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마모또의 일주일

[5]카도만호텔-아소

양효성 2010. 2. 7. 15:26

 

[5] 카도만호텔- 사흘째 오후

 

寂寞江山 : 버스는 어김없이 13시36분 올라왔던 산길을 되돌아 아소역을 거쳐 벳부로 향한다. 저녁 5시면 그들은 바다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카토만[角萬]호텔이 매우 편리한 곳에 있었다는 말은 걸어서 끝까지 10분 남짓인 작은 마을이지만 이곳이 바로 버스정류장이었기 때문이다. 네거리의 한 귀퉁이를 차지한 호텔의 담은 논으로 이어져 있었고 그 끝에는 아스라이 아소산이 이어져 있었다. 길 건너에 24시 마트가 있었지만 드나드는 사람은 없다. 신호등이 시계 초침처럼 깜박거리고 클랙숀도 울리지 않는 자동차가 가끔 소리도 없이 섰다가 간다.

호텔은 무슨 관공서처럼 5층의 구관과 6층의 신관이 잇닿아 있는데 텅 빈 주차장과 물을 뺀 수영장이 더욱 을씨년스럽다. 점심도 먹었고 오전 관광을 끝냈으니 식곤증으로 여관에서 쉴 딱 좋은 시간인데 2시 11분 도착! 프런트는 텅 비어있다. 몇 년 전 아소 유스호스텔로 신혼여행을 했던 집 아이가 ‘유령의 도시’같다던 이야기가 실감나지만 나는 이제 쉴 나이가 되었다. 도시의 네온과 신문과 TV의 뉴스를 피해 좀 조용히 있고 싶은 것이다. 아내는 이런 적막에 익숙지 않다.

겨우 나타난 프런트와 ‘요야쿠[豫約]’ 이렇게 한 단어를 말하고 내 이름을 대니 ‘yong’이라는 종이를 내밀며 ‘양상!’한다. 졸지에 ‘龍’ - 드래곤이 되었다. 배낭을 맡기고[지금 입실은 안 된다.] 지도를 얻어 강을 찾아 걷는다. 온천이어서 그런지 요양병원이 보이고 이내 ‘감물[黑川]’이 보인다. 수퍼에서 집사람이 麒麟비루를 한 캔 사오고 우리는 다리 아래서 머리를 감고 있는 水草를 헤아리며 시간을 보낸다.

개울가 시골온천탕은 100엔 - 길건너 민박집은 1박2식 7500엔 - 일본에서는 이 일인당과 환율이 골치를 썩인다. 여관에서는 묻고 나면 곱하기 2를 해야 되고, 300엔쯤 하는 맥주는 식당에서는 600엔인데 우리 돈으로는 7000원이 넘으니 지갑을 열 때마다 곱하기 10을 몇 번 念佛해야 한다. 謝野鐵幹-晶子ゆかり가 묵었다는 100년 역사의 여관 蘇山鄕도 보인다. 베니스에는 바이런이 묵었다는 여관도 있다. 이 마을에는 나쯔메소세끼[夏目漱石]의 소설 <二百十日>에 나오는 은행나무도 있고 영화 <黃泉がえり>의 로케 장소도 있고 서점과 우체국 도서관 술집도 있다는데 집사람은 지쳐 보인다.

 

 

 

구로가와 다리위의 조각상-아소의 사랑노래 

 

우리는 다음 다리를 건너 돌아오기 시작한다. 다리위에 말을 끌고 집으로 돌아오는 조각이 아름답다. 이 조각의 제재인 ‘아소의 사랑노래[阿蘇戀唄]’는 松本芳明이 작시했다. 그 노래를 들어보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석양의 강물위에서 그 가락을 상상해본다. 길가의 테니스장이 반갑다. 가로등과 잘 닦인 시골길과 전경에 아소산의 파노라마...점점 이 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카도만호텔 : 이제 3시가 넘었다. 호텔도 문을 열고 긴 복도를 걸어 신관의 4층에 있는 방에는 침대가 둘 별실에는 8첩 다다미가 깔려 있고 등의자에 茶具도 갖춰져 있다. 베란다에서는 아소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이 여관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저녁밥과 온천보다는 이 한 폭의 그림이 전부일 것이다. 아소의 연기는 지금도 간헐적으로 솟구쳐 창공에서 흩어진다.

