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엄마와 그림전람회
오늘은 그림 이야기입니다. 음악이 듣기와 관계가 있다면 한자에 讀畵(독화)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그림은 읽기와 관계가 있습니다. 여기까지 읽으신 어머님은 이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대강 짐작하셨을 것입니다. 잘 생긴 사람을 耳目口鼻(이목구비)가 번듯하다고 합니다. 귀로 듣고 눈으로 事物(사물)을 봅니다. 事物에는 罪가 없습니다. 인간이 무엇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죄도 선행도 생깁니다. 그 意識(의식)이 보는 것을 입으로 말하고 손으로 씁니다. 이것이 인간과 다른 생물과의 차이입니다. 그림과 노래를 감상하는 지극한 경지는 지금 말할 때가 아닙니다. 아직 성장하는 과정이니까요... 다만 우리는 어린애의 귓불을 어루만지고 눈체조를 시키고 이빨을 닦고 방에서 수건을 말리며 코를 보호해줍니다. 耳目口鼻(이목구비)가 번듯해지라고...
어린 아이는 태어나면서 세상이 뿌옇게 보입니다. 냄새로 어머니의 젖을 더듬지요. 그러다가 세상이 또렷이 보이고 아버지의 얼굴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갑자기 너무 많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집중력을 잃고 더욱 빠르게 움직이는 것에 몰입하다가 산만해지고 급기야 다시 초점을 잃게 됩니다. 아이를 좀 차분하게 키워야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어느 집에나 그림이 걸려있습니다. 달력에도 비누에도 칫솔에도 수건에도 식탁에도 그림이 있습니다. 그림이 너무 많은 것도 문제겠지요. 아이들의 공책에는 과목과 반 번호 이름을 쓰는 세 줄이면 되는데 만화로 범벅이 되어 무슨 공책인지 알 수 없습니다.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인쇄 된 세잔느의 사과를 그린 정물화를 식탁 옆에 붙여 둡니다. 사과를 깎을 때도 먹을 때도 흘낏 봅니다. 그러다 어느 날 사과를 그림처럼 배열해 봅니다. 도화지에 순서대로 동그라미만 그려봅니다. 얼마 지나 한번 그려봅니다. 사과의 빛깔, 명암, 원근, 보는 각도에 따라 변하는 구도...사물이 다양하게 보입니다. 자연히 관찰력과 창조력이 생깁니다. 사과를 이렇게 10년 먹는 아이는 분명 기하도 자연의 관찰도 달라질 것입니다. 이것저것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한 가지만 꾸준히 하면 됩니다. 그리고 참! 아이가 그린 그림은 꼭 모아두세요!!
무엇보다 어머니가 아이의 손을 잡고 전시장에 한번 가봅니다. 복잡한 책이나 큐레이터의 어려운 해설을 꼭 들을 필요도 없습니다. 돈이 없는데 비싼 그림을 꼭 사지 않아도 됩니다. 저 그림을 우리 거실에 걸어두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으로 충분합니다. 그림은 말이 없습니다. ‘전람회의 그림’이라는 무조로그스키의 曲(곡)이 있습니다. 그 가락을 상상해도 좋습니다. 백화점에도 문화회관에도 전시회는 언제든지 열립니다. 전시장 앞뜰에서 차도 한 잔 마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면 거리도 부엌도 배추밭도 잠자리도 모두 새롭게 보입니다.
유럽이나 일본 중국 미국의 어린이들을 볼 때마다 제일 부러운 것이 이런 모자의 모습입니다. 심지어 그 애들은 전람회장에서 화가의 작품을 똑같이 그리기도 합니다. 엄마는 스타벅스를 빨고 아이는 베스킨라빈스를 핥고 미키마우스가 그려진 가방을 메고 나이키를 신고 영어학원버스를 기다리는 모자를 보면서 어느 나라에 이런 풍경이 있는지 의아합니다. 정작 미국에는 없는 이런 어린이는 나름대로의 세계가 있겠지요. 우리 아이는 좀 다르게 키워봅시다.
아무튼 전시장을 나오시면서 ‘세상이 새롭게 보인다!’ 그러면 오늘 이야기는 성공한 것입니다. 다음 이야기는 아침밥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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