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알프스의 추억[2] - 가나자와[金澤] 2일 午前
별을 바라보며 자고 싶어서 : 6시에 깨었다. 하루 더 여기서 머물기로 했다. 젊은 부부는 아직 깨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프런트의 직원이 교대근무로 바뀌어 있었다. 하루 더 잘 수 없느냐고 물었더니 작은 방은 모두 찼다고 한다. 안 그래도 넓은 방으로 옮기고 싶었었다. 415호실은 창문도 거리로 열려있고 시원해 보이고 넓고 또 더블베드여서 젊은 부부에게 주기로 했다.
문제는 내일 알프스에서 숙소를 찾지 못한 것인데 체인 호텔인 스마일도 그곳에 호텔이 없다고 한다. 어제 친절했던 구마가이 시게오[熊谷茂生]씨도 나서서 머리를 맞대보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 이번 여행의 중심에 알프스가 있고 기왕이면 경비를 줄여서 이 산속에서 별을 바라보며 하루 자고 싶었다. 예닐곱 가지 교통수단으로 山을 넘어가면 경관은 아름답겠지만 거의 제주도 왕복비행기에 해당하는 일인당 1만円[한화 약14만원]이나 하는 등산열차 비용을 쓰면서 2400미터의 높이를 그냥 지나간다는 것은 너무 아쉬웠다.
중국음식점인 호텔의 아침식사는 일본 중국 서양이 알맞게 섞여 있었지만 깔끔했다. 산보 겸 골목을 지나 호텔 뒤의 강변을 거닐었다.
‘어머! 고기...?!’
孫여사가 탄성을 지른다. 시커먼 잉어 두 마리가 사이가와 다리[犀川橋] 아래서 물살을 가르고 있다. 강 건너에 오랜만에 아담한 교회 건물이 보이고 4층의 세월을 이기고 있는 목조건물이 아름답다. 전형적 일본식 2층집에서 도시락을 들고 가운을 입은 이또 [伊藤]선생이 한 집 건너 자신의 이름이 붙은 병원의 열쇠를 열고 있다.
이런 잠시의 아침 산책은 自由旅行의 가장 소박한 기쁨이다. 평생 눈을 가린 소처럼 출근길에 馴致(순치)된 월급쟁이에게 이 刹那는 얼마나 행복한가? 더구나 가이드의 엄중한 시간약속 눈치를 볼 필요 없이... 호텔로 돌아오며 李선생이 짐은 이미 싸놓았다니 방을 옮기고 30분 뒤에 로비에서 만나기로 한다.
배낭이 준 행운 : 짐을 풀고 보니 휴대용 배낭을 빠뜨렸다. 물과 과자와 지도에 우산 등 잡동사니를 넣은 배낭은 집사람 몫인데 손에 드는 것은 너무 번거롭다. 호텔 앞이 번화가이니 배낭을 살 때 까지 걷다가 택시를 타고 박물관에 들리기로 한다. 채 10분도 안 되어 백화점이 나타나고 현관문을 밀고 안내판을 보면서 집사람이 중얼 거린다.
‘여기도 관광안내소가 있네...’
그래?1 그 사이 배낭을 사고 20분 뒤에 현관에서 만나기로 하고 3층의 관광안내소를 찾았는데 홀 전체를 가나자와 홍보관으로 쓰고 있었다. 여기서 ‘별을 손에 쥔 소녀’를 만났다. 직업인은 자신의 일에 열정이 있어야 한다. 이 소녀는 터무니없는 異國 老人의 여행 계획을 듣고 자신이 여행하는 것처럼 기뻐했다. 그리고 내가 일본어를 모르고 또 전화도 인터넷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빨리 이해했다. 이시카와 縣이 아닌 경계를 넘어 도야마 縣에 관한 것인데도 기꺼이 인터넷 검색을 하며 해당호텔을 메모하며 전화를 걸었다. 모두 빈 방이 없거나 있으면 엉뚱한 곳이었다. 예를 들면 설악산 울산바위에서 자려고 하는데 오색약수에 방이 있다거나...
그 사이 소녀는 카타마치[片町]라는 이곳 商街의 과거와 현재를 소개하는 아름다운 사진집을 Junko Morita[森田淳子]라는 이름을 적어서 내게 주었다. 인천에도 배다리-신포동 등 상공인들이 힘을 모아 이런 책을 냈으면 싶었다.
