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유후인 산책 - 1月 28日 木曜日 오후
여관 찾기 : 버스 정류장에는 온통 한국사람들이다. 어느 때 전라선 압록역 대합실 같은 분위기였다. 나그네들은 대개 후쿠오까에서 버스로 이곳에 왔다가 되돌아가거나 벳부로 간다. 여기 머물다가 잠깐 아침에 아소산에 갔다가 구마모또에서 오는 버스를 타고 되돌아오기도 한다. 나그네들은 하루 머문 유후인 이야기를 신참들에게 전해준다. 우동 집이나...기념품 가게 등등...
아침에 H사장이 민박을 알아주기로 했고 그 이름이 おした川라고 해서 지도에 보니 고속도로 부근이고 전화번호도 있었다. 우선 전화를 해야겠는데 인천 공항에서 집사람은 ‘로밍할까? 그리고 보험들어야지!?’ 했을 때 ‘무슨 이민 가나? 며칠간다고 전화는?!’ 이랬는데 습관이란 무섭다. 핸드폰에 길이 들어 동전 넣는 전화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그 사이 망녕이 들었다. 누구 좋으라고 보험을 드는지 몰라도 하여튼 그것은 들었지만 이럴 때 무슨 소용이람!!
우선 배가 고프다. 우리도 많이 달라졌지만 이른바 선진국에서 밥 때를 놓치면 햄버거는 몰라도 국물을 얻어먹기 힘들다. 게다가 우리집 안주인은 지금 따뜻한 국물이 필요하다. 한 골목을 접고 집사람에게는 정식을 나는 메밀국수를 주문했다. 미지근한 국물에 말아주는 메밀은 우리 시골집의 분위기다. 집사람은 외지에서 겨우 사흘 밤을 잤는데 조금 피곤해 보인다.
안주인에게 전화를 구걸했다.
‘요금은 드릴 테니 전화 좀 빌릴 수 없을까요?’
이렇게 여쭤야 되는데
‘전화 있습니까?’
마치 순사가 취조하는 꼴이 된다.
여주인은 친절하게 전화를 빌려준다. 民宿[민박의 일본어]에는 방이 없다는 것 같고, H사장은 외출중이고, 한국말을 하는 H사장 네 여종업은 내용을 잘 모르고...
‘ -바로 이 앞에 기다유후인호텔이 있는데...-’
이런 뜻으로 여주인이 말한 것 같다. 전화를 걸어 보고는 방이 있다고 하면서 8,400엔이라고 한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길 건너 호텔문을 열고 방 구경을 먼저 한다. 침대 2개에 TV. 온수 화장실...있는 것은 다 있는 기숙사다. 옆집은 식당, 그 옆은 마트, 또 한두 집 건너 버스 터미널이고 기차역은 20m 쯤 된다. 다시 학창시절로 돌아간 것 같지만 어쨌든 OK!
왜 민박을 원했는가? 대마도에서 이틀 있었는데 일본의 가정풍속을 맛보는데 이보다 좋은 데는 없었다. 한가하고 젊은 나이라면 친구도 사귀고 유스호스텔이 재미있다. 일본어가 능통하면 국민숙사도 좋을 것이다.
다음으로 좀 싸다는 것! 사실 일본에서 지명연구도 할 겸 한달 정도 민박에 있어볼까 생각도 했으니까-.
민박에서 호텔로 그리고 마지막에 푹 쉬는 여관을 생각했는데...약간은 엇박자!
해가 기울면 금린호로 바쁜 걸음을 옮기는 사람-돌아가는 사람 ... 모두 좌우의 가게에 눈길을 주면서...
散策 : 배낭을 풀어놓고 산책에 나선다. 먼저 역에 가서 정차하고 있는 예쁜 기차를 본다. 안내 팜프렛에는 정말 예쁜 기차들이 많다. 일본은 다 아는 바와 같이 개인이 운영하는 철도가 꽤 있다. 번개처럼 달리는 신깐센[규슈에도 2004년 개통]이 있는가 하면 단 2량을 연결한 미니열차 그리고 증기기관차까지 달리는 열차박물관을 연상케 한다. 색깔도 빨강 노란 흰색 은색 비둘기색 파랑...무지개처럼 예쁘다. 지금은 히다[日田]로 가는 노랑색 한 칸짜리 기차가 서 있다. 이 기차역은 단순하고 아름답다. 해가 역광으로 비치는 것으로 보아 이쪽이 서쪽인가?
돌아서면 1584m의 유후다께가 손에 잡힐 듯하다. 일직선으로 산으로 달려간 길은 櫛比[빗살처럼 가지런하고 빽빽한]한 처마가 만들었다. 그 기와도 빗살처럼 가지런하다. 가게마다 앙증맞은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다. 마치 인사동을 옮겨놓은 것 같은데 구라시키[倉敷]에 이런 물가의 거리[白壁の町]가 있다. 리쟝[麗江]도 이와 비슷하다. 집사람에게 가게를 둘러보라고 하고 나는 먼 산을 바라본다. 여행이란 모든 짐을 벗어놓고 떠나는 것이다. 집사람은 외손주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내 눈치를 살피느라 마음을 졸였을 것이다. 떠나올 때부터 분쟁을 줄이려고 아예 딴 주머니를 차고 쇼핑을 마음 놓고 하라고 허락[?]한 참이다. 집사람은 의외로 들어갔다 빈손으로 나오기를 여러 차례...
