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경향 미추홀칼럼

공교육(公敎育)과 한자(漢字)

양효성 2010. 3. 15. 21:11

 

 

 

  인천경향미추홀칼럼 2009.12. 16[수] * 원고는 신문게재와 약간의 차이가 있음.

 

 

          공교육(公敎育)과 한자(漢字)

 

                                                                                          梁曉星(양효성)

 

  사교육비 경감은 국정주요과제의 하나다. 학원의 플래카드에 ‘초등학교 학생 이름과 한자능력시험 3급 합격’이라는 선전문구가 종종 눈에 띈다. 3급은 교육용한자 1800자에 해당하니 대단한 실력이지만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니 어떻게 보면 이것도 사교육비 증가에 한몫을 한다.

 

  왜 돈을 들여 漢字를 가르치는 것일까? 자격증을 취득하면 대학입시와 취업에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수업능력도 향상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수능시험 고득점은 모든 학부형과 학생들의 소망이자 가문의 영광인 세상이다. 그 시험문제를 뜯어보면 문제도 답도 또 지문의 핵심어도 모두 한자다. 다만 ‘漢字’가 ‘한자’로 표기되어 있을 뿐이다. 수리영역 10번 문제에 ‘조개류는 현탁물을 여과한다’는 구절이 있는데 漢字(한자)를 아는 학생은 간단히 ‘貝類는 縣濁物을 濾過’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넘어간다. 수업시간에도 선생님이 설명하는 槪念을 재빨리 漢字로 파악하고 또 기억한다. 야구 감독이 상대의 사인을 훤히 알고 경기를 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런데 상대방은 사인을 내도 못 알아보는 선수를 데리고 있다면 또 어떻게 될까? 영어도 고학년이 되면 라틴어에 기원을 둔 추상적 개념들이 기하급수로 증가한다. 과학과 사회과목 모두 그러하다.

 

 

                     * 孔子의 고향인 濟寧市의 문화공원에서 물을 찍어 화강석 타일에 한자를 쓰고 있는 중국 아이들.

                       롤러스케이트나 타고 유행가를 부를 시간인데 부모도 학생도 산보객들도 모두 글자 앞에서 밤을 밝히고 있으니

                       가로등 아래서 螢雪之功을 떠올리게 한다.

 

 

          모든 교과서에서 조금씩 한자어를...

 

  내년부터 8차 교육과정이 시작되는데 한문에 관해서는 ‘범교과적’으로 다룬다고 한다. 즉 모든 교과서에 나오는 한자어로 한문교육을 강화한다는 뜻인데 한자는 우리 것이 아니라는 고정관념과 한자과외를 하지 않은 학생들로 한글세대 선생님들은 다소 곤혹스러울지 모른다. 그러나 걱정할 일은 없다. 선생님들은 한 시간에 하나의 개념만 연습해서 訓(훈)과 音(음)을 익히고 설명을 덧붙여 板書하면 된다. 학생들이 매일 6교시 공부한다면 하루에 6단어 1년이면 적어도 1200단어를 익힐 수 있다. 3년만 하면 이미 배운 한자가 연결되어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가는 메커니즘에 익숙해지면서 스스로 개념을 정립하게 된다. 이 단계에서 비로소 창조적인 능력이 싹을 틔우게 된다. 결코 서두를 필요가 없다.

 

  그러나 영어교육에는 거부감이 없는 사람들이 성과 이름은 한자로 쓰면서도 한자를 쓰면 민족의식이 손상된다는 주체사상(?)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 중국과 무역을 하면서 화폐에 적힌 한자를 이해했다면 한반도에 한자가 들어온 것은 적어도 2천년이 된다. 우리의 역사와 독자적 사상을 일군 도구의 하나였다면 이는 당연히 우리가 일상 사용하는 의미기호의 하나다. 자국어는 15%밖에 되지 않았던 영어가 라틴어를 비롯해서 아랍어와 獨逸語와 佛語까지 들여다가 세계적인 언어로 다듬어 역수출하게 된 것을 본받아 적극적으로 漢字를 활용하고 한글과 함께 갈고 닦아야한다.

 

 

           어렵게 배워서 쉽게 쓰는 것이 實用主義.

 

 

  그러나 어렵다는 先入見과 과학의 발달에 장애가 된다는 것이 한자 공부를 망설이게 한다. 한자는 214개의 부수가 조합을 이루며 알파벳 구실을 하는 독특한 視覺文字(시각문자)다. 시작은 어렵지만 자동차운전을 배워놓으면 걷는 것보다 편리한 점이 더 많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중국 홍보영화에 인공위성을 발사되는 장면에 주판을 튀기는 손가락이 오버랩 되곤 하는데 초창기에 컴퓨터 대신 그 복잡한 수식을 주판으로 풀었다는 자부심을 과시한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孟子(맹자)를 배워가며 중국에 접근하는 것은 단순히 國債(국채)2조달러 때문만은 아니다. 한국의 사법고시와 같이 작문도 하고 수식도 풀며 3일간 대학입시를 치르는 중국과 현대적 학문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漢文만 쓴다고 과학이 뒤떨어진다는 것도 비약이다. 學校敎育과 小說에서 중국보다 어려운 漢字를 거침없이 혼용하는 日本이 노벨상을 받아내는 것을 보면 漢字가 더 이상 과학의 발목을 잡는다고 강변할 수도 없는 일이다.

 

  한자가 양반언어(?)로 규탄을 받은 것은 봉건주의시대에는 틀린 말이 아니었다. 1949년 한글전용법안이 상정되었을 때는 대학졸업자가 손가락으로 셀 수 있는 정도였다. 지금 대학이 의무무교육(?)이 되다시피 한 현실에 더 이상 漢字가 어렵다는 말은 의미가 없다. 이런 사정을 알만한 교육귀족들은 모두 알아서 제 갈 길을 가고 있다. 庶民은 한자를 못 쓰게 의식화하고 규제를 강화해놓고 한자지식특권층이 생겨나는 현실을 公敎育(공교육)은 더 이상 방관해서는 안 된다. 사교육을 부채질하는 空敎育(공교육)이라는 말을 듣지 않으려면...<*>

 

* 이 문제는 建國60년 수많은 지식인들이 제기하고 憲法이 바뀌고, 文敎部의 명칭이 바뀌고 또 政權이 변했음에도 搖之不動이다. 그리고 이 중요한 문제가 교육부 편수관 한 사람에 의해 鞏固히 유지되고 있는 점도 疑訝하다. 이것이 한국의 文化水準이고 또 미래의 가늠자일 것이다. 다만 아이러니하게 自由市場經濟의 원리에 따라 제 각기 私敎育으로 의무교육의 의무를 짊어지는 현상도 流行처럼 번지고 있다. 民衆의 힘을 기대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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