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모음

<山村의 詩 0009> 윤동주의 ‘눈 오는 地圖’

양효성 2020. 1. 22. 22:29

<山村0009> 윤동주의 눈 오는 地圖

 

             눈 오는 地圖

 

 

順伊가 떠난다는 아침에 말 못할 마음으로 함박눈이 내려,

슬픈 것처럼 밖에 아득히 깔린 地圖위에 덮인다.

안을 돌아다보아야 아무것도 없다. 天井이 하얗다.

안까지 눈이 내리는 것일까, 정말 너는 잃어버린 歷史처럼

홀홀히 가는 것이냐, 떠나기 에 일러둘 말이 있던 것을

편지를 써서도 네가 가는 곳을 몰라 어느 거리, 어느 마을,

어느 지붕 밑, 너는 내 마음속에만 남아 있는 것이냐,

네 조그만 발자욱을 눈이 자꾸 내려 덮혀 따라갈 수도 없다.

눈이 녹으면 남은 발자욱 자리마다 꽃이 피리니 꽃 사이로

발자욱을 찾아 나서면 1열두달 하냥 내 마음에는 눈이 내리리라.

 

<1941313>

 

윤동주는 19171230일 만주 간도에서 태어나 1945216일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눈을 감았다. 陸史는 안동에서 태어나 으로 압록강을 건너 북경 감옥에서 사망했고, 윤동주는 으로 한반도를 지나 일본 땅에서 청춘을 마감했다. 서른을 넘기지 못했던 것이다.

지도는 현실이 아니라는...’ 말은 의미론의 첫 페이지에 등장하는 名句. 그러나 지도가 현실의 기호 - 즉 오브제(對象)를 대신(象徵)한다는 말은 當爲.

 

당연히 이 地圖空間은 한반도, 그 땅을 걷고 있는 順伊는 조선사람들, 그리고 잃어버린 歷史19413월의 時間‘... 그 시간 20의 청년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 기숙사 그 자리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980년대 이한열의 자리 그 언저리에...

 

歷史를 잃어버리자 개인의 생활도 역사도 모두 지워져버린다는 것을 윤동주는 ‘...天井이 하얗다. 안까지 눈이...‘ 내린다고 표현하고 있다. 방안에 눈이 쌓인다면 어떻게 될까?!

 

백제가 이 땅에서 사라진 뒤 일본은 왜구가 되어 고려말까지 남해안과 내륙 깊숙이 분탕질을 일삼았다. 이성계는 그 왜구를 荒山(남원 부근)에서 물리치고 대권을 거머쥐었지만, 그후 200년도 지나지 않아 나가사키의 데지마(出島)가 열린 뒤에는 네델란드의 蘭學이 조총과 함께 들어오고 드디어 16세기 韓中日이 어우러진 세계 최대의 전쟁이 7년간 이어졌다. 戰後前後 12차례의 조선통신사가 왕래했지만 1894729일 안성천에서 일본군과 청군의 접전이 세계대전의 불씨가 되어 오늘 이 시간까지도 軍國主義의 그늘이 드리워진 것은 윤동주의 잃어버린 歷史라는 한 줄의 무게를 實感케 한다.

淸日戰爭-露日戰爭-中日戰爭에 이어 유럽에서 독일과 이태리가 손을 들었음에도 일본은 진주만을 폭격하고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核投下를 겪으면서도 미국에 결사항전을 했다. 1-2차 세계대전이라고들 부르는 것은 세계사의 입장에서 보면 유럽내의 局地戰이었고 실질적인 세계대전 토너먼트의 파이널매치는 米日戰爭이었던 것이다.

이런 현실을 耳塚(귀무덤)을 마주하고 풍신수길이 벚꽃놀이를 즐기던 고다이지(高台寺)언저리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을 두었던 詩人은 또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 일본 땅에 발을 디디기 전 1942124懺悔錄을 미리 써놓고 있다.

 

‘...만 이십사 년 일개월을 살아온...’ 윤동주는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靑史-歷史) 속에/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어느 왕조(신라?-고려?-조선?)의 유물이기에/이다지도...’ 이 되는지 자문하고 있다...그리고 자신의 正體性을 곱씹어보는 것은 그 시대 온 국민 공통의 심사였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 이 시간에도 ‘...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본 우리들도 혹 이 無限空間 코스모스(宇宙)어느 운석(隕石)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우리의 그림자를 보게 될지도 모른다.

 

** 그러나...그러나...봄이 오면 눈은 녹는다... 그리고 눈이 녹으면 눈 속에 묻힌 발자국이 그대로 드러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청동 거울의 녹이 벗겨지면 우리의 모습이 다시 드러나듯이...

 

** 를 작가의 私事로운 상황이나 역사적 배경에 옭아매어 時詩(?)한 이야기를 만들고 그 무한한 생명력을 시들게 하는 일은 삼가야할 일이다. 그러나 잠시 이런 근시안적인 접근도 오히려 의 확장성을 支持하는 刺戟劑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전부라는 시각에 固着되지 않는 한...

 

** 영화가 된 시인 윤동주(동주 : 이준익 감독 )... 이 비운의 시인을 우리들이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그의 기념관(윤동주문학관 : 서울 종로구 청운동 3-100)에서 또 그의 부활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냥 복각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서 윤동주의 육필과 함께 몇 편을 무작위로 골라 그의 숨소리를 들어보기로 하자...

 

 

유언(遺言)

 

훤한 방()

유언(遺言)은 소리 없는 입놀림.

 

- 바다에 진주(眞珠)캐려 갔다는 아들

해녀(海女)와 사랑을 속삭인다는 맏아들

이 밤에사 돌아오나 내다 봐라

 

평생(平生) 외롭던 아버지의 운명(殞命)

감기우는 눈에 슬픔이 어린다.

 

외딴 집에 개가 짖고

휘양찬 달이 문살에 흐르는 밤.

<1937.10.24>

 

 

해바라기 얼굴

 

누나의 얼굴은

해바라기 얼굴

해가 금방 뜨자

일터에 간다.

 

해바라기 얼굴은

누나의 얼굴

얼굴이 숙어들어

집으로 온다.

<1938. 추정 22>

 

산울림

 

까치가 울어서

산울림.

아무도 못 들은

산울림.

 

까치가 들었다,

산울림.

저 혼자 들었다,

산울림

<1938.5.>

 

가슴 2

 

불 꺼진 화덕을

안고 도는 겨울 밤은 깊었다.

 

재만 남은 가슴이

문풍지 소리에 떤다.

<1937.7.24.>

 

*** 태음력으로 기해년이 저물어가고 있다...날은 흐리다...눈이 되지 못한 비가 내릴 듯 한...



요즘 원본을 다시 찍는 다양한 형태의 시집들이 유행하고 있다...


그의 육필에서 체취를 더듬어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