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재발견

대학신입생과 할아버지의 대화 <1>

양효성 2010. 2. 19. 10:55

 

대학신입생과 할아버지의 대화 <1>

 

 

* S는 대학 신입생 18살 젊은이다. 이 젊은이가 우리 집에 한달 쯤 왕래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漢字공부도 조금 했다. 내[Y]게는 제3세대 제자인데 언어능력이나 기초교양이나 학문에 대한 열정이나 대학 수업을 받기에는 부족해 보였다. 그러나 12년의 입시지옥의 후유증이라고 생각한다. 두서없이 나눈 대화록을 남김으로써 뒷날 반성의 자료로 삼으려 한다.

 

[1] 맨 처음 인간의 이상형으로 知情意-眞善美 두 개의 삼각형을 제시하고 생각하는 바를 물었다.

 

[S] 지정의, 진선미는 사람이 살아가며 배워가고 만들어가는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나에게는 아직 많은 부분이 부족하지만 앞으로 긴 시간동안 학문을 배우고 연구하며 지성을 일깨우고 감정을 자극하며, 의지를 견고히 하고 진실되고 선하며 아름다운 모습을 만들어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Y] * 상윤이를 자주 만나면서 보니 知識의 분야에서는 언어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모든 학문은 언어를 통하여 즉, 책을 읽어서 그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고 자신이 소화하고 깨달은 바를 언어로 표현하고 실천함으로써 (실천을 덕이라 할 수 있다.)완성된다. 한국인에게는 학문의 언어로써 漢字를 빼놓고 생각할 수 없다. 이점이 치명적 약점이었다. 漢字를 배우지 않으면 4년간의 대학생활뿐 아니라 졸업 후의 평생과 나아가 자손에게까지 그 그림자가 듸리워진다. 다행히 기러기 한자 한 권을 쓴 것이 성과라면 성과다. 한번 써보면 겁나지 않는 것이 산에 올라보면 내려오는 일은 그렇게 어렵지 않고 다시 오를 때도 무섭지 않다.

5월에는 한자 능력시험에도 응한다 하니 크게 기대한다. 또, 22일에는 오리엔테이션에서 영어시험을 본다하니 그 또한 좋은 일이다. 내가 평생 강조해온 바와 같이 유럽의 라틴어와 동양의 한자, 이 양자가 인류 5천년 문명의 축이다. 한자를 이용해서 중국어와 일본어에도 능통할수 있기를 바란다. 이러기 위해서는 상윤이의 장점중 하나인 mp3사용, pmp, 인터넷 등을 이용해서 실질적인 언어능력이 향상되기를 희망한다.

다음으로, 體育은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 하나는 개인의 생존문제다. 달리기, 철봉, 등등은 개인이 자신의 한계와 싸우는 의지의 표현이다. 뒤늦게 농구를 좋아하는 것도 매우 좋았다. 또 다른 측면이 바로 협동심과 사교다. 인간은 음악 미술뿐 아니라 땀을 흘리고 몸으로 부딪히는 체육을 통해 성장하고 생활하기 때문이다. 헬스클럽에 꾸준히 다니는 것이 매우 뿌듯하다.

그리고 친구를 사귀는 데 있어 情을 쌓아가는 것으로 음악과 미술을 빼놓을 수 없다. 현대 음악이 당연히 현대의 사회를 반영함으로써 매우 빠르고 다이내믹한 목소리를 자아내는 것은 극히 당연한 일이다. 바라건대 조용한 음악, 그리고 명화라고 불리는 것들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대학생활을 통해 익히기 바란다. 古典音樂과 그림을 보고 詩를 읊는 친구를 통해서 인격이 형성되고 배우자를 만나게 되고 개인의 행복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2] 민속학과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

 

[S] 배치표에서 내 성적에 맞는 대학을 찾다가 우연히 발견한 학과다. 처음에는 이게 뭐지? 과연 나에게 도움이 될까? 싶었지만 인터넷을 통해 자료를 찾아보고, 관련된 문고를 조금 읽어보니 의식주와 심적 가치까지 뿌리를 내린 민속학의 다방면적인 모습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앞으로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민속학은 그런 나의 계획을 충족시키기에 아무런 모자람이 없는 학문이다. 앞으로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으리라 믿는 곳이다.

 

[Y] *대학의 선정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직업으로서 다른 하나는 인격의 수양을 위한 것이 목적이다. 기성세대는 오로지 먹는 것에 주의를 집중했다. 상윤이가 안동대학 국문과에 가서 학교 선생님으로서 우선 밥벌이를 하며 그 다음에 자신의 취미를 살리는 것이 순서가 아닌가 생각했는데 민속학과에 지원했다고 한다. 지금으로 생각하면 이제 오갈 길 없이 대학 교수가 되는 수밖에 없다. 지금 국립대학의 학자금은 다행스럽게 아버지의 경제력에 적절한 수준이다. 상윤이가 노력해서 대학원과 박사과정을 마치고 꾸준히 공부하기 바란다. 공부의 핵심은 初志一貫하여 장벽을 뚫고 나면 밥벌이도 깨달음도 함께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공부가 부족하면 결국 둘 다 잃는다는 말이 된다. 또, 하나의 학문은 당연히 모든 분야를 한 묶음으로 깨닫게 한다. 달걀에 맞구멍을 뚫으면 쪽 빨아먹을 수 있다. 한 개의 구멍만 뚫으면 결코 노른자위를 먹을 수 없다. 장벽을 뚫고 나가려면 끊임없는 노력을 해야 한다.

