이웃까지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영혼의 샘이 메말라 무료한 반복에 시들어갈 때 이 시간만은 다시 맥박이 뛰고 나의 뜨락과 서랍에 묻어둔 편지봉투를 만지작거리게 한다.

 

 

지하철 1호선 도원역에서 내리면 5분거리에 역사의 거리 배다리가 나온다.

맨 오른쪽이 '시다락방'..세 집 건너 '책'이라는 간판이 38년 고서점 아벨서점

 

 

‘간통 이전이었거나 이후였거나’ 끊임없이 꿈꾸어온 체제의 바깥...살아있다는 끔찍한 실감의 지옥보다 더 무서운 체제의 침묵...그런 유토피아의 꿈도 없다는 것이 더 무서운 현실의 독방에 사형선고도 없는 무기수의 생명을 잇고 있을 때 우리는 우리가 알았다고 생각하고 써온 말들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사랑은, 가지를 떠난 / 잎사귀 한 장 같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 거처를 버렸으므로 / 혼돈을 택했으므로[잎사귀 질 때]’ 시인은 우리의 국어대사전을 헤집고 막걸리처럼 흔들고 흔들어 말간 청주가 될 때까지 때묻은 언어를 곱게 벗겨내는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장소 이런 시간에 귀청을 울리는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케이크처럼 공간도 잘라내고 식초가 될 뻔한 막걸리도 발효를 멈추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실감할 수 있다.

 

詩人은 ‘이기는 게 희망이나 善이라고’가르치는 ‘베푸는 자’들의 위선을 일깨워준다. 양떼처럼 작업반장을 따라가는 노동의 그림자들에게 잠시 줄에서 벗어나 다음 전철을 타보라고 권한다. ‘씨를 뿌리고’, ‘서리꽃 찰나’는 실패한 귀농<?>의 落穗처럼 보이지만 잃어버리고 살아온 것에 대한 깨우침을 준다. 오히려 견뎌내야할 그리고 견뎌내는 과정이 희망을 만들어낼 것이라는 의지를 심어준다. 누군가- 이 일을 다시 할 것이라는...

 

 

왼쪽에 사회자 K선생님 가운데 시를 낭송하는 여주인 곽여사, 오른쪽이 황규관 시인

 

 

 

詩人은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배다리’ 비슷한 도시로 돌아온다. 아이를 키우고 마누라와 살을 섞고 직장에 나서며 매일 만나는 너무 낯선 동료들과 생활할지도 모른다. 오늘 이 낭송회장- 시의 다락방을 나서서 나도 낯익은 낯선 거리를 지나 어색하게 약속된 번호를 누르고 현관에 들어설지도 모른다.

 

시인은 자신의 목소리로 우리에게 상당히 어려운 숙제를 읽어 주었다.

 

어제는 내가 졌다.

그러나 언제쯤 굴욕을 버릴 것인가

지고 난 다음 허름해진 어깨 위로

바람이 불고, 더 깊은 곳

언어가 닿지 않는 심연을 보았다

오늘도 나는 졌다

패배에 속옷까지 젖었다

적은 내게 모두를 대가로 요구했지만

나는 아직 그걸 못하고 있다

사실은 이게 더 큰 굴욕이다

이기는 게 희망이나 선이라고

누가 뿌리 깊에 유혹하였나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다시 싸움을 맞는 일

이게 승리나 패배보다 먼저 아닌가

거기서 끝까지 싸워야

눈빛이 텅 빈 침묵이 되어야

어떤 싸움도 치를 수 있는 것

끝내 패배한 자여,

패배가 웃음이다

그치지 않고 부는 바람이다

 

                                                 < 패배는 나의 힘 >

 

한 글자 한 글자 잘 뒤집어 읽다가 어디선가 잘못 뒤집히는 것이 이 詩다. 아직은 몇 번 더 뒤집어 보아야할 것 같다. 그러다보면 세상이 뒤집어질지도 모르지만...

