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알프스의 추억[5] 제4일
구로베[黑部]댐의 무지개....
세상의 시름을 식히는 구로베댐의 물보라
창가에서 우는 새 : 개운하게 자고 일어났다. 한 사람은 비에 젖은 유황냄새로 한번 깨었다지만 죽 잤고 한 사람은 커피를 많이 마셔서, 또 한 사람은 어지러워서 1시에 잤다지만 모두 맑은 얼굴이었다. 나는 1시에 목욕을 하고 6시쯤 된 줄 알고 잠시 눈을 붙인다 생각했는데 전반전도 후반전도 푹 잤다. 1시에 잠든 사람 덕분에 심야에 목욕을 했다는 것을 아침에야 알았다. 산장의 하룻밤은 모두 첫 경험이었다.
창가에서 우는 새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창가에 キビタキ[키비다기]가 여린 풀잎에 매달려 어린 이삭을 뜯고 있었다. 바람에 쓰러질 풀이 새를 매달고도 꼿꼿이 서있었다. 무게를 못 이겨 휘어질라치면 새는 날개를 파닥거려 묘하게 풀줄기를 바로 세우곤 했는데 씨이소오 같기도 하고 원심력이랄까? 복원력이랄까? 장대를 세워놓고 올라가는 광대를 보는 것 같았다. 새를 좋아하는 김선생이 생각났다.
노랑꽃이 초록 풀잎위에 갓 내린 비에 젖어있었다.
우리는 삼층에서 잤는데 온천탕은 1층 한 계단 단 아래 비탈을 이용해 산이 보이는 전면 유리창을 뽐내고 있고 공동화장실은 2층과 4층에 있으니 사람들 일어나기 전에 빨리 이용하자고 했는데 알고 보니 우리는 늦은 편이었다.
부풀은 치약 : 말라 비틀어 놓은 치약을 짜려고 보니 새 치약처럼 부풀어 있다. 내 시계의 기압은 730hPa 정도인데 자료에는 평지가 1013hPa일 때 760hPa정도라고 하니 수긍이 간다. 일회용 커피도 부풀고 가루비누는 비닐팩의 지퍼를 열고 물만 부으면 막 배낭의 옷들을 세탁할 준비를 마친 참이었다.
지나친 운동을 하면 호흡에 장애가 올 수 있고 고산병 증세를 일으킬 수도 있다고 한다. 어제 집사람의 어지럼증이 그런 것이었을 것이다. 잘 지켜지지 않는 것 같지만 중국에서는 백두산 등정조차 55세 이상은 입산금지에 여행객모객도 보험도 되지 않으니 신기할 일도 아닌지 모르지만...
피서의 시원함이 아니라 춥다고 했는데, 가장 더울 때 22⁰C 가장 추운 1월에는 -24⁰C라고 하니 그 차이가 50⁰C에 가깝다. 100m를 오를 때 마다 대략 0.5⁰C-0.6⁰C 차이가 난다는데 시계의 온도는 이 새벽에 17⁰C를 가리키고 있다. 어제는 가나자와의 한낮이 40⁰C였다니 그 차이가 얼만가?
물이 끓는 것[沸騰點]도 90⁰C라는데 어떻게 그런 맛있는 밥을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식당으로 내려가는 쪽에 강당이 보이는데 요 한 장을 경계로 늦잠을 잔 사람들이 이불을 개고 있다. 이 사람들은 이미 산에 다녀온 사람들이 분명하다. 이 강당의 합숙에 비하니 우리가 스위트룸에서 잔 것을 겨우 알게 되었다. 창밖은 흐렸지만 하얀 구름장이 지나가면 유리알 같은 파란 하늘이 틈을 보이곤 했다.
식당에는 우리 자리만 남아있을 정도로 한가했다. 우유 한 잔이나 주려니 했는데 아침도 매우 훌륭했다. 주문하면 도시락도 준다니 이 산장은 인간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생존에 대한 것은 모두 갖추고 있는 셈이다.
어젯밤에는 귀곡산장었는데 아침엔 천국이었던 라이쬬휫데
화가들은 벌써 이젤을 세워놓고...
만년설을 지나며 : 이 마을에는 세 계절밖에 없다. 봄-여름-가을! 겨울은 온통 흰 눈으로 쌓여 산도 집도 모두 눈에 갇힌다. 사람은 마을로 내려오고 풀이야 솜이불을 들쓰고 겨울을 난다지만 산새와 들짐승은 어떻게 하나?
짐을 꾸리고 말린 우산과 비옥과 신발을 챙기고 보니 7시30분이다. 이렇게 일찍 출발한다니 믿기지 않았다. 이제 그 많던 투숙객들은 거의 보이지 않는데 저 계곡의 어느 틈새에 모두 있을 것이다. 산 아래에는 벌써 이젤을 세워놓고 화가들이 등을 맞대고 스케치에 열중이다. 곧 비가 내릴지도 모르는데...
