솟대와 디자인 도시[晩秋旅行11]
烏竹軒 민속박물관에서 솟대를 보았다.
幢竿支柱가 사원의 정문에서 부처의 이상을 드높인 것이라면 솟대는 민속신앙에서 새해의 풍년을 기원하고 또 마을 입구에 수호신으로 세운 긴 나무 장대다.
幢竿支柱의 竿支[간지]를 따오면 간짓대가 된다. 시골에서는 이 장대를 세워 감을 따고 또 강바닥을 짚어 나룻배를 미는 삿대가 되고 가로뉘어 빨래를 널기도 하지만 골목의 만신의 집에 무당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어촌이나 오래된 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지방에 따라 '소줏대', '솔대', '별신대' 등으로 불리는데 멀리 三韓時代의 蘇塗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좀 자세히 말하면 섣달 무렵에 새해의 풍년을 기원하면 볍씨를 넣은 주머니를 장대에 묶어 세웠다. 마을 중심이나 집 마당에 세우고 정월 대보름에 온 동네 사람들이 탑돌이를 하듯 풍물놀이를 벌인다. 또한 마을의 입구에 마을의 수호신 역할이나 마을의 경계로도 세웠는데, 장승과 함께 세우는 경우도 많다. 마을에 경사가 있어 과거에서 급제를 하면 푸른 색 용[靑龍]을 매단 주홍색 장대를 세우기도 했다.
이만하면 농경사회의 단합을 과시하는 신성한 ‘마당[廣場-아고라]’의의미로 충분하지 않은가?
새를 부른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솟대 위의 오리나 기러기는 天上의 神들과 마을의 주민을 연결해주는 일종의 傳令이었다는 설이 있는데 아시아의 북방민족들은 기러기, 오리, 백조 등 물새들이 가을에 남쪽으로 떠났다가 봄에 다시 돌아오는 것을 매우 신성시한다고 한다.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철새[候鳥]’라는 의미가 곧 봄을 뜻하고 봄은 바로 농사를 지을 철이라는 메시지다. 지금도 마을마다 단풍철이 다르듯이 파종과 수확의 시기가 조금씩 다르고 지세에 따라 작물이 모두 다르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안다. 魏志東夷傳에는 ‘三韓에서는 [달력을 사용하지 않고]철새의 渡來로 농사철을 안다’는 요지의 기록이 있다. 철새가 돌아오지 않는 마을은 이미 살아있는 마을이 아니었다.
시베리아의 오브강 동쪽에 네넷족은 기러기가 남쪽에서 돌아오는 날을 새해의 시작으로 여긴다. 이들은 기러기가 가을에 은하수를 따라 천상계로 날아갔다가 봄에 지상으로 돌아온다고 생각한다.
서시베리아의 카잔 타타르족도 봄에 남쪽에서 돌아오는 기러기 떼를 하늘의 축복으로 생각한다. 또한 시베리아의 퉁구스족은 부족 내에 새로운 샤만이 출현하면 선대의 죽은 샤만의 혼령인 아비새가 돌아온다고 여긴다. 즉, 솟대위의 새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을 의미한다. 또 셀쿠프족, 돌간족, 야쿠트족, 에벵크족, 나나이족, 오로치족 등이 가지고 있다. 돌간족은 하늘로 향해 세워진 나무 위에 9층 하늘을 뜻하는 나무로 만든 아홉 마리의 기러기나 오리를 올려놓는데, 이 새들은 샤만이 천상계로 영적인 여행을 떠날 때 그를 인도한다고 믿는다.
이 이야기는 솟대가 전형적인 북방계 풍습으로 이 풍습이 한반도 남단까지 미쳤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인데 하늘을 우러르며 구름을 바라보고 새를 바라보고 민족의 이동경로와 또 조상들의 살림살이를 되돌아보는 경건한 마음을 우리에게 심어준다.
FTA로 시끄럽다. 미국과 중국이 강대국인 까닭이 식량자족+농산물수출국대국이라고 하면 모두들 갸웃하지만 해외종자의 획득에 혈안이 되고 農學에 투자하는 열정을 보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근래에 한국동식물채취에 혈안이었던 나라가 어느 나라인지? 그리고 문익점의 목화씨가 어떤 의미였는지 밥상위의 ‘쌀 한 톨’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강릉민속촌의 진또배기
광주박물관 영광 嶺陽里의 고인돌 앞에 세워진 솟대는 流麗하다.
