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경향 미추홀칼럼

詩는 科學인가?

양효성 2010. 3. 18. 09:17

<인천경향 미추홀칼럼 2009.11.25(水)> ** 초고의 내용은 신문게재와 약간 다름.

 

                  詩는 科學인가?

 

                                                                               梁曉星

 

문화제국주의라는 말이 유행했는데 생각해보면 제국주의라는 것 자체가 고금동서 ‘문화’라는 놈을 잡아다가 영지의 노동력을 이용하여 호사를 누리는 형태였다. 중국이 제국이었을 때 어떤 형태이건 변방의 문화를 서울[京師]로 끌어들였다. 한번 끌어들이면 그 ‘文化’하는 사람을 漢族으로 만들어 아예 인종을 바꿔버렸다. 국력이 힘에 부쳤던 일본은 유학생을 보내 목숨을 걸고 그 문화를 일본열도로 끌어 들였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50년간 팍스아메리카나를 노래 부른 다인종사회 미국의 힘도 알고 보면 전쟁통에 고향을 떠난 피난민들의 문화총생산[GDCP]이라고 불러 무방할 것이다.

 

굳이 제국주의라기보다 교역을 통해 살아남으려면 이 문화적 역량을 기르는 수밖에 없는데 한국도 또 인천도 자립도를 높이려면 ‘창조적 문화’에 온힘을 기울여야하지 않을까? 어느 저명한 科學者에게 ‘시는 과학이다’라는 말을 했더니 ‘-네가 과학을 알기나 해-’ 이런 표정이었다. 이번에는 人文學者에게 똑같은 질문을 했더니 ‘詩의 넋’이 날아간 듯 화들짝 놀라는 것이었다. 조지훈의 ‘민들레꽃’이라는 시가 있는데 학생들에게 ‘민들레’를 아느냐고 물었더니 스승의 날 카네이션은 잘도 사오는 학생들이 꽃씨를 바람에 날리는 노란 봄꽃을 본 일이 없다고 한다. 그 잎이나 줄기로 나물을 무친다는 것도 모른다. 비행기가 날 수 있는 것은 ‘고체가 유체 속에서 움직일 때 생성되는 기계적인 힘의 일종’인 양력의 힘이라고 배우면 이해가 빨리 되고 흥미가 생기고 심취할 수 있을까?

 

과학의 출발은 결국 호기심에 있지 않을까? 살아있는 민들레 나물을 씹어보고 꽃씨를 날려보는 순간에 과학은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놀이 기구에서 비행기를 생각하는 과학자와 민들레 꽃씨에서 비행기를 생각하는 과학자는 차이가 있다. 뒤집어 말하면 흥미가 사라지는 순간에 詩도 科學도 죽는 것이다. 들판과 갯벌을 헤매며 신기한 눈초리로 올챙이와 게를 더듬던 학생들이 대학에 들어갈 때 쯤 되면 올챙이에 다리를 그리는 판타지의 늪에 빠지고 만다. 과학의 창조가 아니라 답습이요 맹목적 모방이다. 이 젊은이가 우리의 미래를 떠맡기에는 장래가 너무 불안하다.

 

靈感은 詩요, 詩는 科學의 어머니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을 생각한 뉴턴을 단순히 천재라고 치부하기보다는 뉴턴이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놀랄 줄 안다는 것’에서 천재성을 보아야 한다. 그 놀람에 시가 있다. 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영감'이라는 말의 영감이 곧 시다. 1%는 적은 수이지만 그것이 99%를 이끌어내는 힘이다. 최선을 다하고 패배한 선수에게 위로하는 2%가 부족하다는 유행어가 바로 이런 의미일 것이다. 영감은 詩요 詩는 과학의 어머니다. 그 놀람이 이 땅 이 자리에서 오늘 일어난다는 것이 중요하다. 서울이나 외국에 가서 놀라는 것은 다음 문제다. ‘...나는 가만 바위너설에 붙어 있는 따개비며 삿갓조대며 갯강구를 본다. 그러다 난 바위의 기원에 대해 생각한다...’ 어느 인천 시인이 한월리의 개티에서 쓴 시의 한 구절이다. 이 땅에서 미물인 따개비를 보고 우주의 기원을 생각하는데서 우리 문화를 시작해야 한다. 이 생각이 바로 무지개를 보고 놀란 시인의 한 구절이 태양이 지지 않는 나라의 문화를 만들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한때 일본을 ‘모방하는 원숭이’라고 비웃은 적이 있는데 그들은 그 모방을 바탕으로 일본 만의 문화와 전통을 일구고 또 그것으로 유럽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 유럽은 그 문화의 전통으로 달러에 대한 유로화의 우위를 단숨에 이끌어 냈다. 우리는 과연 모방이라도 제대로 할 줄 아는가?

