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촌가는길

尉禮八景 第一 - 천안알프스

양효성 2013. 12. 10. 12:32

 

 

               尉禮八景 第一 - 천안알프스

 

복구정 科擧길에 쉬어가는 나그네야...

봄이면 벚꽃그늘 가을이면 갈대 노래

두루미 날아가는 靑雲의 꿈 그리노라

 

마을산천 : 내가 이 동네에 둥지를 튼 것이 벌써 四半世紀 나는 이 마을을 내멋대로 위례면[공식 명칭은 北面]이라 부르는데 터무니없는 이야기만은 아니다. 이 마을은 내 멋대로 풍수로 船主形인데 船柱라 해도 좋고 舟流形局이라 해도 좋다. 배는 다른 마을로 항해하여 새로운 문물을 교류하는 문화의 이기요, 또 난세의 풍파를 안전하게 극복하는 노아의 方舟같은 救援의 뜻이 있지 않은가? 차령산맥이 성거산 흑성산을 이어 차령고개로 이어가는 支脈에 아늑한 배모양을 이룬 이 고을은 어찌 평화롭지 아니한가?

 

위례면 위례천 : 우리 마을의 船首尉禮山이 있다. 위례산이 동으로 내려앉은 자리에 부수문이 고개가 있다. 이 고개에서는 입장- 안성이 훤히 내려다보이는데 우리 마을의 경계다. 나는 서울에 갈 때 이 고개를 넘으며 꺽정이 고개라고 불렀는데 아무래도 꺽정이만큼 우리 마을을 잘 지켜줄 만한 힘이 있는 놈이 드물 것 같기도 하고 한편 그런 도둑이 나타날까봐 겁이 나기도 했기 때문이다. ‘부수문이도대체 이 말이 무슨 뜻일까? ‘부수-부소가 옛말로 소나무[]라고도 하고 부여에 부소산성이 있는 것으로 보아 백제 이래 오래된 성문이라는 이야기도 전한다. 아무튼 1757(英祖33)에 시작해서 1765년에 출간된 輿地圖書에는우리 고을을 지키는 軍丹이라는 마을에 10호가 있고 21 15-36명이 살았다고 한다. 지금은 운용리라고 부르는 마을이 돌탑을 쌓고 논두렁 밭두렁이라는 식당도 있다. 여기서도 위례산성에 오를 수 있다.

부수문이 고개에서 發源하는 물은 당연히 尉禮川[은석초등학교 입구에는 병천천이라는 입간판이 있는데 아우내-竝川는 우리 이웃인 병천면에 있어야하지 않을까?]을 이루어 목천의 산방천과 합류해 병천을 지나 진천에서 흘러오는 미호천과 어울려 세종시의 금강을 거쳐 黃海로 나아간다.

 

오동촌 : 우리 위례면은 동쪽으로 개죽산과 봉황산-봉암산-작성산-은석산이 산성처럼 우리 고을을 지켜주고 있다. 특히 봉황이 깃든다는 오동촌은 鳳山[이 산도 봉황산-봉항산 등 불분명한 부분이 있는데 세 봉우리는 봉새가 날개를 움츠린 형상인데 은 숫 - 은 암이다]에 이어 봉암산[아마 凰山이라는 뜻으로 의 암컷이라는 뜻일까? 漢字로는 鳳巖山인가?]이 동쪽을 감싸고 서쪽으로 銀盤山이 에둘러 천혜의 집터요 개죽산에 흐르는 물은 물탕날에 오동폭포를 이루어 五穀의 젖줄이 된다.

 

이 아름다운 우리 고을의 위례천을 따라 올라가면 사철이 아름답다. 어찌 위례팔경이라 아니할 수 있겠는가? 네비게이션에도 아름다운 길로 우리 57번 도로가 소개되어있고 면사무소에는 천안알프스라는 자랑스러운 이름이 붙어 있다. 오송정-오동폭포-沙潭影山-위례산 등등

 

어찌 마을 사람들이 이 길에 를 짓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올리지 않겠는가? 우선 마을 입구부터 一景 복구정 그런 이야기를 해보자!!

 

복구정 科擧길에 쉬어가는 나그네야...

봄이면 벚꽃그늘 가을이면 갈대 노래

두루미 날아가는 靑雲의 꿈 그리노라

 

지금은 연춘리라 부르지만 영조때는 伏龜亭里라 불리고 지금 목천초등학교인 官門에서 7떨어져 있고 71147口 女210- 모두 357명이 살았다고 한다. 그 복구정[천안시 동남구 북면 연춘리 243-29]은 위례천[병천천]가에 있다. 57번 도로가 직선화하고 둑이 쌓여 물가에서 떨어진 것이 아쉽지만 은석산과 상동리의 너른 들판에 가슴이 탁 트인다. 특히 봄날의 벚꽃 그리고 가을의 갈대밭은 행인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거북이 엎드린 것 같은 바위에는 이런 도 새겨있다.

 

              古木有古意 淸川流不停 秋陽無限思 獨上伏龜亭

 

고목은 뜻을 품고

청천은 쉬지 않네

가을빛에 끝없는 생각

홀로 복구정에 오르네...

 

해묵은 느티나무 옛이야기 들려주고

맑은 물 쉬임없고 가을볕은 遐邇없네

거북정자 홀로 앉아 그리움은 하염없네

 

  이 詩는 이렇게도 저렇게도 내멋대로 풀어볼 수 있다. 이재(李縡 숙종61680~영조221746)가 갑인년[1734]에 지었다고 하는데 그의 는 희경(熙卿), 는 도암(陶庵)이다. 重修 복구정기에는 정자옆에 높이가 열길[十丈]이나 되는 槐木[홰나무]가 있고 주위에 10여 그루가 더 있어 목음이 되었다고 하니 이 마무들이 볼만했을 것이다. 陶庵은 이 나무에 주목해서 시상이 떠올랐을 것이다. 나는 그 고목의 뜻을 古典으로 보고 싶다...아무튼 이렇게 여덟 군데를 찾아 우리고을 사람들과 천안알프스-尉禮八景을 만들어보고 싶다. <*>

 

 

복구정의 측면...풀더미에 퇴락되어 가는 것을 2013년 들어 조금씩 정비하기 시작했다.

반가운 일이다. 오른쪽 바위에 이재의 시가 새겨져있다.

 

왼쪽 갑인년은 1734년 영조 때인데 당시에 새긴것인가?

 

1964년 다시 세운 전자는 조금씩 기울고 있다. 목조건물은 사람이 살아야만 세월을 견딜 수 있는데...

 

중수기는 1964년 씌어진 것으로 보이는데 ...

 

한문선생님을 모셔 풀어봐야하겠다.

 

중수기 말미

 

지금은 물이 말랐지만 눈이 내리거나 가을의 갈대 숲은 아름답다

 

벚꽃 길은 또 다른 위례팔경이 될것이고...멀리 은석산이 아름답다.

 

열 그루의 열길 괴목이 있었다는 복구정은 마을 사람들의 사랑으로  날로 복구되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