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 -
베를린 알테 나시오날갈레리에- 15점 그림들
독일낭만주의로 알려진 프리드리히의 그림은 2층의 중앙 프랑스인상주의 그림들의 좌우에 막스리버만과 각각 한 방을 차지하고 있고 네 면에 15점이 걸려있다.
1774. 9. 5, 포메라니아 그라이프스발트에서 태어나 1840. 5. 7, 프로이센 드레스덴에서 사망했다. 베를린의 북쪽 발틱해는 덴마크와 스웨덴의 해협에 갇혀 북해와 이어졌음에도 호수처럼 보인다. 게다가 바다를 남쪽 제주도에 둔 우리들에겐 베를린의 머리위에 있다는 것이 쉽게 이어지지 않는다. 아무튼 프리드리히의 고향은 베를린의 북쪽 발틱해 연안에 있고 세상을 떠난 곳은 옛 동독의 드레스덴이다.
그는 19세기초 독일의 낭만주의를 개척한 화가로 자연의 힘 앞에 인간의 무력함을 나타내는 거대하고 신비스러운 풍경화를 그렸으며 숭고미를 낭만주의 운동의 주요개념으로 확립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고 하는데 ‘바다의 수도승[110×171.5㎝ : 1808-10]’이라는 그림을 잠시 보도록 하자.
이 그림의 4/5는 하늘이다. 좌우로 길게 울퉁불퉁 해안을 이루는 육지가 있고 그 넓이만큼 검푸른 바다가 있는데 깊이를 알 수 없다. 자세히 보아야 갈매기가 날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수평선에 산맥이 이어진 것 같은데 물안개가 맞는 것 같다. 그리고 희부연히 구름이 해를 가리고 다시 화면의 상단에서 푸른빛이 穹窿(궁륭)을 이룬다. 마치 지구가 둥글다는 듯이...중세 성당의 돔처럼...
浪漫主義(낭만주의)란 본래 魯漫(로만)이 맞는데 일본의 ‘浪漫的...ロマンチック- 로만틱’이 ‘浪漫的[낭만적]...’의 한국어발음으로 굳은 것이다. 아무튼 로망은 이야기-여행-모험-상상이 가미된 이야기-모험담으로 부풀면서 말 그대로 ‘로맨티시즘’이 형성되어 간 것인데...
그림에 이야기(?)가 있다면 아리송하지만...이 수도승을 보면 누구든지 많은 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 그림 앞에서는 오래 머무르고 좀 가까이 다가갔다가 뒷걸음치면서 지긋이 바라보는 것이 좋을듯하다.
‘바다위의 월출[55×71㎝ : 1822]’은 바닷가의 바위에 앉은 두 여인 앞에 좀 더 명료한 물빛과 은은한 빛이 바다와 하늘을 비추고 있다. 이 그림은 수도승보다는 좀 친근한 이야기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 같다.
‘한 그루의 나무[55×71㎝ : 1822]’는 그루터기에 물이 고여 있다. 서유럽의 땅이 어쩐지 늪지처럼 눅눅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면 이런 웅덩이들이 저 산자락까지 드문드문 물줄기에 이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 한 그루의 나무를 지워보고 다시 세워보며 유럽을 떠올려본다. 화면의 중앙에 자리한 이 한 그루의 나무를 다시 생각해 본다.
‘눈밭의 참나무[71×48㎝ : 1829]’는 ‘한 그루의 나무’를 클로즈업한 느낌이다. 눈밭에 벌거벗은 고목은 ‘聖者(성자)나 殉敎者(순교자) 그리고 聖十字架(성십자가)’를 떠올리게 한다.
가까이 가보면 나무의 그루터기는 매우 자세하게 그려져 있다. 그루터기 주변에 세월과 고난의 나이테를 보여주는 殘木(잔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窓(창)앞의 부인[45㎝×32.7㎝ : 1822]’은 두꺼운 기둥사이에 묻힌 창문은 자연스럽게 원근과 입체의 느낌을 준다. 그래서 그 창문에 주의가 집중되고 카메라의 프레임처럼 긴장감을 자아낸다. 그 긴장감은 잘려진 윗부분의 하늘에서 해방감을 만끽하게 한다. 창문을 반쯤 연 이 여인의 심사도 그럴 것이다. 어쩐지 입센의 ‘인형의 집’이 떠오르는 것은 어인 일일까?
이 여인은 화가의 부인 캬롤린[Caroline]으로 드레스덴의 작업실에 빛을 들여보내는 장면으로 창밖에 엘베강둑이 펼쳐져있다고 한다. 1822년에 이 그림이 그려지고 4년 뒤에 두 사람은 결혼식을 올렸다고 한다.
프리드리히는 1794~98년 코펜하겐에 있는 아카데미에서 공부했지만 주로 독학했다. 드레스덴에 정착한 뒤 화가인 필리프 오토 룽게 및 작가인 루트비히 티크와 노발리스 등으로 이루어진 미술·문학 서클에 가입했다. 세피아로 그린 세련된 초기 양식의 데생들은 괴테의 칭찬을 받았으며 1805년 바이마르 미술협회에서 주는 상을 받았다.
최초의 중요한 유화인 〈산중의 십자가 The Cross in the Mountains〉(1807경, 드레스덴 회화관)는 압도적인 고립감을 특징으로 하는 그의 성숙한 양식을 뚜렷이 보여주는데, 이것은 종교적인 그림에서 전통적으로 볼 수 있었던 상징적 표현을 자연에서 끌어낸 상징으로 대체하려는 시도였다. 그밖에 〈북극의 난파선 Shipwreck in the Ice〉(1822, 함부르크 미술관) 같은 상징적인 풍경화들은 그의 숙명론과 죽음에 대한 강박관념을 나타내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자연의 면밀한 관찰에 기초를 두었지만, 채색은 발트 해안과 하르츠 산지에서 그가 느낀 경외스럽고도 불길한 분위기를 반영하며 그의 풍부한 상상력을 거쳐 이루어졌다. 1824년 드레스덴 아카데미의 교수가 되었다. 오랫동안 그의 작품은 잊혀져 있었지만, 20세기에 들어와서 그의 작품에서 독특한 실존주의적 고독이 인식되면서 재평가되기 시작했다.
창가의 여인<부분>
눈밭의 참나무
전면 왼쪽이 '해변의 수도승'
창옆의 부인...캬롤린
월출...<부분>
나무 한 그루...
해변의 수도승
가까이 가보면 바다위에 갈매기가 날고 있고 고독한 수도승이 뚜렷이 보인다.
동양의 산수화를 보는 느낌인 ...
위 그림의 달빛 부분
아래 오른 쪽...
이 방의 오른 쪽에 프랑스 인상파...그 방을 지나...막스 리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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