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유치원에서 10일간[1] -오동촌 가는 길[18]
위례초등학교병설유치원- 머시깽이의 시골학교
아직도 공부를 해야 하는 엄마 때문에 머시깽이는 시골 할머니와 또 열흘을 보내게 되었다.
작년에도 이 학교의 신세를 두 달간 졌는데 이제 이 유치원은 머시깽이의 시골체험 또는 교류학습의 마당이 아니라 징검다리 학교가 되었다. 오늘은 서울의 유치원에서 보낸 위탁교육의뢰서를 들고 학교 가는 길...만 두 살이 된 부지깽이도 함께 유치원에 가는 길이다.
걸어서 유치원 가기 : 유치원까지는 약2Km- 이 길을 걸어서 등교하는 것이 이번 체험학습의 목표라면 목표다.
‘어제 집에 오셨던 아저씨는 저 산을 넘어 30리길을 걸어 중학교에 다니셨대- ’
‘30리?!’
아이들은 그 거리에 대한 개념이 없다. 625때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걸어간 아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학교에는 집 앞까지 와주는 스쿨버스도 있고 할머니도 차가 있다. 아이들은 할머니의 새 차보다는 기차나 트랙터 경운기 사륜오토바이를 타고 싶고 스쿨버스는 당연히 더 재미있는 탈 것이다. 선생님께서 버스를 보내주신다지만 우리는 걷기로 한다.
‘유치원에 가면 이제 동생을 네가 보살펴야 해?! 할 수 있겠어?’
‘응! 염려마!’
‘어른들이 말씀하시면 “예”라고 대답해야지! 그리고 걸어갈 수 있겠니? 작년에는 할아버지가 태워다 주었잖아’
‘예- 할 수 있어요!’
하기야 머시깽이는 산막이옛길을 그만큼 이미 걸었었다. 머시깽이는 초롱초롱 두 눈을 깜박거린다. 길에는 집이나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것들이 많다. 부지깽이는 자동차밖에는 관심이 없다. ‘어! 저기 트랙터-’하더니 길섶의 풀들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풀을 본 것인지 벌레를 바라본 것인지 알 수 없지만 할아버지는 그것으로 만족한다.
모퉁이를 돌자 예상한 것이지만 잠시 할머니는 부지깽이를 업어준다. 할머니의 散步는 糖尿의 완치를 바라는 마당에 一石二鳥인 셈인가? 부지깽이는 다시 내려 걷다가 뛰고 머시깽이는 두 팔을 시계추처럼 흔들며 제 그림자를 바라보고 단정하게 걷는다. 등 뒤에 막 아침 해가 뜨겁게 달아오른다. 다리를 건너 드디어 학교가 보인다.
‘와! 우리 학교 크다!’
부지깽이는 신이 났다. 마을 어른들이 손주들이냐고 물어가며 아침 인사를 건네고 모내기를 마친 논에는 가뭄을 아랑곳하지 않는 벼포기들이 싱그럽다. 부지깽이는 채송화와 연꽃을 기웃거리고 이제 막 스쿨버스가 도착했다.
새로운 친구 새로운 자연 : 지금까지 아이들은 가상의 세계- 컴퓨터와 책과 글자를 통해 자연을 배우고 이웃사람과 교제를 했다. 자연과 직접 접촉한다는 것! 그리고 未知의 선생님과 낯선 친구를 사귄다는 것- ‘낯선 곳에서 나를 만나다’는 인류학의 指針書다. 선생님께 서류를 드리고 저녁4시경 데리러 오기로 하고 아이들과 헤어졌다.
학교에는 농장이 따로 있다. 고구마 오이 상추 호박 고추 옥수수 가지 등등 살아있는 식물도감이요 또 과학교과서다. 남들이 출근하기 전 중년의 선생님은 먼저 나오셔서 밀짚모자와 작업복에 장화 차림으로 호스를 끌고 물을 뿌리신다.
아이들을 데리러 가는 시간- 농장에는 한바탕 잔치가 벌어졌다. 초등학생들이 모내기를 한 것이다. 유치원 아이들은 구경을 하고 교감선생님과 담임선생님 그리고 육성회장 부부가 시범을 하며 요즘은 구경하기도 힘든 손으로 직접 모를 심는 모내기를 한 것이다. 아이들은 옥수수와 벗하며 자라고 토마토와 더불어 발갛게 익어간다.
논 가운데 마을 사람들이 또깨비바위라 부르는 돌을 친구삼아 돌아오는데 일본의 히다마을[飛驒の里]에서 본 車田<다음 블러그 ‘주막의 등불’ [기다알프스의 추억]에 사진이 있음>- 즉 수레바퀴처럼 중심으로부터 둥그렇게 모를 심어놓은 것을 보았다. 보통 바둑판처럼 심는데 이 논에서는 바위를 살려놓고 地形을 따라 그 주위를 돌며 수레바퀴 모내기랄까? 강강수월래 모내기를 한 셈이다.
