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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안읍성의 진도아리랑

양효성 2011. 3. 14. 14:36

      낙안읍성의 진도아리랑

 

 

  진도에서 못 듣던 진도 아리랑을 이곳에서 들었다. 민속촌으로는 세계유산인 하회와 양동 그리고 수원과 아산 강당리 등등 아름다운 곳이 많지만 봄바람을 맞으며 아늑한 이곳을 거니는 것은 여기 사람들이 살고 있어 운치를 더한다. 주중이라 한가해서인지 마늘밭을 손보는 아낙에게서 봄냄새가 짙다. 성문에는 복을 비는 개가 세 마리 지키고 있어 모두 모두들 머리를 쓰다듬는데 일본에서 ‘高麗犬’이라 부르는 이 개를 ‘고마이누’라고 부른다니 ‘곰-고마-구마-가미’가 韓國과 神을 含意한다는 생각에 이르자 귀가 솔깃하다. 오른쪽으로 돌아 가야금병창의 집 툇마루에 앉아 가야금을 뜯으며 들려주는 아리랑에 취하다보니 南道에 온 실감이 얼마만인가?

 

  조선시대 초하루와 보름에 공무를 쉬고 국가에 대한 충성을 하고 손님이 오면 공무원호텔이 되던 객사를 잠시 거닌다. 이 갯가들은 일제 때 모두 관공서가 되거나 학교로 변해 온전한 것이 거의 없는데 감회가 새롭다. 그네를 바라보다 東軒으로 돌아드니 프랑스 아가씨가 담장을 가린 앙상한 매화를 찍고 있다. 봄! 內衙의 마루에 걸터앉아 이런 글을 극적 거렸다.

 

梅花봉오리에

눈이 내려 - 흰 눈이 내려

밤낮없이 한 사흘 내려

어느 달 밝은 밤 - 달 밝은 밤

水晶이슬 맺혔네...

 

봄바람이 꽃샘바람이

치마폭에 휘감긴 날

梅花봉오리 터졌네!

梅花꽃 피었네!

 

긴 여름 지난 梅實

무더위 그리 시더냐?

 

술에 한 삼년 담가

술에 한 삼년 담가

 

눈 내린 날

널 기다려

辛酸한 겨울이야기 나눠보련?

 

  나주의 內衙인 琴鶴軒은 개조하여 요즘 일반인들이 관아체험을 할 수 있는데 여기는 불기가 없다. 하지만 민가에서는 얼마든지 인터넷을 해가며 민박을 할 수가 있다. 체험 마을에는 서당에서 도자기에 염색까지 온갖 체험을 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인 읍성마을인데 판소리 가락이 들려온다. 토요일마다 판소리 한마당이 여기서 벌어지는 모양이다.

막 강의를 마치고 장짓문을 연 명창에게 請하자 장구가락에 맞추어 진도아리랑이 봄하늘에 퍼져 오른다. 이 자리에서 대장금의 일부를 촬영한 모양이다. 그 이웃에는 김소희 등 명창이 기거했다는 집들이 있으니 국악의 현장을 지나는 봄바람이 범상치 않다.

 

  잠시 농가 찻집 마루에서 유자차로 꽃샘추위를 달랜다. 그 마루에는 온갖 민속품이 옛날을 말해준다. 드문드문 城밟기를 하는 善男善女들이 보이고 그렇게 봄날은 간다. <*>

 

 

낙안읍성에 봄이 오고 있다

 

고마이누를 자랑하는 문화해설사

 

 

가야금 병창의 집 - 김재희[010-6260-4722]

명주실을 꼬아만든 줄을 다듬으며 아리랑을 불러 주시는데 가야금도 배울 수 있다.

 

객사의 정문

 

동쪽에는 문인이 서쪽에는 무인이 방을 잡았다는...

 

동헌

 

내아의 담장에는 매화가 피었지만 온기는 없어...

 

찻집의 마루에서 옛날을 본다

 

 

아직 밭갈기에는 흙이 다 풀리지 않았지만...

 

매월 마지막 토요일 저녁7시 달빛음악회가 열리는...

 

대장금을 찍은 이 마을에는

 

중요무형문화재인 김양남[010-3733-0809]의 달빛공연이 열린다.

부채를 말아쥐고 자진걸음으로 진도아리랑을 불러준다

 

  ** 낙안은 전라남도 순천시 남부에 있는 면으로 근래 보존된 읍성이 인기다. 읍성은 주로 왜구로 배성을 보호하기 위해 지어졌을 테니 경상으로부터 충청에 이르기까지 수영을 중심으로 좌우에 늘어서 있었을 것은 뻔하다. 언양- 부산- 진주- 낙안- 장흥- 해미- 홍성 등등 셀 수 없는 성터가 지금도 산재해 있다. 7세기 이전은 그만두고라도 고려의 화포와 조선의 거북선 등등 이들과의 전투에 소모된 국방의 인력과 재력은 필설로 다하기 어렵다.

낙안천과 교촌천이 낙안평야를 가로질러 8가지 珍味로 손꼽히는 石耳버섯· 고사리· 도라지· 더덕· 미나리· 녹두묵· 무· 천어 등이 생산된다.

백제시대에 분차 또는 분사군이었다는데, 신라 제35대 경덕왕 때 분령군으로 고치고, 고려 때 낙안 또는 양악으로 칭하여 나주에 속해 있었다. 1172년인 고려 명종 2년 에 감무를 두고 그 후에 지주사가 되어 군으로 승격되었다가 1515년인 조선조 중종 10년 縣으로 강등되었다가 1575년인 선조 8년에 복구되어 낙안군이라 하였는데 1908년인 융희 2년에 낙안군이 폐지됨에 따라 읍내면이라 칭하여 순천군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읍성은 시청 서쪽 20.2Km에 있는데 남쪽에는 순천만, 북쪽으로 온천과 저수지를 돌아 선암사와 송광사에 이르는 아름다운 드라이브길이 있다. 길이 끝나면서 곧 고속도로에 진입할 수 있으니 참 편한 찻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