 

풀 먹인 유까다를 갈아입고 - 이 옷을 걸치면 일본에 있다는 실감이 드는 것인데...노천 목욕탕으로 간다. 유황 냄새와 수증기...욕조는 자연석을 그대로 쌓아놓았는데 모두 철분으로 벌겋고 노란 물이 들어있다. 수증기는 피로와 고약처럼 검게 굳은 시름과 피로를 풀어 녹인다. 스르르 눈이 감기고 나른해지는 이 기분은 얼마만인가? ‘인생은 꿈같은데 기쁨은 그 얼였더냐?[浮生若夢爲歡幾何]’는 李白의 일구가 떠오르다 사라진다.

 

저녁은 기모노를 입은 할머니의 시중을 받았다. 말고기 회가 나오고 - 처음 먹어 보았다. 육회라면 영천의 영화식당말고는 지금 입에 대기 수월치 않은데 - 혀끝의 긴장을 풀자 스르르 녹는다. 또 한 점의 蓮根 - 나는 집에서도 거의 매일 먹는데 - 또 멸치 비슷한 생선 튀김 - 새우 - 삼치 - 연어 - 고구마 볶은 것 - 여린 옥수수 - 메밀 한 젓가락 - ... 사진을 찍어 두거나 적어둘 걸... 지금 매우 혼란스럽다. 아무튼 야채에 소고기 한 접시를 샤브샤브로 즐긴다. 평소에 육식을 즐기지 않는 내게도 이 고기는 정말 맛있지만 결국 남기고 말았다.

아! 참 - 맥주를 한 병 따로 시켜서 마셨지...그리고 떡과 과일...밥은 먹지 않았다.

 

방으로 돌아와 로비에서 빌린 구마모또 풍속을 소개하는 DVD를 돌려 보는데 잘 되지 않는다. 카메라의 건전지를 충전해야하는데 집에서 가져온 플러그의 구멍이 맞질 않는다. 자동차의 운전대-우측통행- 110V- 낯선 것은 많지만 말이 안 통하는 것은 정말 힘들다. 프런트에 플러그가 준비되어 있어 다행이었다.

 

호텔의 창문에 비치는 아소의 전경-나카다께에서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다. 

 

 

다다미 방에서 차를 한 잔 마신다. 문득 일본 사람들은 집에 돈을 들이지 않는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나 내진 설계 등 기초에 엄청난 돈을 쓴다. 다음으로는 인테리어인데 글쎄! 비싼 그림 한 점과 책 이것이 인테리어의 전부가 아닐까? 나머지는 모두 주부들이 손으로 만든 수제품이니 그만큼 독특하고 비싸게 보이는 것은 아닌지? 그릇은 모두 조상이 물려준 것을 쓰고...그런 생각을 하다가 바쇼의 하이꾸를 읽다가 푸트라이트를 켜놓고 포근하게 잠이 들었다.

 

2010년1월28日 木曜日 - 넷째 날

 

새벽 2시에 깨어났다.

비가 온다. 창문을 열고 베란다에서 빗소리를 듣는다. 지붕을 두드리고 나뭇잎을 때리고 가끔 솨아- 바람소리를 타고 나뭇가지에서 미끄러진다. 구름은 하늘에 濃淡의 수묵화를 그린다. 담배연기는 무겁게 하얀 곡선을 그리다 빗줄기 사이를 빠져나간다.

일기에 ‘날짜를 기억하는 것은 끔찍하다. 비싼 ’잘 곳‘을 알아보고 예약하는 일 때문이다’이런 구절이 있는데 왜 이런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없다.

 

다시 잠들었다 일어났다. 비가 말끔하게 개었다.

 

욕탕은 오전 11시까지 하고 잠시 문을 닫는다. 집사람은 다시 목욕을 하자고 한다. 이번에는 대욕탕으로 들어간다. 너른 탕에는 서너 명의 일본 사내들이 몸을 담그고 있다가 일어선다. 텅 빈 수영장만한 욕탕에 몸을 담그고 머리를 비운다. 수증기와 수증기로 뽀얗게 안개가 서린 유리창 - 결국 나는 수증기 속에 벌거벗고 있다. 아마존의 비늘 없는 물고기가 된 기분으로...아소산의 분화구에 잠든 모습으로...물은 조용히 흘러넘친다. 넘치는 모서리는 벌겋게 녹이 슬어있다. 있다. 철분이 많은 탓일 것이다. 유까다를 입은 채로 식당에 간다.