 

[3] 여기 오면서 금전출납부를 쓰게 했는데 그 이유를 생각해보았는지?

 

[S] 몇 번 써보고 나니 내가 돈을 쓰는 패턴이나 주로 어느 곳에 사용하는지 알게 되었다. 덕분에 월초에 금액을 딱 나누어 사용하는 습관이 생겼다. 충동적인 구매를 하기 전에 몇 번 고민하는 습관이 생겨 스스로 좀 대견하다 싶다.

 

[Y]*상윤이가 투명하게 써서 제출하지 않은 것이 불만이다. 본인만 정확히 썼다고 하고 남에게 내 놓을수 없다는 것은 요즘 유행하는 투명성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재벌이 소액주주를 모아놓고 최선을 다했다고 하는 말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래서 나는 컴퓨터에 블록 계산식을 이용해서 금전 출납부를 정리하기를 여러 번 종용했다...물론 상윤이를 믿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 내용에 책을 사는 부분이 얼마인가- 그것이 나에게는 가장 큰 관심사다. 책을 사는 데는 돈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돈이 없다면 당연히 이 부분에 대해서 용돈을 인상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 나머지는 상윤이가 쓴 답과 100퍼센트 일치한다.

 

[4] 자신을 돌이켜 보고 장래를 설정하는데 일기만큼 좋은 것이 없다. 그것을 매일 써서 카페에 올리기로 했는데 매우 용용했다고 생각하는데...

 

[S] 처음엔 내 사생활을 공개한다는 게 싫고 부끄러웠지만 조금 재미를 들여 보니 따분하고 단조로운 하루하루에서 일기거리를 찾으려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나를 볼 수 있었다. 안동에 가서도 내 노트북에 일기를 매일, 이틀에 한번정도 꾸준히 적어서 책 분량을 만들어 봐도 좋겠다고 생각한다.

 

[Y] * 일기는 두가지면이 있다. 첫째, 꾸준히 써야한다. 둘째, 자신의 일기를 한 묶음으로 일정기간에 다시 읽어보아야 한다. 다시 읽음으로써 반성해야할 거리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을 변증법적으로 바로 잡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 말할 것 없이 상윤이의 재능이 글쓰기라는 것도 일기를 통해서 알게 되지 않았는가. 상윤이의 일기에는 당연히 일상생활뿐 아니라 가끔 詩도 엮고 있는데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다만, 사귀고 있는 친구와 일상생활의 경험이 너무 단조롭지 않은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꿈 많은 나이인데도 말이다. 꿈이 없다 그런 말이야. 부모님이 얼마나 고생하는가, 내가 부모님을 공양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측면보다는 부모님에게 얼마나 기대고 있는가? 그런 것도 생각해 볼 일이다.

 

[5]독후감을 쓰도록 강요했는데 겨우 숙제만 하고 진전이 없었다?

 

[S] 독후감을 평소에 쓰는 버릇이 없어서 어떻게 써야할지를 잘 모른다. 최근 읽은 책으로는 ‘승자는 혼자다’, ‘동국세시기’, ‘낮선 곳에서 나를 만나다’, ‘낮은 데로 임하소서’ 등이 있는데 잊어버리기 전에 빨리 써야겠다.

 

[Y] * 가장 불만스러운 것 가운데 하나다. 저자, 책 이름, 이 책을 접하게 된 계기, 독서 기간, 이것은 거의 기계적으로 쓸 수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감상을 적기에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으면 책에서 인상적인 부분을 몇 줄 옮겨 놓으면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상윤이의 소개로 ‘승자는 혼자다’를 읽었는데 이런 소설을 왜 읽어야 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론, 이 시대를 특히 한국 학생들 대부분-유럽 학생들에게는 일부분이겠지만-에게 절대적 호응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당황했다. 물론 그런 면에서는 나도 매우 흥미롭게 보았다. 글을 잘못 읽으면 사람을 망치는 것도 시간문제다. 반대로 자신이 바로 서있으면 스스로 잘못 딛고 있는 사회 환경에서 한걸음 빨리 벗어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나는 요즘 ‘열국지’와 ‘법문사의 비밀’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생각한 바가 많았다. 아무튼 책을 빌려갈 때도 반드시 일기에 적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발칙한 한국인’ , ‘죽을 각오로...’등을 읽어보라고 주었는데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대학에 가거든 텍스트를 밑줄 그어가며 두 번 세 번 읽고 노트에 정리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6] 대학에 들어가서 학습의 단기-장기계획을 어떻게 세우셨는지?

