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함석이나 양철이나...

양효성 2010. 11. 24. 09:12

 

           함석이나 양철이나...

 

 

時代가 바뀌면 말들도 바뀐다.

개화기에 ‘물 건너 온 물건’은 배를 타고 왔다는 舶來品이라는 일본어와 함께 유행어였다.

그 ‘바다[洋]’가 붙은 말들이 대거 만들어져 洋銀 洋品 洋樂 洋藥 洋食 洋동이....등등이 우리 일상을 지배했다.

 

천년을 잇던 볏짚 지붕은 양철로 바뀌어 함석집이라는 말이 유행했고 70년대에는 癌을 유발한다는 사실도 모른 채 다시 슬레이트로 바뀌었다. 다시 시멘트와 철근으로 아파트가 올라갔지만 우리는 등이 따신 온돌을 잊지 못한다. 오히려 중국과 런던에 이 난방방식을 수출하고 있다.

 

너무 빨리 사라져 버리는 것들...

양동이를 만드느라 함석을 두드리고 연통을 구부리고 또 지붕에 매달려 추녀에 遮陽을 달던 그 ‘탕탕탕-’소리는 아련한 추억이 되었다.

사라지는 것들에 대하여-

나는 뜨거운 양철지붕위의 고양이를 읽지도 보지도 못했지만 그 포스터들이 나붙은 낡은 시멘트벽은 기억에 있다.

평화의 땅이라는 ‘타이랜드[泰國]’- 그 뜨거운 양철지붕에 스콜이 지나가며 콩 볶는 소리를 내고 또 그물을 받아 맥주를 만드는 그런 常夏의 땅은 기억한다.

우산에 듣는 빗소리- 그 소리를 들으며 너와 함께 걸었던 길은 기억한다.

바람에 찢긴 종이우산을 받치고 지각하던 어린 시절은 기억한다.

오늘 여기 그 양철의 흔적들을 여기저기서 본다.

슬프고 아픈 만큼 더 아름답고 아린 기억을 여기저기서 본다.

<2010.11월을 보내며>

 

 

강르의 선교장 열화당에는 아름다운 차양이 있다.

한식과 양식의 조화는 굳이 공루마루가 있는데도 한걸음 서양으로 발걸음을 옮겨보는 것인데...

 

대원군이 국사를 논하던 운현궁...김동인은 운현궁의 봄을 썼다.

그자리 안락당의 처마에도 함석 차양이 덧대지고...

 

아랍과 청나라를 지나 이땅에 들어 선 덕수궁의 지붕에도...

 

羅州의 고가 남파고택의 행랑에는 곡식을 저장하던 함석창고가 있는데..

'저것이야말로 문화재여-먼저 없어질텡게...'

문화는 記億속에 있는 것일까? 아니면 왕궁의 秘錄속에 있는 것일까?

 

전라도 무주군 무풍면에는 이런 창고가 남아...

 

오른쪽 흙벽에 시멘트를 바른 집과 나란히 세월을 지키고 있다.

 

골목은 포장되며 하수도는 더 어두운 물길을 헤쳐야 하고...

원근법처럼 내 기억은 소실점으로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