 

일본 학생들이란?! : 어제 오끼나와에서 온 수학여행단이 이 호텔에 함께 묵었었다. 아이들은 6대의 버스에 나눠 타고 벌써 떠났다.

‘수학여행으로 아이들이 시끄러워 외국손님을 받기가 좀 그렇다는데요?!’

관광안내소의 J는 걱정을 했었다.

학생들은 들어올 때도 조용히 밥을 먹을 때도 조용히 - 저녁 7시부터 2시간 목욕시간에도 조용히...떠날 때도 조용히 떠났다.

베란다에서 바라보니 세 대의 버스는 나란히 서 있는데 기립한 차장은 문 옆에 부동자세! 학생들은 한 줄의 고무줄처럼 조용히 차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리고 문이 닫히고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이어 여학생들이 다시 세 대의 차에 오르고 5분쯤 사이를 두고 앞 차를 따라 지평선으로 사라져갔다. 마치 무성영화를 보는 기분이었다.

 

阿蘇五岳 : 식당에는 어제의 기모노 할머니들이 아침상을 펴놓고 기다린다. 아침식사가 8시30분까지라는 것을 8시30분 시작으로 잘못 알았다. 그들은 대놓고 나쁜 기색을 하는 일은 없다.

어제 저녁상 받침으로 썼던 종이에 아소의 다섯 山[阿蘇五岳]의 이름과 높이가 적혀있었다. 그 종이를 한 장 갖고 싶은데 말이 되지 않는다. ‘종이’라는 말만 일본어로 하고는 손짓 발짓!

드디어 그 ‘종이’를 얻었는데 일본어로 어떻게 읽는지 알 수 없다. 나는 漢字를 알고[韓國發音으로] 히라가나를 모르는데, 이 시골할머니는 漢字는 모르고 히라나가는 안다. 이 기막힌 조합에 우리는 서로 웃는다. 결국 지배인이 와서 읽어주었는데 根子岳1466m, 高岳1592m, 中岳1323m, 住生岳1238m, 烏帽子岳1337m, 杵島岳1321m - 우리는 이 산이 덕유산[1612m]비슷한 높이라고 결론지었다.

 

다다미방에 앉아 차를 마시며 수첩에 연기를 뿜고 있는 아소연봉을 그려본다. 겨울비를 걷은 하늘은 맑고 드넓은 유리창은 아소산을 가득 담고 있다. 靜謐- 이런 절간 같은 장소와 시간과 온천의 수증기와 綠茶가 하이꾸[배구]를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 한다. 이 마을에서 한 이틀 쉬고 다카치호에 가서 분락구를 보고 구마모또로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집사람은 이런 적막을 견디지 못한다. 친구들의 유후인[由布院]이야기에 못이 박히고, 도시의 눈요기에 익숙해진 탓일까? 아니면 환갑도 아직 젊은 탓일까? 이제 은퇴하면 이런 시골에서 산만 바라보고 살고자 했는데 그 일도 틀린 것일까? 아무튼 이 여행은 오직 집사람의 기분을 따르기로 했으니 나도 마음이 편하다.  

 

            

                      앞건물은 유치원-뒤에 병풍처럼 에두른 산을 넘어 유후인으로 버스는 달린다.   

  

유후인으로! : 결국 어제보다 3시간 이른 11시 27분에 호텔앞에서 유후인으로 가기로 한다. 어제 케이블카에서 만난 아가씨에게 받은 지도의 메모를 따라 ‘0’번을 누르고 전화를 건다.

‘오늘은 방이 없는데 민박을 알아 드릴테니 ... 민박 이름은...’

그 민박집 이름은 지도에도 나오니 그 정도로 짐을 꾸린다. 정류장에는 우리 둘 뿐이다. 논두렁을 바라보며 한 장 찍고 보니 유치원...천안의 농가에 이런 집을 짓고 살아 볼까하고 차고와 텃밭이 딸린 집을 찍다 보니 버스 정류장에 손님이 한 사람 늘었다.

아낙네도 나를 따라 담배를 피워 문다. 하나의 단어로 말하는 원시적 화법!

 

‘아소’ <아소산을 관광했는데 굉장했다는 뜻>

‘유후인’ <나는 유후인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고 한다. 그러면 아줌마는 ‘정말 멋있는 곳으로 가는 군요’ 라고 대꾸하는 듯하다. >

‘온센[溫泉]’ <물이 매끄럽고 겡끼[健康]에 좋다!!>

시계를 가리키며 ‘바스[Bus]’ <걱정말라는 뜻인 듯 한데 결국 함께 버스를 탔다.>

 

 

11시27분!