 

도심재생에도 詩가 깃들어야

 

어떤 낙관적 성장론자가 ‘건물만 있고 집이 없다고’ 호된 질책을 받은 일이 있다. 피자를 키워야 한다고 해놓고 공갈빵을 부풀려 놓으면 서민은 공기를 씹으란 말인가? 도심재생 사업에도 시가 있어야 한다. 크고 번듯하고 돈이 될 비싼 집보다는 형편에 맞게 정을 붙이고 길이 살 수 있는 ‘사람이 사는 집’을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도 詩다. 골목의 담장에 그림을 그리는 것도 詩다.

 

중국 어린이들은 초등70편 중학50편의 고전을 외우게 하고 지도자는 시로 외교를 한다. 유럽의 어린이들은 TV나 컴퓨터게임, 디즈니랜드 보다는 동화와 시로 어린 시절을 보낸다. 프랑스를 미술의 나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지 모르지만 철학과 과학이 발달했고 노래를 詩로 읊조리며 과학을 예술이라고 즐겨 생각한다. 인도나 일본이나 모두 자신들의 시가 있고 미래가 있다. 水耕栽培만으로 튼튼한 재목이나 건강한 채소를 기를 수는 없다. 먼 것처럼 보이지만 힘을 모으면 전혀 다른 세상을 만들 수 있다.

 

살아있는 과학. 인류에 이바지할 과학은 시적 感受性에서 출발한다. 근래 인구가 급격히 늘어난 신도시 인천은 아무래도 정체성을 모색하여 세계적인 명성을 얻을 인천만의 브랜드를 만들어야하고 또 전통을 가꾸어야 독자성을 갖게 된다. 2007년 이맘 때 시작한 ‘배다리 시 낭송회’가 벌써 25회째를 맞는다고 한다. 우선 시민들이 한 권의 시집을 들고 그만큼 인천문화에 창조의 텃밭을 넓혔다고 생각하자! 서투르지만 한 줄이라도 노트에 시를 쓰면 인천의 문화텃밭에 싹이 돋았다고 생각하자! 그리고 서로 詩를 생각하고 한 줄이라도 詩로 대화하며 인천이 그만큼 다정해졌다고 느끼자! 어렵다고 포기하지 말고 어려우니까 더욱 맨손에 한권의 시집을 들어보자고 생각하자! 이 겨울이 좀 훈훈하지 않을까? < * >

 

이 글이 揭載되자 아주 긴 댓글을 어떤 분이 올려 주었다. 그 C는 나와 오랜 친구인데 내 글이 이런 좋은 글을 만든 계기라고 생각한다. 누군가 불을 지피면 옮겨 붙기 마련인데 나는 성냥을 좀 낭비했다. C의 글이 ‘꺼지지 않는 촛불’이 되기 바란다.

 

중학교 때였다.

읍 소재지의 학년에 3학급밖에 되지 않는 중학교.

까까머리 사춘기.

아스라한 기억 저편에 남아 있는 몇몇 편린은 아직도 가슴 설레인다.

어느 날 비포장 하교길,

하얀 브라우스에 짙은 감색 자켓, 주름진 치마의

여중 교복을 입고 나타났던 나의 첫사랑.

그 첫사랑의 홍조어린 뺨과 하얀 자위 위에 빛나던 검은 눈동자는

풀고 싶지 않은 기억이다.

그처럼 설레였던 아름다움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을지도 모르니...

 

국민학교 때 연필은 펜과 잉크로 바뀌고

머리는 빡빡 밀었지만 대신 짙은 검정색 모자을 관처럼 썼다.

半成年이 된 것이다.

 

그리고 영어를 처음으로 배운다는 것 그것이 중학생이었다.

코쟁이가 동물원 호랑이만큼이나 멀었던 그 때

영어를 배운다는 건 이제 본격적으로 미답의 세상길로 들어선다는 것.

어느 날 영어 시간이었다.

선생님이 어떤 분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영어 교과서의 제목은, <<Tom and Judy>>였다.

“I am Tom. You are Judy.”로 시작된

1학년 교과서는 아니었던 것 같고, 2학년 후반부, 3학년 교과서였을 것이다.

그 교과서에 다음과 같은 시가 실려 있었다.

 

Who has seen the wind?

Neither I nor you;

But when the leaves hang trembling,

The wind is passing through.

 

Who has seen the wind?

Neither you nor I;

But when the trees bow down theirs heads,

The wind is passing by.

 

누가 바람을 본 적이 있을까요?

저도, 당신도 본 적이 없어요.

하지만 나뭇잎들이 떨며 흔들릴 때,

바람이 그곳을 스쳐 지나가지요.