 

  한 소녀가 시집을 사들고 태릉에서 여기까지 직장을 파하고 종종 걸음으로 달려왔다. 그리고 어머니를 제재로 한 시를 읽었다. 시인은 친절하게 그의 이름을 묻고 사인을 해주었는데 그 이름이 먼 데까지 들리지 않았다. 아마 점심을 굶었을 것이다.

 

낭송회가 끝나면 茶菓會가 열린다. 떡과 과일과 차...이 사치스런 식단은 모두 또 여주인의 부담이다. 다과회를 하며 애독자들은 한걸음 더 가까이 詩人에게 다가간다.

 

 

한 소녀가 시집을 사들고 태릉에서 여기까지 직장을 파하고 종종 걸음으로 달려왔다

 

 

[개코막걸리- 배다리의 맛집] 다과회도 끝나고 여주인의 배려로 막걸리 한잔의 시간이 또 주어졌다. 지금 배다리는 개발과 인정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다. 반은 허물어지고 반은 남아있는 - 그래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이지 않는 묘한 정체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헌책을 사러올 뿐 먹고 마시고 쉴 마땅한 곳이 없다. 뜻밖에 ‘개코막걸리’가 詩다락방앞에 있었다. 빛바랜 사진들이 걸려있는 최백호의 ‘浪漫에 대하여’가 떠오르는 - 그래서 정말 배다리를 지켜야한다는 그런 느낌의 식당이었다. 中老의 주인은 느릿느릿 맥주-막걸리-민물새우탕[속 풀기에 정말 좋았다]-감자 빈대떡을 내주었다. 땅콩조차 맛이 있었다.

 

38년간 아벨 서점을 운영했다는 그리고 ‘헌책을 발견했을 때 내가 책을 살려냈다’는 기쁨을 얻는다는 여주인은 ‘몸이 말한다’는 노동의 체험을 말한다. 관념이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몸이 세상을 바꾼다’는 그의 말은 술을 깨게 한다. 내가 이 주인을 만난 것은 30년이 넘는다. 책을 사고 돈을 건네고 ... 그리고 자주 들리지 않고 ... 20년이 지나고 나서 한마디 정도 하고 30년이 되어 목례대신 ‘안녕하세요!’ 이렇게 인사하게 되었다. 그사이 한 번도 새옷을 입은 것을 보지 못했다. 문에서 1미터도 밖에 나서는 것을 보지 못했다. 언젠가 상을 받는 자리에 잠시 들리는가 싶더니 이내 책방으로 돌아가는 것이 내가 본 그의 외출의 전부였다. 그의 인터뷰는 여기저기 많이 남아있다.

‘시낭송회를 왜 하게 되었고 또 앞으로 어떻게 하려는지?’

‘시를 좋아해서[이 말을 할 때는 전율을 느끼는 표정이다]-앞으로 흘러가는 대로...’

이 시다락방 여주인에게는 ‘詩의 물길을 연다’는 말이 어울린다. 물꼬를 트고 흘러 가는대로 물길 따라 함께 흐르는 詩를 머물게 하는 詩의 酒幕일까? 燈臺일까?

 

         예감

 

이제 사랑의 노래는

재개발지역 허름한 酒店에서 부를 것이다

가난한 평화는 한 블록씩 깨어지고 있다

그 아픔의 마른 냄새를 맡으며

잃어버린 大地를 찾지 않겠다

모든 밥벌이가 단기계약이듯

사랑도 이제 막바지다

새끼들 칭얼거림을 다 듣고

아내의 지친 한숨도 내 것으로 한 다음에야 노래는

터져나올 것이다

깨어진 기억은 길가에 치워져 있다

천장이 한없이 낮아

일찍 취하는 酒店에서

마시고 내린 빈 잔은 가슴에 담는다...

 

 

빛 바랜 사진이 걸려 있는 배다리의 역사 '개코막걸리'

 

 

여기까지 읽었을 때 날이 저물고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