버스는 어김없이 도착한다. 이 마을을 병풍처럼 둘러싼 산의 능선은 칼로 자른 듯 반듯하고 까마득하게 높다. 유후인으로 가려면 아무래도 저 산을 넘어야하는데 설마 그럴라구! 터널이나 무슨 골짜기가 있겠지! 그런데 정말 버스는 그 고원으로 솟구쳐 오른다. 이거 원 케이블카를 탄 것이 아닌지...더구나 왼쪽 운전대에 익숙한 몸은 반대쪽으로 커브를 돌면 이상하게 쏠린다. 대마도에서 좁은 길에 놀랐는데 이곳도 만만치 않다. 그만큼 펼쳐지는 전망은 아름답다.

하루 머물고 싶었던 구로가와 온천에서 서양 아가씨가 내리고 온천을 마친 일가가 차에 오른다. 얼마쯤 가다가 운전수는 차를 멈추더니 문을 열고 아가씨에게 ...

‘바크-바크!!’ 하고 손짓을 한다. 아가씨는 부끄러운 듯 미소를 띠고 고개를 숙이더니 되돌아 걷는다. 아마 온천을 물었는데 마을로 가지 않고 산으로 갈 뻔한 모양이었다. 이 아가씨는 잘못했다가는 곰을 만날 뻔 했다.

 

  荒城の月 : 산길은 아름답다. 1시간을 달리고 12시19분 10분간 瀕の本에 10분간 정차한다. 국수 한 그릇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이다. 이런 고원에 이렇게 넓은 주차장이 있는 것이 신기하다. 안내판을 보니 구마모또에서 212번 도로를 따라 아소에 오르고 442번 도로를 따라 이곳에 섰다가 신호등이 있는 이 네 거리에서 벳부로 가는 작은 길로 휘어들게 되어 있었다.

버스는 이제 산허리에 매달려 하늘을 반쯤 가리고 달리는데 스피커에서 ‘고죠노 스키[荒城の月]’이 흘러나온다.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 한다. 어머니는 20년 전이었을까? 오다루에서부터 동경을 거쳐 교또를 지나 오사카에서 배를 타고 벳부에서 쉬고 바로 이 버스로 이 길을 역류해서 구마모또의 호께호텔에서 주무셨다. 우리집 아이는 유후인에서 첫날을 보내고 이 길로 아소에 들렸었다. 어머니는 그때 이 고죠노스키 테이프를 사오셨다. 어머니는 이제 다시 이곳에 올 수 없고 이 노래에 얽힌 사연은 생략한다.

 

荒城의 달

 

春高樓の花の宴

巡る盃かげさして

千代の松が枝ゎけ出でし

昔の光いまいずこ

 

秋陣營の霜の色

鳴きゆく雁の數見せて

植うる 劍に照りそいし

昔の光いまいずこ

 

いま荒城の夜半の月

替らぬ光誰がためぞ

垣に殘るはただ葛

松た歌うはただ嵐

 

天上影は替ろはど

榮枯は移る世の姿

寫さんとてか今もなぉ

嗚呼 荒城の夜半の月

 

봄날 꽃잎은 술잔에 흩어져 몇 순배 돌고...가을 서리 머금은 달빛은 죽음의 전장으로 떠나는 군사들의 창검에 번득이는 ... 허물어진 성터에서의 감회....이긴 자에게나 패배한 자에게나 죽음 앞에 우리가 말할 그 무엇이 더 있는가? 구마모또 성에서나 울산 성에서나 저지른 자들을 제외한다면 죄없는 생령들만 서로 피의 보상을 나눈 것이 아닌가?

 

노래는 슬프게 1절에서 끝난다. 벳부에서 이 테이프를 사려고 한다. 버스는 飯田高原을 지나 다시 小田の池에서 쉬고 오후 1시 34분 유후인역 앞의 버스터미널에 우리를 내려놓았다.

 

 <내일은 유휴인 미술관 >

 

 

'구마모또의 일주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7]유후인의 미술관  (0) 2010.02.09
[6]유후인 산책  (0) 2010.02.08
[4]아소로-사흘째 오전  (0) 2010.02.06
[3]구마모또 이틀째 오후  (0) 2010.02.05
구마모또 2일 오전  (0) 2010.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