‘왜? 마음에 드는 것이 없나?’
‘............’
‘돈이 부족해?’
‘...........’
지갑을 꺼내는 시늉을 해도 대꾸가 없다. 네거리를 지나며 개울이 나오고 여관이 보인다. 1박2식에 1인당 9천엔이라는데...다시 작은 네거리에 벤치 한 개와 느티나무...쉬기에 안성맞춤이다. 이 부지런한 사람은 어느새 보온병에 따스한 물을 준비했다. 이럴 때 커피는 맛이 다르다.
다시 한 걸음 더 걸어 유후인이스라기유노쓰보에서 집사람은 짠지를 한 봉지 사들고 나온다. 사람들은 마치 축제의 행렬을 따라가듯 산 쪽으로 갔다가 되돌아온다. 해가 기웃하다.
‘저기 무엇이 있습니까?’
‘호수요!’
무엇인가 놀라운 것을 본 눈빛이 아니다. 이윽고 산자락이 가까워지자 시골 모습이 드러나고 손님을 받는다는 민박이 보인다. 손님이 없는 카페...그 멋들어진 집 주인도 적당한 값에 방을 빌려주고 있다. 호수 옆에 막 개업한 듯한 누르가와온천은 아침을 주고 두 사람에 15,000엔이다. 가족탕과 반듯한 다다미에 3천엔이면 발안마도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주인의 따님은 영어가 훌륭하다. 이집에서 내일 자기로 했다.
호수까지 더 걷는다.
달이 뜬다. 유후산에 달이 뜬다. 처마에 걸렸다가 벗어나고, 전깃줄에 걸렸다가 벗어나고 이윽고 시리도록 하얀 달은 열푸른 맑은 하늘에 둥그렇게 솟아오른다. 어제 읽은 하이쿠의 한 줄이 떠오른다.
한밤에 남몰래
벌레는 달빛 아래
밤[栗]을 갉는다.
달빛과 밤[栗]의 하얀 속살과, 달이 이지러지는 것과 벌레가 밤을 갉는 것과 또 벌레는 밤을 갉고 시인은 세월을 갉고... 내게 끝없는 연상을 제공한다. 다 모아봐야 17音節의 하이쿠는 제목이자 제재이자 주제어를 5-7-5의 석 줄에 압축한다.
김이 무럭무럭 솟아오르는 이곳이 源泉! 이 호수의 바닥에서 따스한 물이 솟은다니 신기하다. 물가의 아름다운 화랑 ‘샤갈’은 전시 준비중!
金鱗 다순 물
달그림자 흔들며
물새는 졸고
호수에는 달빛과 만찬장의 불빛과 솟구치는 원천의 김이 어린다. 게다가 달빛은 떨리는데 천년의 나뭇가지에 흰 두루미가 떼지어 졸고있는 모습이 거울처럼 맑다. 순식간에 노을의 잔영은 스러지고 달빛은 더욱 밝아진다. 여기 저기 등불은 다사롭고 적막은 그만큼 짙어진다. 호수 안쪽을 더 걷다가 되돌아 나온다. 여기저기 빈 숙소가 보인다. 오래되 보이는 여관이 있는데...‘龜の井別莊’ 역시나! 알고 보니 가장 오래된 여관이라고...
호수의 바닥에서 온천이 솟는다는 금린호-원천의 증기 그림자는 호수에서도 솟구친다. 오른쪽이 전시준비중인 화랑 샤갈
이상한 저녁식사 : 이번 여행에는 궁상을 떨고 싶지 않다. 그런데 배는 별로 고프지 않고 거르면 안 좋을 것 같은데...담배를 한 갑 사는 사이 집사람은 마트에 들린다. 그런데 동전을 먹고도 담배가 나오지 않는다. 이거 참! 마침 지나가는 사람이 한국사람인 줄 알고 자기 성인인증카드를 대고 담배를 사게 해준다. 그래! 미성년자에게는 못 팔게...
마트에서 장을 본 보따리를 들고 여관으로 돌아올 때는 거리의 불이 거의 꺼져 있었다.
창문을 열고 환기를 하고 짠지를 펼쳐놓고 辛라면을 먹었다. 녹차를 마시고 지도를 뚫어지게 본다. 오늘은 제법 걸었다. 창문에서 팔을 뻗으면 이웃 빵집에서 빵을 집어올 수 있을 것 같았다. 달도 붙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보름일까? 보름을 ‘望’이라고 한다. 稀薄하지만 그 희박한 ‘希’자를 붙여 희망을 하는 것이 인간이다. 이 작은 방에서 희망을 빌지도 앟고 달게 잠들었다.
<내일은 유후인의 두개의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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