이제 산을 내려간다. 어제 오르락내리락 비를 맞으며 걷던 길을 되돌아 라이쬬 산장 - 온천호텔앞의 호수와 유황계곡 - 정류장으로 3등분해서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옮겨 놓는다. 산마루는 조금씩 낮아지다가 비탈길을 내려가면 급격히 높아진다. 한걸음만 옮기면 두껍게 쌓인 눈을 만져볼 수 있는데 길을 따라 줄을 띠워놓았다. 길가는 사람들은 모두들 한참이나 그 눈의 체온을 가늠해보고 서있다. 정말 눈일까?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눈은 녹아 골짜기에 그만큼 파란 물을 만들고 이끼와 들풀과 들꽃은 그 물에 뿌리를 적신다. 구름은 때 없이 연못에 그림자를 만들다가 몇 방울 빗방울을 던지기도 한다.
산장을 지나 오르고 내린 뒤 온천호텔에 이르니 이제 걱정은 없다. 정류장이 눈앞에 있고 어제 비도 맞아본지라 이 정도야 아무 일도 아니다. 멀리 구름 아래 도야마의 시내와 수평선이 이어지고 하늘에는 부지런히 헬기들이 건축자재와 쓰레기걸망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산도 보이고 바다도 보였다. 정상에 선 사람들은 오죽 浩然之氣를 뽐내랴만 그냥 여기 앉아서 우리 같은 중산층은 이런 것이려니 했다.
지옥을 지나서 : 유황계곡의 가스 잦아들어 오늘은 통행이 가능하다. 사람들은 왜 저 지옥을 걸어보고 싶은 것일까? 카메라를 들고 무리지어 또는 쌍쌍이 들꽃처럼 드문드문 지옥 속에 보인다.
흰 눈으로 테를 두른 호수는 어제도 오늘도 고요하다. 햇살이 비치면 산 그림자를 담았다가 구름이 가리면 산을 떠나보내고 홀로 명상에 잠긴다. 그 모든 어머니가 그렇게 했던 것처럼!
계단을 오르니 무로도[室堂] 광장! 증명사진 두 장을 찍는 곳이다.
한 장은 약수터인 ‘立山玉殿の湧水’고, 또 한 장은 2450미터라는 숫자가 ‘立山’이라는 글자와 함께 쓰인 돌비석!
모두들 물을 마시고 또 차례로 사진을 찍는다. 3천미터의 계곡에서 바위틈을 돌아 흐른 물은 1분에 15㎥가 솟구친다고 하니 엄청난 量이다. 게다가 얼음같이 차고...일본100選 이름난 물에 들어갈 것도 당연지사!
아쉽게도 이제 정말 내려가야 할 시간! 벌써 3일 밤을 일본에서 보냈다. 바다를 끼고 외설악을 보았다면 이제 내설악을 돌아 4일 밤을 자며 공항으로 돌아가야 한다. 내려가는 버스는 무로도[室堂-이 이름은 神社나 당골네가 살던 곳이라는 느낌이 든다.]에서는 7:45분을 첫차로 16:30분까지 19차례 매시간 연달아 있다. 그러나 동굴버스를 두 번 타고 로프웨이와 케이블 등산열차를 탄 다음 다시 信農大町까지 버스를 타고 또 기차로 松本까지 가서 잠자리를 알아보아야 하니 모두 6번을 바꿔 타야 한다.
비탈을 오르고 다시 내리며...
등성이 뒤에는 유황의 지옥-
화산석에 뿌리를 내린 풀은 만년설이 녹인 물에 발을 담그고...
구름아래 멀리 도야마 시내와 그리고 수평선
유황의 지옥에도 눈은 내리고 그 사이 들꽃을 찾는 사람들은 ...무엇을 보았을까?
만년설이 띠를 두른 미꾸리까 호수
무로도의 산악지도 - 맨 위에서 두번째 네모가 우리의 숙소였던 라이쬬휫데
무로도의 약수 - 일본명수 백선
증명사진 찍는 곳-해발2450미터
로프웨이 : 9시15분에 다떼야마의 정상 밑을 가로지르는 터널버스를 타고 10분 만에 어둠을 벗어났다. 어둠속에서 머리 위에 웅장한 산마루가 하늘을 받치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야릇했다. 9시25분에 동굴을 나오니 구로베[黑部]의 짙푸른 계곡이 한눈에 들어 온다. 전망대에는 알프스연봉3천미터에 육박하는 봉우리이름이 사진과 함께 전시되어 있다. 바로 로프웨이를 탈 수 있지만 한 대를 보내고 설탕에 버무린 감자도 먹으며 구로베 호수를 내려다보았다.
한 20분 쉬다가 승강장 대합실로 내려가니 벽에는 알프스명승사진이 전시되어 있는데 산뜻한 승무원 복장을 한 젊은이가 90도 인사를 한 다음 책 선전을 한다.
‘이 책으로 말할 것 같으면....’
하는 식으로 시작된 말은 하나도 못 알아듣겠지만, 로프웨이, 전경, 폭포, 호수, 겨울의 설벽[雪壁], 천연기념물 등등..
