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村의 詩 0013> 조지훈의 한복과 춤
古風衣裳
하늘로 날을 듯이 길게 뽑은 부연끝 풍경이 운다.
처마끝 곱게 늘이운 주렴에 半月이 숨어
아른아른 봄밤이 두견이 소리처럼 깊어 가는 밤
곱아라 고아라 진정 아름다운지고
파르란 구슬빛 바탕에
자주빛 호장을 받친 호장저고리
호장저고리 하얀 동정이 환하니 밝도소이다.
샅같이 퍼져 나린 곧은 선이
스스로 돌아 曲線을 이루는 곳
열두폭 기인 치마가 사르르 물결을 친다.
초마끝에 곱게 감춘 雲鞋 唐鞋
발자취 소리도 없이 대청을 건너 살며시 문을 열고
그대는 어느 나라의 古典을 말하는 한 마리 胡蝶
胡蝶이냥 사풋이 춤을 추라 蛾眉를 숙이고
나는 이밤에 옛날에 살아
눈 감고 거문고줄 골라 보리니
가는 버들이냥 가락에 맞추어
흰 손을 흔들지어이다.
* 曲線-곡선, 雲鞋-운혜, 唐鞋-당혜, 胡蝶-호접,
趙芝薰이 英陽사람이라면 洛東氣質이라 할까... 太西氣質(태백산맥서쪽 자락)이라 할까... 그런 깊은 강물과 산맥의 기질이 뼈를 이루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낙동기질-태서기질 이런 말이 없으니까(?) 조지훈을 통해 그런 기질을 생각해보면 어떨까? 이런 생각을 해본 것은 그의 志操論(지조론 : 1960년 3월 「새벽」) 때문이다.
‘古風衣裳’과 ‘僧舞’는 1939년 『문장』의 3월과 12월호에 추천되어 시인으로 첫출발한 작품들이다. 古風衣裳은 반달이 뜬 한옥을 배경으로 여인과 옷매무새- 춤 - 그리고 거문고 소리로 전체화면에서 줌인하하여 클로즈업하듯 매우 조심스러운 카메라웍을 보여준다. 두 번 반복하여 천천히 그리고 빨리 낭송해 보면 그와 호흡을 함께 할 수 있다.
한 장의 사진을 보자. 永朗과도 교분이 있었다던 최승희의 모습이다.
寫眞을 寫眞으로 보는 것과 文字로 다듬어진 理性의 눈으로 濾過하는 것은 확실한 差異가 있다...오래 보고 자주 보아 느끼는 것과도 차이가 있다.
프래쉬가 터지는 瞬間은 刹那지만...그 기다림은 永遠만큼 길지도 모른다.
寫眞이 무한시간의 停止라면 詩 또한 刹那의 停止다. 다만 그 울림들이 우리들의 시간을 지나 더 멀리 갈 뿐이다. 아무튼 우리는 이 상황, 이 찰나에 우리에게 울리는 그 감동과 共鳴할 뿐이다.
...지훈문학관(054-682-7763)은 경북 영양군 일월면 주실길 55. 생가가 이웃하여 있다.
이야기는 여기까지... 정월 보름이 가까워 온다. 북춤인 「舞鼓(무고)」와 사찰의 춤 「僧舞(승무)」를 덧붙여둔다.
舞鼓
진주 구슬 오소소 오색 무늬 뿌려놓고
긴 자락 칠색線 花冠 몽두리
水晶 하늘 반월 속에 彩衣입은 아가씨
피리 젓대 고운 노래 잔조로운 꿈을 따라
꽃구름 휘몰아서 발아래 감고
감은 머리 푸른 수염 네 활개를 휘돌아라.
맑은 소리 품은 고鼓 한 송이 꽃을
胡蝶의 나래가 싸고돌더니
풀밭에 앉은 나비 다소곳이 물러가고
꿀벌의 날개 끝에 맑은 청 鼓가 운다.
銀 무지개 너머로 작은 별 하나
꽃 수실 채색 무늬 화관 몽두리.
*몽두리 : 조선시대 女妓나 무당이 입던 옷. 몽두의(蒙頭衣)라고도 한다. 맞섶(合袵)의 포(袍)로 소매 끝에는 오색한삼을 단다. 조선 시대,
僧舞
얇은 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臺에 黃燭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 올린 외씨보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훠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는 삼경(三更)인데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2020.2.1.>
詩를 읽고 寫眞에 접근하면?!
1983년 마당문고의 청록시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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