고인돌 주변에 솟대를 세웠다는 것은 신성의 의미가 짙지만
제의를 통해서 농경을 유지한 공동체의식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특히 嶺陽이라는 지명은 '해티-히티'로 읽지 않는가 싶은데
일본에 '히다[日田-飛탄(馬+單)]'라는 지명과 관련하여
전라도지방의 지명이 일본으로 올겨가지 않았나 광심의 대상이다.
전북 부안의 동문안 솟대
부안의 서문안 솟대
경북 영주의 초입에도 가을새는 나르고...
자전거도로로 현대화된 영주시의 향교거리에도 이런 솟대가 보인다.
이 도로 원표에 솟대를세우면 어떤가?
솟대는 방위도 표시하고 해시계노릇도 할 수 있다.
조선일보 옆 도로원표 공원
안동은 273Km 울산은 414Km- 내가 걸었던 길이다.
세종로에는 이런 비각이 있는데...
알고보니 순종이 고종의 육순을 기리는 충성서약비...
진짜 도로원표는 이렇게 작은 돌위에 새겨져 있다.
장군께서 차라리 한 손을 들어 멀리 바다를 가리큰 것이 어떨까?
그 뒤에 세종대왕이 또 앉아계시고 ... 5년만에 이곳은 매우 다른 모습이 되어있는데...
서울디자인도시를 생각하며 2005년 10월11일 ‘나의옛길탐사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 서울市廳 驛에 내려 조선일보 옆 원점소공원에 서니 10시 정각! 더없이 淸明한 가을 날씨다. 동남쪽으로 내가 가야할 안동 대구 울산 충주 등이 일렬로 늘어서 있다. 나는 그 중앙에 가만히 솟대를 세워 본다. 그리고 거기 철새가 내려앉는 것을 생각한다. 새가 거기 앉으면 언 땅이 풀리고-밭을 갈아 엎는 그런 시절을! 새의 비상은 어찌 吉兆가 아니었겠는가! 부산까지는 대략 450Km-지그재그로 가면 한참 더 걸릴 것이다.
다행스레 종로는 모두 지하도와 함께 교차로도 이용할 수 있다. 이순신 동상 앞에서 광화문을 바라보며 한 장 찍어 본다. 그 광화문은 멀리서 초라해 보이고 오히려 청와대의 청기와가 더 선명하다. 왼쪽에 종합청사와 세종문화회관 오른쪽에 미국대사관과 교보빌딩-그 자리에 六曹(吏戶禮兵刑工)와 掌隸院, 司憲府, 議政府가 있었고 이름은 육조거리였다. 나는 그 이름이 지금도 옳다고 생각한다. 세종대왕이 훌륭한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지만 지나친 영웅주의는 후손을 바보로 만들거나, 영웅이 덜 위대했을 때 전체가 불행해지는 위험을 안게 된다. 우리 모두 조금씩 나누어 영웅이 될 필요가 있다. 나는 광화문을 가리는 분리대의 가로수를 길가로 옮기고 잔디밭에 그 육조거리의 소형모형(미니어쳐)을 만들고 동상의 대좌를 헐어 장군이 좀 낮게 임하셨으면 한다...<下略>
...지금 서울은 어떤 컨셉으로 디자인되고 있는가? ‘비빔밥?’ 비빔밥을 젓가락으로 비비는 사람이 있고 숟가락으로 비비는 사람이 있다. 싱싱한 채소와 밥알이 살아있는 맛을 즐기는 사람은 야채도 쌀밥도 상하지 않게 살살 섞어 아삭하는 신선한 香을 즐긴다. 숟가락으로 짓이기는 사람은 五味가 고루 섞여 渾融一體를 즐긴다. 문제는 잘못 짓이기면 몽땅 못먹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東西와 古今을 담은 디자인도시! 무엇보다 시민의 가치관과 전통이 생명인 首都로서의 서울 - 참! 걱정스러운 것은 府尹의 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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