‘알프스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는 식이었다. ‘특별히 전경사진 한 장 - 특별히 원본 기념스탬프 한 장[지금 보니 2316미터 8월11일 大觀峰이라는 글자에 로프웨이 그림이 찍혀있다.] 그리고 가지고 가시기 편리하게 특별히 제작한 비닐 봉투 한 장 까지 모두 합해서 단돈 1천円...’
사람들은 그 익살에 모두 웃는다. 우리도 두 권을 사서 한 권씩 나누어 가졌다. 봄이 되면 눈 속에 덮인 길을 뚫어 雪壁을 만들고 그 사이로 버스가 다니는데 그 높이가 20미터나 되는 곳도 있다는 말은 듣기에도 아찔했다. 눈이 덮여 태고로 돌아간 산골에서 GPS로 도로를 찾아내고 불도저로 제설작업을 하는 사진은 인상적이었다.
사람들이 붐비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히 비집고 모두 탈 수 있었다. 9시50분 공중에 매달린 우리들은 호수를 바라보며 7분간 하강했다. 곧이어 10시10분 다시 케이블로 끄는 등산열차에 옮겨 타고 15분만에 구로 댐에 내렸다. 이곳이 1450미터이니 순식간에 1천미터를 내려온 셈인데 집사람은 오히려 밝은 표정이다. 이제 평지로 돌아오는 것이니 고산병증세는 걱정 안 해도 되는지...
호수위에 떠 있는 로프웨이
오른쪽은 호수 왼쪽은 협곡
물줄기는 쏟아지고 거기 무지개가 걸려...
구로베호수 - 멀리 유람선이 물살을 갈랐다
사람들은 모두 여기 모인듯-댐은 생각보다 넓다
전망대를 오르내리는 관광객들
탄소를르 줄입시다!
딸이 자랑스런 아빠!
구로베댐의 무지개 : 오른쪽은 호수 왼쪽은 협곡이고 댐은 생각보다 넓었다. 지도에는 관광객을 위해 폭포처럼 두 갈래의 물을 방류하는 전망대 사진 찍기 좋은 곳 등등 모두 친절하게 표시되어 있다. 바람은 녹색 물을 거쳐 계곡 따라 흐르고 사람들은 모두 점으로 보일만큼 작아 보인다.
쏟아지는 물을 보고 왜 사람들은 열광할까? 두 줄기의 물은 굉음을 내며 협곡으로 쏟아지고 그 물이 온 세계의 사람들을 구로베로 끌어들인다. 이 한 장의 사진이 이곳 안내의 첫머리를 장식하곤 한다. 나도 이 장면을 보여주며 우리 식구들을 이곳에 오도록 설득했었으니까...
무로도에서 한가하던 인파는 여기서 갑자기 불어난다. 그리고 그들은 폭포에 걸린 무지개를 보고 다시 숨을 죽인다. 가나자와의 東山에 걸린 무지개를 보고 오늘 다시 무지개를 보며 영국의 시인처럼 가슴이 뛴다. 전망대의 개미처럼 달라붙은 관광객들이 무지개에 걸려 있다.
11시가 되어간다. 이제 알프스 횡단 탈것의 종착역인 터널버스를 타려고 동굴에 들어서니 갑자기 한기에 가슴이 떨린다. 급히 점퍼를 꺼내 입었는데 입구의 온도계는 11도를 가리키고 있다. 개찰구에는 집을 나선 일가족이 행복해 보이는데 딸딸이 아빠는 아기가 귀엽다. 역무원들도 모두 두 아이를 한꺼번에 안은 이 아빠에게 따스한 눈길을 준다. 게시판에는 녹색성장-저탄소를 홍보하는 關西電力의 안내판이 눈길을 끈다.
11시5분에 구로베 댐을 떠난 전기버스는 긴 터널을 달린다. 마주 오는 버스를 피하는 교차로가 중간에 있다. 11시21분 터널을 빠져나온 버스는 扇澤[오기자와]버스정류장에 우리를 내려놓는데 여기까지가 1인당 9,230円짜리 티켓의 유효구간이다.
부지런히 아래 층 신농대정까지 가는 버스[1인당 1350円]정류장으로 달려간다. 4분 뒤에 버스가 떠나기 때문이다. 이 버스를 놓치면 다시 1시간을 기다려 12시30분 버스를 타야한다. 동경 등 남쪽에서 오는 관광객들이 구로베 댐에 모이고 또 산에서 내려온 등산객들이 모여들면서 버스는 자리가 차고 이제 입석까지 빼곡하다. 일본에서 입석인 버스를 처음 타 보았다. 信農溫泉에 잠시 서고 읍내로 들어오는데 이미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나가노[長野]현이다. 가나자와 - 도야마를 거쳐 세 곳의 현을 통과하는 셈이다. 12시 정각이니 정말 알뜰한 시간에 여기까지 왔다. 이제 마쯔모또[松本]로 가는 기차시간을 확인하고 또 표를 사야한다. 12시35분 기차를 타게 되었는데 1인당 650円으로 1시간 정도 걸린다니 시간을 절약했다. 시간표를 한국에서 알 수 없어 저녁 5시나 되어야 이곳에 도착할 줄 알았더니 다행이다.
<계속 : 다음은 마쯔모또의 천수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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