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村의 詩 0010> 이니스프리의 섬 - William Butler Yeats
이니스프리의 호수 섬
나 이제 떨쳐 일어나 가련다, 이니스프리로.
싸릿대 엮고 진흙 발라 오두막 한 채 짓고,
아홉 이랑 콩밭 일궈, 벌통 하나 마련하고,
홀로 살련다. 꿀벌 소리 잉잉대는 숲 속의 빈 터에서.
그곳에서 아늑함을 맛보리 ... 고요함은 서서히 방울져 내려오는 것,
아침의 물안개로부터 저녁의 귀뚜라미 울 때 까지:
거긴 한밤중도 빛으로 가득하고, 한낮은 보랏빛으로 불타는 곳,
그리고 저녁마다 홍방울새 나래소리 그득하리라.
나 이제 일어나 떠나련다, 밤이나 낮이나
호숫가에 찰랑대는 나지막한 물결소리 들리나니,
차도 위를 달리거나 잿빛 포장도를 걸을 때에도
그 소리 가슴 속 깊이 들리나니...
이것은 의역(意譯)도 직역(直譯)도 단어의 나열도 아니다. 빨리 예이츠의 言語로 돌아가는 것이 낫겠다...미국식 영어보다는 영국식영어로, 나아가 아일랜드의 게일語의 느낌이 나는 그런 언어로 감상하시기 바란다.
The Lake Isle of Innisfree
I will arise and go now, and go to Innisfree,
And a small cabin build there, of clay and wattles made:
Nine bean-rows will I have there, a hive for the honeybee,
And live alone in the bee-loud glade.
And I shall have some peace there, for peace comes dropping slow,
Dropping from the veils of the morning to where the cricket sings;
There midnight's all a glimmer, and noon a purple glow,
And evening full of the linnet's wings.
I will arise and go now, for always night and day
I hear lake water lapping with low sounds by the shore;
While I stand on the roadway, or on the pavements grey,
I hear it in the deep heart's core.
** 오늘은 그믐이다. 누군가는 ‘고향(故鄕)’에 가야하고, ‘누군가’는 돌아갈 고향(故鄕)이 없고, 또 ‘지금 있는 곳’이 고향(故鄕)인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지금 있는 곳도 어제의 그 자리는 아니다. 고향이란 잊혀지는 곳이 아닌가 싶다. 이 시에서 치자면 ‘평안을 얻을 수 있는 곳 - have some peace there’, ‘내 가슴 속에 있는 곳 - deep heart's core’ 그런 곳일 것이다.
갑자기 고향을 들고 나선 것은 이번 그믐 전에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새해에는 정말 ‘머루랑 다래랑 먹고...’ 살고 싶은 대로 살아보고 싶은 까닭인지 모른다. 언제부터인지 ‘조용히 살고 싶다 - 자고 먹고 누울 곳만 있다면 - 자연과 더불어 - 간섭 없이 - 자유롭게 - 사람에 부대끼지 않고... ’ 이런 말들을 이어가다보면 우리 젊을 시절 그리워할 단어들을 이 시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오두막- small cabin’ 그리고 ’밭 이랑 - Nine bean-rows‘, ’꿀벌 - a hive for the honeybee‘....北歐의 쓸쓸한 섬... 白夜와 오로라를 연상케 하는 바다...그리고 불빛도 필요가 없는 곳... 아울러 기슭을 치는 파도소리는 자장가....
이 詩가 내게 ‘고향(故鄕)’을 선물하는 것은 五感을 만족시켜주기 때문이다. 色聲響味觸....
눈을 자극하는 것으로는 ‘면사포를 드리운 듯 물안개가 가린 아침 풍경 - veils of the morning’, ‘한 밤중의 백야(白夜) - midnight's all a glimmer’, 그리고 ‘한낮의 불타는 태양 - noon a purple glow...’
귀를 자극하는 소리는 ‘귀뚜라미 울음 - cricket sings’, ‘꿀벌의 날갯짓소리 - bee-loud glade’, ‘홍방울 새의 날개짓 - linnet's wings’, ‘파도소리 - lake water lapping with low sounds by the shore’
‘꿀통’은 침을 꼴깍 삼키게 하며 미각을 자극하고, ‘진흙 바른 집과 아홉이랑 흙’의 촉감은 신선하다.
