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1959년 광주서석초등학교 49회 6학년3반 졸업생 - 광주의 추억[2]

양효성 2010. 9. 30. 09:35

 

 

    광주서석초등학교 49회 6학년3반 졸업생

                                  광주의 추억[2] 1959년의 이른 봄

 

 

  초등학교 4학년 일제고사에서 틀린 한 문제는 광주의 인구인지 광주가 몇 번 째로 큰 도시인지-아무튼 그 한 문제였다. 시험 전 날 어머니가 가르쳐 주셨는데 잘못 가르쳐 주셨다는 기억밖에 없다. 그날 밤 어머니와 나는 서로 웃으며 머리를 긁적거렸던 일이 어제 같다. 아마 지금은 100만 도시로 당시의 인구보다 다섯 배는 넘을 것이다.

 

  내 모교는 1896년11월6일 전라남도 관찰부 공립소학교로 문을 열어 1996년 100주년을 맞고 2009년 99회 졸업식에 누계 53,054명으로  수많은 인재가 배출되었다. 그런데 100회 졸업식에 53,119명이 졸업을 했다니 역산해보면 그 해 졸업생이 모두 65명이란 말인가? 한 학급도 안 된단 말인가? 도심의 취학인구가 줄어도 정말 너무 줄었다.

 

  이 한 장의 사진에는 6학년3반만 해도 모두 85명인데...

당시 서울의 종암초등학교인지 돈암초등학교 다음으로 학생 수가 많았던 서석초등학교의 학생 수가 정말 그렇게 줄었는지 이번에는 꼭 모교의 뜰을 거닐어 보고 싶다. 광주에 갈 때 마다 매년 낮아지던 담장! 그 담이 높아만 보이던 그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을까?

 

因緣이란 꼭 만나야할 사람을 다시 만나는 그런 경우에 쓰는 말이다.

寫眞에는 이름이 없다. 아련한 추억이 있을 뿐...

 

 

 

 

 

           맨 뒷줄 왼쪽에 안경을 낀 양동혁이 있고 7번째가 최영훈 화백, 두 친구 건너 안경을 낀 내가 보인다.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오리 송재관인가? 그리고 이강훈 남행완 그런 친구들도 보이는데...담임 박홍주 선생님은 키가 큰 분이 아니었다고 기억되는데 정말 커 보이는 것이 동심의 우러름인가? 그 존경이 우리를 만들고...

 

  우리들은 그해 봄에 바로 서중학교에 입학했는데 아마 1959년의 봄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그 다음 해에 419가 있었으니- 그러면 半世紀 전의 이야기가 되는 것인데...

지난번 광주에 갔을 때 수창국민학교도 학생 수가 시골학교와 다를 바 없다는 이야기를 박하진 교수에게 들었었다.

 

  이제 시골로 가서 새소리를 들으며 살려고 한다. 하나씩 짐을 정리하는데 문득 옛 앨범에 이런 사진이 있었다.

  쑥스럽지만 망설이다가 이런 글을 쓰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