쥰코 양은 내가 일행과 여행중이라는 것도 이해했다. 오후 5시에 퇴근한다면서 다시 들를 수 없느냐고 묻는다. 마침 10분 거리에 武士家屋이 있으니 그러마고 하고 서로 두 번씩 절을 했다.
사무라이의 옛집 : 로비에 내려와 보니 입구의 스타박스에서 세 명이 두 盞의 커피를 시키고 예쁜 배낭을 자랑하며 손짓한다.
‘길도 안 잊어버리고 참을성도 있고 참 기특한 同伴者들이로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음식점이 늘어선 좁은 골목을 돌아 걸었다.
‘물!’
또 孫여사가 소곤거린다. 도심을 가로지르며 요동치며 흐르는 살아있는 개울은 나른한 더위를 말끔하게 씻어준다. 사람이 펌프로 만든 청계천은 아니다. 그 개울가에...
金澤老舖百年會는 ‘가나자와의 오래된 가게 모임’이라는 말인데 옛집의 2층을 전시관으로 쓰고 있다. 市民이라는 말은 ‘市場사람들의 준말’로 이들이 武人이나 관료계급의 오랜 억압을 기술과 피땀으로 이기고 자유를 획득한데서 일반화한 말이다. 가게, 꽃집, 요정, 음식점, 양조, 시계, 인쇄, 염직, 칠기 등등 회원들의 가게를 수채화로 그려놓고 기증받은 옛 물건을 전시하고 있었다. 또 지도에 이 집들을 표시해서 수월하게 들러볼 수 있게 꾸며 놓았다. 金城樓는 여관 겸 요정인데 明治23년 창업해서 平成3년에 100주년이 되었고, 淺田屋은 1659년 창업이라는데 어제 점심을 먹었던 들렀던 北間樓도 1863년(文久2年) 창업인데 그런 집인 줄도 모르고 배만 채웠던 것이 아쉬웠다. 또 생선의 膾를 뜨는 요리책도 흥미로웠다.
유럽의 가게에 ‘Since 1800...’ 어쩌구 하는 간판이 보이는 것이나 중국에서 ‘老字號’라고 이런 가게를 모아 출판하는 것은 이미 상식이 되어 있다. 우리 막걸리나 주막이나 삼베도 代만 이었다면 도대체 우리 특허와 경제가치는 얼마가 되었을까?
아래층으로 내려와 서재의 마루에서 정원을 바라보며 잠시 땀을 들였다. 일본인들이 왜 참선과 다도를 즐기는지 이 閉鎖된 宇宙[?]에서 잠시 생각해 보았다.
길가에 예쁜 관광순환버스가 서있는 것에 눈길을 주다가 개울을 따라가며 그 물이 담장 밑으로 집안을 돌아 나오는 것을 한참 바라보았다.
野村家는 천석꾼 노무라의 집은 말하자면 천석꾼의 집이다. 天正11년(年號 한 번 거창하다) 그러니까 1583년에 前田[마에다라고 읽을 것 같은데?]이라는 분이 가네자와城에 들어와서 百萬石[지금도 이런 거리의 이름이 가네자와에 있다]의 터를 닦았다. 그때 그의 비서쯤 되는 분이 노무라였던 것 같은데 1千石의 규모를 일약 1200石으로 증식했다는 것이다.
아무튼 이집도 일본 관료의 고급주택의 典型가운데 하나다. 입구에는 그의 갑옷이 있고 관심을 끄는 것은 벽에 걸린 日本戰國時代의 고지도 한 장이다. 이 한 장의 지도는 ‘大望’으로 번역된 ‘德川家康’과 司馬遼太郞의 글을 읽은 사람이라면 일본이라는 제국주의가 봉건주의를 거쳐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가늠할 수 있다.
정원에는 끊임없이 물이 흐른다. 비단 잉어도 더위를 못 이겨 돌다리아래에서 숨을 죽인다.
‘靜寂’
이런 단어가 잠시 일본을 생각하게 하고
‘靜謐’
이런 단어가 동양을 생각하게 한다. 잠시 툇마루에서 쉬었다. 물을 바라보며...
로망슈어를 하는 나그네들이 많다. 이태리-프랑스-스페인 사람들은 으르렁거리면서도 정서와 主語를 공유한다. 어깨를 드러낸 나폴리 여인은 中韓日으로 이어지는 비단길에 대해 나폴리에 가보았느냐고 묻는다. ‘아니!’라는 대답에 2층의 다실에서 정원을 내려다보며 나폴리를 스쳐가고 머무른 문화를 자랑한다. 그리스와 로마와 저 아랍을 통한 동방문화까지... 이 여인은 일본에 장기체류하며 이태리보다 더 한 더위를 아무렇지 않게 즐기고 있다.
