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경향 미추홀칼럼

尊敬(존경)과 信賴(신뢰)

양효성 2010. 5. 13. 06:48

2010.1.6.(수)인천경향미추홀칼럼

 

                  尊敬(존경)과 信賴(신뢰)

 

                                                                                                          양효성(梁曉星)

 

 

  경제위기, 광우병, 북핵문제, 서해대전, 이산가족, 대운하, 미디어법, 외국어고, 교원평가제, 세종시 등등 쉴 새 없이 시끄럽던 이 모든 갈등들을 바겐세일 하듯 사회통합위원회에서 통째로 해결하려는 것이 정부의 생각인 듯하다. 현명하게도 위원회에서 이 문제를 계층, 빈부, 세대, 지역, 이념으로 명확하게 분류하고 구체적이며 실현 가능한 의견들을 제시할 것으로 보이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짚고 넘어가는지 진정성이 의심스럽다. 이 갈등의 저변에는 우리 공동체가 심각히 생각해야 할 멸시와 불신이 깔려있고 이 상태가 지속되면 공동체의 유대가 와해될 것이라는 데에 그 심각함이 있다.

 

      인간은 모두 평등한 존재

 

  갈등(葛藤)은 칡과 등나무가 반대로 꼬이며 성장하는데서 생긴 말로 그 뿌리를 자르지 않으면 해결될 수 없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 갈등의 원인은 어느 한 쪽 또는 쌍방의 오해, 불만, 과욕 등등이 상대방에게 용납되지 않는 상황에서 발생한다. 조기에 수술하지 않으면 암처럼 난치병이 되기 마련이고 골수에 미치면 아집을 넘어 맹목이 되기 일쑤인데 무엇보다 인간의 대한 이해의 부족이 문제다. 이는 아무래도 한국 민주주의 진행과정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서구민주주의가 시장과 장인이 축적한 자본으로 자신들의 소리를 높인 수평적이고 자생적인 반면 한국은 식자층이나 외국의 선례를 수입한 하향식 계몽적 관제성격이 강하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말을 농민이 부르짖느냐, 임금이 교유(敎諭)하느냐는 데는 분명 차이가 있고 나아가 임금이 사농공상(士農工商)을 대하는 태도에서 이 정서의미는 굳어지게 된다. 존중과 신뢰의 바탕에서 우러나오는 ‘사장님1’과 경영조직의 일원으로서 ‘사장님2’는 다르다. 이 두 얼굴의 사장님이 하나로 일치될 때 어느 방향이든 갈등은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존중이란 상대가 아닌 자신의 인격에서 출발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있다면 ‘아는 만큼 존중한다.’는 말도 성립한다. 겸손에 위아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진실한 사람의 겸손과 존중의 무게는 분명 다르다. 결국 언어와 행동에서 존경과 신뢰는 드러나고 갈등은 증폭되거나 해소된다. 노사협정기간에 대화의 창구를 닫아놓고 파업을 할 테면 해보라고 배를 내미는 것은 갈등을 유발하는 행위다. 내 돈 내가 쓰는데 무슨 상관이냐며 부동산투기를 일삼는 부유층도 갈등의 탑을 쌓는 것이다. 특히 정치인들의 말도 도마에 오른다. ‘플러스알파’, ‘퍼주기’, ‘백년대계’, ‘보금자리주택’, ‘헌신’, ‘봉사’, ‘평가’ 등등도 조심해야할 말들이다. 선생님은 존경의 대상이지 평가의 대상은 아니다. 공화국의 예산은 국민의 돈으로 절차에 의해 정확하게 집행하는 것이지 어느 개인이나 권력이 선심을 쓰듯 덜 주고 더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백년대계니 역사적심판이니 하는 말들도 국민의 수준을 너무 높게 보는 말이다. 서민들이 눈앞의 일도 모르는데 어떻게 부연설명도 없는 백년 뒤를 알겠는가? ‘임기 내에 운하는 안 한다’라고 말하면 국민은 ‘임기가 지나면’에 밑줄을 긋고 또 불안해진다.

 

      말은 믿음의 출발

 

  이념의 갈등이야말로 심각한 문제다. 개념도 모호한 좌파와 우파를 만들어 놓고 자신의 주장에 반대하는 사람을 무조건 반대파에 밀어 넣는 것이야말로 불안을 배가시키는 일이다. 지역을 좌우로 가르다가 이념으로 좌우를 가르고 이제 남북도 부족해서 서울과 지방으로 양분하는 양상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 계층은 이런 편가르기를 즐기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심마저 든다. 경제위기-서해대전-일자리창출 등을 한 줄로 늘어놓으면 국민은 위기를 느낀다. 그리고 어느 파에 가담하여 그 세력의 심리적 보호를 받고자한다. 만에 하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참 나쁜 정부다.

 

  새해에는 개념을 정의할 수 있는 분명한 말을 쓰도록 노력하자. 그 말에서 신뢰가 생기고 존경심이 우러나도록 하자. 서로 존경하는데 지역이나 계층이나 갈등이 생길 까닭이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