 

누가 바람을 본 적이 있을까요?

당신도, 저도 아니 보았어요.

하지만 나무들이 머리를 조아릴 때

바람이 옆을 지나가고 있지요. (translated by outsider)

 

(詩人이 teenage 때 쓴 시이며, wind를 윈드로 읽지 말고 '와인드'로 읽는 것이 시적이라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을 들은 기억이 어렴풋하다. 아주 나중에 알아보니 Christina Rossetti라는 19세기 영국 여류시인의 작품이었다.)

 

아? 아! 아...

이렇게도 눈으로 볼 수 없는 바람을 우리는 시로 볼 수 있다니!

내 나이 또래 때 시인이 썼다니.

까까머리 시골 중학생은 그렇게 영어를 만났고,

색다른 시세계를 만났다.

 

연결되지 않지만,

국민학교 6학년 때 호랑이같이 무섭고 열정적이었던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시를 만났다.

어쩌면 말과 글은 그저 암기하고 배워야 하는 짐이라 생각했을 그쯤에

아주 잘 쓴 시라며 눈발에 힘을 주며

어느 먼 학교의 6학년 어린이가 쓴 무척이나 짧은 시를

하얀 백묵으로 칠판 써 주셨다.

짧았기 때문에 기억되는 걸까...

 

“우리 선생님은

피아노를 못 치신다.

늙으셨기 때문이다...”

 

어린 6학년 교실의 나로서는 충격이었던 같다.

어렴풋하지만 저것도 시인가하는 의아심 때문이었을까.

40년이나 되는 시간이 흘러

많은 것들은 기억 멀리 사라졌지만

그 하얀 분필의 시는, 맺지 못한 마지막 '...' 와 함께 아직도 또렷하다.

 

삶의 이런저런 부대낌 속에서

이러한 詩心은 어디로 왔다갔다했는지 모르지만

내 몸 속 어디엔가 항상 잠재하며 깨어났다간 잠잤다간 했을 게다.

시를 자주 접하진 못했지만, 아주 간간히 접하고 싶어 했다.

 

시를 말하긴 그지없이 쑥스럽고 부끄럽지만...

시는 과학인가.

 

과학 아닌 것이 어디 있을까.

하기야 과학도 이리저리 미분된다.

자연과학, 인문과학, 사회과학 등.

더 나아가면 물리학, 화학, 지구과학, 생명과학, 나노과학, 뇌과학 등등등,

현재 인간은 어쩌면 '과학하는 인간(Homo Scientificus)'이라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탐험하지 못한 미답의 세계를 개척해 가는 존재다.

이미 알려진 것은 과학으로써 가능했다.

거기에 머물 수없는 것이 우리의 존재함이다.

 

미로같이 엉클어져 있고,

풀지 못할 아득한 벼랑 끝에 있을 지라도,

우리는 갈 수밖에 없고, 가고 있고, 가고자 하는 것이다.

전전두엽**은 몸뚱아리의 전위에서

움츠린 심장과 손과 발을 다독거리며

엉클어진 미로를, 벼랑 끝 아득함을 헤아리고 헤쳐 간다.

그리고 이러한 迷惑의 아픔들과 경이로움을 언어로 표현한다.

그래서 시는 과학이다.

 

시적 영감은 몸밖 어디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뇌의, 전전두엽의 벼랑 끝에서

배회하거나 뛰쳐나오는 울림이다.

 

이런저런 미분적 시론과 시학이 있겠다.

시는 무엇인가를 위하여 쓸 수도 있다.

과학의 영감을 일으키는 시를 말할 수 있다.

물질 문명 너머의 문화적 아우라를 한 편의 시로 연출할 수 있다.

 

허...나...

터무니없지만

一切皆苦다.

하지만 苦란

과거(古)로부터 뿌리내리고 움트는 싹이며 피어나는 꽃(花)이다.

번뇌장은 곧 여래장이며, 중생계는 붓다계이다.

그래서 우리는 시를 쓰진 않을까.

고타마 붓다도 시인이었다.

 

다시 터무니없지만

언어적 존재인 우리가 시다.

시는 시에만 있지 않다.

시귓의 마지막 방점 바깥에도 있고

시라고 아니한 곳에도 노래한다.

시는 그 무엇을 위한 것이 아닌,

우리의 읊조림이며

우리의 좌절이며

미로 속의 몸짓이며

벼랑 끝에서 날고자 하는 환영(시물라크르)이진 않을까.

 

**우리가 인간인 것의 핵심은 뇌과학적으로 우리 뇌의 전전두엽에 있다고 한다.

다 밝히진 못했지만. 전전두엽의 활동으로 어쩌면 우리는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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