이 집은 사진으로 찍어도 아무런 맛이 없다. 오직 천석을 일구는 주민을 걱정했던 주인을 빼고는... 어느 화가가 간단한 스케치를 했는데 그 誠意와 함께 가나자와의 情緖를 느끼게 한다. 그 한 장면이 창가의 대나무통을 따라 흐르는 물이다.
살아있는 물은 聖스럽다. 3천미터의 雪山의 물이 사이가와를 지나 마을을 식힌다.
金澤老舖百年會 전시관
어제 점심을 이 집에서 했는데...1863년 창업
생선의 부위는 어디가 맛있는지?
密閉된 宇宙에서 나는 누구인가?
가끔 사진을 찍어달라는 한쌍을 여행지에서 만난다. 색안경을 끼고 서로 무슨 생각을하며 웃고 있을까?
셔터를 누르는 사람은 무엇을 어떻게 찍을지 고통스럽다.
물은 가끔 집으로 들어갔다가 돌아나오곤 하는데...
천석꾼 집의 이끼낀 나무...
이 지도 한 장은 많은 이야기를 한다.
잉어도 나도 잠시...靜寂
뒤뜰에는 대잎에서 蘭이 자라고...
다실로 오르는 계단
이 방에서 나폴리의 이야기를 듣다가...
가운데 물이 흐르는...
그 대롱을 사진으로 찍었더니...
한국말을 배우고 싶다는 '손에 별을 쥔 소녀' 쥰코...고마운 이야기는 다음에 할게!
3층 전체를 홍보관으로 쓰는 가자자와홍보관 일부....
‘별을 손에 쥔 소녀’ : 점심을 먹기로 하는데 어제 李선생의 생일 턱으로 過用했다. 식당가를 되돌아오며 孫여사의 입맛에 따르되 절약형으로 선택권을 주었는데 그냥 걷기만 한다. 孫여사는 평생 남편을 별처럼 바라보고 살아온 것 같다. 우리 할망구는 평생[반평생만 살려고 했는데 거의 평생이 되가는데...] 내게 소리만 지르고 살아왔는데... 좋게 말하면 발표력이 있다고 할까? 아무튼 다소곳한 孫여사도 내심 앙큼하게 둘이서 합의한 대로 동네 김밥과 도시락을 가게에서 먹었다.
나는 밥보다 오직 3분 거리에 있는 가네자와관광안내소의 쥰코양에게 있었다.
점심을 마치고 일행을 잠시 쉬게 하면서 30분 쯤 걸릴지도 모른다고 했다.
쥰코양은 메모를 해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2200미터의 산에서 잘 수 있는 곳은 오직 네 곳이라는 것은 이미 서로 알고 있었는데...
‘어떡해요- 딱 하나 000에 방이 있는데 합숙을 해야 해요! 베개도 침구도 없어요...온천은 있는데 밥은 두 끼를 주고 一人[일본 여행에는 이 일인당이 매우 중요하다]1만円이라는데요...’
나는 5초도 걸리지 않았다. 이 더위에 비를 피하고 밥을 주고 목욕을 할 수 있다면... 다만 합숙을 하기에는...
쥰코는 바로 전화를 했다. 한국인이라는 것과 합숙은 곤란하다는 것...아마 매니저인지 네 명이 함께 잘 수 있는 칸막이는 제공할 수 있다는 정도...
쥰코는 내 눈동자를 올려다보았다.
‘OKです’
그것이 내 답이었고 내 이름이 전해지고 예약금도 없었고 그 집의 주소와 전화번호가 내 손에 쥐어지면서 소녀는 별을 놓았다.
로비에는 첫봄에 돌아온 제비처럼 동반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露宿해본 일 있나?’
‘@#$%$%^&????’
‘아니?! 내일 별을 보고 잘 수 있냐구?’
이 사람들이 올라본 높이를 평균해도 1600미터도 안 된다.
뭘 알고 그러는지 모두들 좋다고 한다.
별것도 아닌 걸 가지고....이런 표정을 지으며....
대체 이 인간들이 뭘 믿고 이러나??
그 이야기는 다음에 이어진다.
아무튼 이제 박물관에 갈 수 있게 되었다. <繼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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