이런 시어들을 대하기만 해도 우리는 절로 자연에 초대되고 스스로 자연주의자가 되는 것인데... 나는 이미 산 속에 들어와 무뎌졌으니(참고로 산골에 집을 짓고 산지 10년이 다 되어 간다.) 올 새해에는 그런 신선한 기분을 느껴 보고 싶은 호사스런 감정이 일어난다. 靑山이 결코 樂園은 아니어서 바다로 이주하고 싶은... ‘靑山別曲’의 처지가 못 되는 나로서는 그냥 여기서 이대로 늙어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이 시인은 아직도 이니스프리로 가지 못하고 있다. 灰色 鋪道에 있거나 길 위에 있거나, 낮이나 밤이나... 방황하고 있다. 말로는 일어나자마자 바로 떠나겠다고 하면서도... 결국 마음속에 품고 있는... 고향...
그런 예이츠의 목소리를 육성으로 듣는 것이야말로 詩일 것이다. 예이츠는 詩를 쓰는 것 뿐 아니라 詩朗誦-詩劇- 演劇에 이르기까지 아일랜드 문학에 한 획을 그엇다고 한다.
I will arise and go now, and go to Innisfree,
I will arise and go now, for always night and day
l, r, n 등 자음의 울림과 굴림 그리고 o, ow 등등의 부드러운 어머니의 소리(母音)가 주는 고막의 울림은 우리들 심장의 박동을 편안하게 한다. 마치 피아노三重奏를 듣듯이...
*** 韓國의 시골에 사는 나에게 ‘진흙 바른 오두막’이나 ‘꿀벌’ 빼고는 이 詩에 대해 더 할 이야기는 없다. 내게는 陶淵明의 歸去來辭가 연상되는 그런 詩였다. 그런 어느 날 아일랜드에 다녀온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내게는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더블린 내기 제임스 조이스의 아일랜드가 영국의 식민지였다는 것... 남북으로 분단되어 北은 영국의 屬領으로 수도는 벨파스트... 그러다 보니 얼마 전에 본 다니엘 데이 루이스, 엠마 톰슨이 출연한 1970년대의 ‘아버지의 이름으로 In The Name Of The Father(1993)’가 떠올랐다. 그러니까 이 詩는 1923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예이츠(1865년 6월 13일 ~ 1939년 1월 28일)가 영국 런던에 머물던 1890년에 써서 1892년에 발표했다는데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조국 아일랜드의 자연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 있다는 것이다. 단순한 ‘故鄕’ 그리운 詩가 아니라는 것이다.
인구 500만이 안 되는 아일랜드(수도 : 더블린)는 켈트족, 영국인들이 섞여 있고 게일어와 영어를 사용하며 로마가톨릭(88%)이 아일랜드교회(3%)에 비해 압도적이라 한다. 그래서 이 시의 ‘이니스’는 게일릭 말로 ‘호수’를 뜻하고 ‘프리’는 ‘작은 섬’이라고 한다.
1916년 부활절 봉기에 이어 1919년 1월21일 독립선언, 그리고 영국-아일랜드 전쟁을 거쳐 1921년 독립승인을 받아냈다. 아일랜드의 32개 주 가운데 남부 26개 주가 독립한 반면 지금까지 북부 8개주가 분단되어 북 아일랜드로 영국에 귀속된 것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독립 승인 뒤에도 내전은 계속되었지만 1937년 비준된 신헌법에 의해 왕권정치가 막을 내리고 국가명도 에이레로 변경되었다. 드디어 1949년에 영국 연방에서 탈퇴한 후 아일랜드 공화국으로 완전독립하였다.
이 시가 씌어진 1890년대는 열강이 조선에 판을 깔던 시기였는데 아일랜드의 역사에서 독립을 선언한 1919년이 우리에게는 기미년이었다는 것이 뇌리에 남는다. 1939년 눈을 감은 시인은 결국 반쪽 독립속에서 생을 마감했지만 에이레의 국민들은 이 시인을 잊지 못한다고 한다.
아무튼 런던에서 활약하던 그는 프랑스에서 사망하고 결국 그의 고향 슬라이고에 묻혔는데 시인이 즐겨 산책하던 ‘기슭을 치는 호수의 물소리가 그치지 않는 곳 - lake water lapping with low sounds by the shore’이라고 한다..
** 更子年 새해를 맞이하며 나지막하게 다시 한 번 愛國詩人의 이 詩를 읊어 본다... <*>
1959년 영미문학사(崔鳳守 著)
예이츠가 설립한 '아일랜드 문예극장'은 뒤에 아베이극장이 되었는데 지금도 그 이름의 극장이 남아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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