 

[S] 토익은 대학교 졸업할 때를 맞추어 1학년때 설정한 목표점수가 나올 수 있도록 천천히 공부한다. 언어관련 공부는 고등학교 식으로 빠르게 하면 체하기 때문에 되도록 차근차근히 해갈 생각이다. 漢字는 1년마다 1급수 높여가자는 생각으로 공부한다. 교본을 사서 5월에 있는 자격증 시험에서 자격을 따도록 한다. 학교공부는 꾸준한 노트필기가 정답인 것 같다. 1학년 때는 고등학교의 연장선이라고 하니까 하루하루 꾸준히 복습하는 게 최선이다.

 

[Y ] 이렇게 확실하게 공부한 상윤이가 수능 성적표를 대조해보면 참 이상한 일이다. 아마 출제의원들의 문제가 잘못되었거나 채점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7] 이제부터 자신의 일은 자신이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짜임새 있게 완료해야 한다. 개학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짐꾸리기와 무엇을 가져갈 것인지?

 

[S] 기숙사가 되면 - 이불, 공책 다수, 필기구 다수, 스탠드, 족자, 부엉이[이것은 할아버지가 잠을 자지 말라고 일본에서 사다주신 손톱만한 인형인데 공부를 잘 하면 정말 좋은 미네르바의 올빼미를 사주신다고 한다.], 소형 책꽃이, 충전기

기숙사가 안 되면 - 침낭, 이불, 공책 다수, 필기구 다수, 스탠드, 족자, 부엉이, 소형 책꽃이, 3분요리, 충전기

 

[Y] 이 모든 것은 반성에서 비롯되고 약속으로 이행된다. 실천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요즘 친구들의 근황은?

 

[S]친구 A~L

 

A : 박모군은 현재 중앙대 안성캠퍼스 정모에도 나가고 나와도 자주 만나고 있다. 대학생활 재밌을 것 같다고 은근히 기대하는 중

 

B : 송모군은 원하던 대학이 안 되서 많이 실망하는 눈치였지만 곧 회복하고 즐겁게 인천에서의 마지막을 보내는 중

 

C : 박모군2는 못해도 S대에 갈 줄 알았는데 I대에 입학하고 충격을 많이 받은 듯하다. 그래도 빵집을 하겠다는 자신의 꿈은 버리지 않은 듯

 

D : 김모군은 특유의 똘끼?로 재수생활을 잘 해나가고 있는 듯, 집이 학벌을 중요시해서 스트레스 많이 받을 것 같은데..

 

E : 농구선생 김모군2는 요새 자동차를 끌고 이 동네 저 동네 다니며 운전연습 중. 충주대 붙어서 요샌 기분도 좋은 듯. 기분 좋다고 액셀 세게 밟다가 사고 나지나 않나 걱정됨.

 

F : 농구선생2 손모군은 게임에 미쳐 사는 중. 내가 가끔 게임에 접속하면 언제나 손모 군이 먼저 인사한다. 그럴 시간에 나 농구나 좀 더 가르쳐주지?

 

G : 임모군은 재수공부 열심히 한다면서 맨 날 우리 모일 때 꼭 옴. 그래도 평소에 잘했으니까 이번엔 잘할 거라 믿음. 술 잘 먹는 척 하더니 나보다 못 마심.

 

H : 김모군2는 3월달 입대에 대비해서 머리도 파르라니 깎음. 애처로움. 별명이 고라니인데 군대 가면 근육고라니가 되는 거 아니냐고 맨날 놀림. 이러다 총 맞을 것 같음.

 

I : 이모군 역시 김모군 따라서 3월달 입대. 얘는 성격이 워낙 여성스러워서 가서 잘 적응할지나 걱정됨. 술도 못 마시면서 한번 마셨다가 김모 군한테 업혀서 퇴장함.

 

J : 박모군3는 현재도 학익동 시즌2피시방에서 게임이나 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됨. 손모군은 얘에 비하면 약과임. 지난번에 피시방 습격해서 끌고나오긴 했는데 점점 폐인이 되 가는듯. 뽀송뽀송한 애기피부에 여드름이 나기 시작함.

 

K : 김모군3는 현재 단국대 경주캠에서 OT중. 자기 과에 이쁜 여자애 있다고 자랑함. 근데 걔네 과는 여자 5명이고 우리 과는 여자 20명.

 

L : 나모군은 지금 용인 재수학원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을 것으로 사료됨. 얼마 전 졸업식에 예고도 없이 등장해서 너무 반가웠음. 1년 후에 만나서 놀고 싶은데 그때쯤이면 나도 군대가니까 언제 만날지 걱정됨.

 

*구마모토 50년이라는 DVD를 보았다. 그것을 읽고 메모를 하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대답했던 내용도 적어두어야 겠다. 무엇보다도 반가운건 상윤이의 식생활이 좀 남자답게 바뀐 것을 선생님이 굉장히 좋아하신다.

 

2010.1.18. 주막의 등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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