예절과 자율 : 禮는 한마디로 ‘제 할 일을 제가 하는 것’이다. 할머니도 힘들지만 할아버지는 더욱 힘드시다. 칠순을 바라보면 누구나 한번은 고비가 있는 법이다. 휴양지가 있다면 지금 할아버지에게 딱 필요한 곳이다. 머시깽이와 부지깽이가 스스로 일찍 일어나 이를 닦고 옷을 입고 가방을 메고 신발을 신으면 더 바랄 것이 없다. ‘할아버지- 안녕히 주무셨어요?’는 다음 문제다. 지난밤 실내화와 치약 칫솔 컵에 매직펜으로 아이들과 함께 하나 하나 이름을 써주었다.
學行一致- 농사에 대하여 : 학교에서 배운들 실천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인가? 종교-정치-언론-사법-의술 등등. 요즘 아이들은 한자급수 따기에 열공[熱功]이다. 급수를 따면 뭐하나? 가르치는 한글세대 선생님이 漢字를 모르고 수능문항에 한자어를 한글로만 적어 놓았는데...인성교육은 군대를 다녀와야 된다고들 하는데 漢字는 중국이나 일본유학을 가야 제대로 쓸 수 있다고 해야 할지?
다행히 머시깽이는 냉이 열무 토마토 오이 등등 식물을 구별할 줄 알고 유아원에서 나팔꽃 반이라고 나팔꽃도 씨를 뿌려 싹을 틔워 놓았다. 이 꽃은 우리집에서 가장 중요한 식물이니 ‘家花’라고 해야 할까? 지난겨울에는 해바라기와 옥수수 씨를 모종판에 심어 지금 밭에서 자라고 있으니 작년 두 달간의 시골유치원 공부를 착실하게 실천하는 셈일까? 이제 제 호미도 있고 삽이나 괭이를 들고 노는 것을 좋아하니 절반의 성공이라고 치자-
우리 교육에서 정말 전근대적인 것 가운데 하나가 학습목표라고 나는 가끔 생각한다. ‘공부거리’-그것을 학생에게 주고 또 잘하든 못하든 스스로 하도록 하는 것이 참다운 공부가 아닐까? 적어도 創意라는 것이 새싹들에게 중요하다면 말이다. 할머니를 도울 수 있는 아이- 그런 아이가 되었으면 한다. 부지깽이는 학교에서 더 놀자고 한다. 적응한 셈이다. 좀체 말이 없는 머시깽이는 지난주엔 마법천자문{부지깽이도 요즘 이 만화를 보는데 ‘여기 왜 [동물의 왕국]이라고 써 있지?’ 하고 내게 묻는다. 아무튼 [마-법-천-자-문 = 동-물-의-왕-국]은 다섯 글자의 공통점이 있다는 것에 또 나는 만족한다}을 보고 漢字를 쓰더니 오늘 아침에는 밭에 나간 사이 어린이 千字文을 꺼내놓고 글자를 쓰고 있다. 多의 획순이 맞지 않는데 長은 더 稀罕하다. 이 일은 선생님께 부탁드려야 한다. 혹 내가 사랑하는 나의 손녀에게 가르칠 것이 있다면
‘항상 선생님을 우러러보고 그 말씀을 잘 따라야한다.’
이 한마디다. <*>
오른 쪽 모서리에 30리를 걸어 6년을 등하교하신 돌모랭이아저씨집이 보인다.
마을 어귀의 느티나무가 동네의 역사를 말해주는데...
잠시 부지깽이를 업고 모퉁이를 돌아서...
시골학교 가는길
그림자를 따라가는 머시깽이의 걸음걸이는 엄마를 닮았다.
이제 머시깽이도 내려서 걷고...
잠이 깬 부지깽이는 호기심이 많다. 멀리 학교가 보인다.
어! 학교에 아무도 없네?
연꽃하고 채송화만 보이는데...
막 통학버스가 도찯하고...처음 보는 친구들-
오른 쪽의 학교 농장-물을 댄 논에서 모내기를 하는줄은 몰랐다.
생물교과서-위례초등학교 농장
지형을 이용한 모내기- 수레바퀴처럼 바위를 따라 몇 바퀴 돌았다.
왼쪽 논에는 모내기를 막 마치고...
밭에서 김을 매는 형들과...
앞은 육성회장님 그 뒤에 교감 선생님- 모두 논에서 모내기를 도우셨다.
學行一致? 부지깽이는 고추를 열심히 다듬으며 저녁시간을 보내면서 '나! 내일도 학교 갈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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