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알프스의 추억[3] - 이시카와 박물관 2일 午後
박물관의 발해이야기 : 이시카와현의 현청은 가나자와에 있다. 당연히 박물관이 여기 있는데 각각 2층인 3동의 옛날 육군병기고 건물이 전후에 미술공예대학으로 쓰이다가 박물관으로 변모했다. 제1실은 당연히 원시시대로 시작되는데 繩文土器의 역사는 1만년이 넘는다고 한다. 석기와 주술에 사용한 도구는 매우 섬세하다.
기원전5세기에는 벼농사가 비롯되고 토기와 목기도 상당히 세련되고 청동거울도 보인다. 4-6세기에는 앞은 모나고 뒤는 둥근 前方後圓의 무덤이 나타나는데 이런 고분에서 금을 입힌 두 마리 용머리를 透刻한 칼의 손잡이 고리가 발굴되었는데 ‘高麗劍’으로 소개하고 있다. 중국에서도 고구려와 고려를 혼용하고 있다. 당연히 고구려의 칼인데 570년에는 고구려의 使者가 이곳에 왔다고 기록하고 있다.
불상과 馬具와 청동거울에 발해의 瓦當까지 대륙과 활발한 교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727년 처음 발해의 손님이 일본을 찾은 이래 200년간 34회의 발길이 이어졌는데 그중 이 지방을 12번이나 찾아 가장 많은 횟수를 기록했다고 한다.
얼음이 녹고 해수면이 올라가기 전에 사실은 북해도에서 오끼나와를 거쳐 대만으로 대륙은 이어져 있었고 저 바다는 호수였다.
7세기말 율령시대의 와당에 보이는 연꽃은 백제와 너무 흡사하다.
이후 중세를 거쳐 근세와 현대에 이르면서 자료는 더욱 풍부해진다.
육군병기고로 사용되던 이시카와현박물관1-2동
고구려 칼고리 장식은 한쌍의 龍이 입맞추는 모양이다.
1천년 전 발해와의 빈번한 교류
오후5시면 이런 볼 곳은 모두 문을 닫는다. 아무리 작은 마을이라도 좀 차분히 보려면 사흘은 머물러야 한다. 더구나 여름에는 오전에 관광 오후에 휴식 이런 패턴이 좋다. 겨우 1/6을 대충 본 것인데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간다. 하기야...이 방에서는 1만년의 시간이 지나간 것이니까...
오른 쪽에는 도시와 갯마을 산촌과 시골을 재현해 놓았는데 이 방이 오히려 재미있다.
3동의 1층에 있는 근세 과학기술의 발달은 매우 인상적인데 가나자와 방직공장의 실 뽑는 물레는 기억에 새롭다.
우리 박물관들이 과거에 매몰되어 있다면 이 사람들은 그 과거를 현재까지 이어 관람객들에게 자신의 좌표를 돌아보게 하는 성의가 있다.
겐로꾸엔의 서쪽입구
이 소나무의 뿌리를 자세히보면
약 2미터높이로 40갈래가 노출되어...
창포꽃은 지고 개울에 그 추억은 어린...
茶亭과 호수에 어리는 그림자에는 잉어가 놀고....
兼六圓은 여섯가지 정원의 미덕을 갖추었다고 이름 지어졌다. Pentagon 이 있다면 Hexa Garden이라고 해야 하나? 일본의 삼대정원을 구마모또[熊本]의 水前寺와 이곳과 이바라기의 한 곳이라는데 우리 모두 그 중 두 개는 보는 셈이다.
이 더위에 그늘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가?
이 정원의 입구는 모두 다섯 곳이 있는데 우리는 박물관에서 담을 끼고 돌다가 전통산업공예관 옆의 고다쓰노[小立野口]로 들어갔다. 입구의 야마자키산[山崎山]은 계단 몇 개를 올라가는 것이지만 정자에 앉으니 매우 시원했다. 가져간 차도 한 잔 마시고 다리도 쉬고 땀을 들였다.
1676년에 조성하기 시작했다니 300년의 세월을 품고 있는 나뭇가지를 스치는 바람도 가볍게 보이지 않았다. 宋나라에 李格非라는 시인이 있었다는데 그는 정원의 미덕을 宏大, 幽邃, 人力, 蒼古, 水泉, 眺望의 6가지를 겸비해야한다고 洛陽名園記에 썼다는 것이다. 넓고 그윽하고 공력을 들이고 세월이 지나고 샘이 솟고 멀리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정원의 필수조건은 그럴 듯하다.
千年 전, 萬里 밖의 이야기를 빌어다 이 땅에 이상향을 실현해보고자 했던 한 사람의 생각에 머리가 끄덕여졌다. 우리의 秘苑이나 양산보의 瀟灑園, 윤선도의 보길도, 강릉 경교장 등등도 이런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다만 이 정원을 모델로 일본의 어느 한 부분이, 즉 5성호텔이나 음식점 그리고 개인의 주택 한 모퉁이에 재현되고 발전되고 또 늘어나게 하는 것이 이 겐로꾸엔에 더한 兼七園의 미덕일지 모른다.
누군가 1800종의 나무가 있다고 하는데 영산홍 소나무 주목 매화 등등이 눈에 뜨이지만 여름은 오직 녹음이 미덕이다. 40갈래의 뿌리가 2미터 정도 노출된 소나무는 볼만했다. 그 사이로 개울은 흐르고 꽃을 떨군 창포가 녹색 잎을 자랑하고 조약돌을 쓸며 물이 흐르고 있었다.
연못은 고요히 파란 물을 뽐내고 있었지만 기슭에 수많은 잉어를 기르고 있었다. 그 정자 아래서 다시 걸음을 멈추고 얼음과자를 핥았다.
우리는 뒷문에서 21세기 미술관 정문쪽으로 가로지른 셈인데 거기 豊臣秀吉이 기증했다는 說이 있는 바닷돌을 품은 히사고이케[瓢池]라는 연못이 있고 폭포가 아름다웠다.
가나자와성박물관에 가기에는 이미 5시가 다 되어 어렵겠다. 하지만 성벽을 따라 걸으며 시가지를 굽어보는 것도 정취가 있다. 아마 평생 처음 겪는 섭씨40도의 땡볕은 그리 고통스럽지 않았다.
‘바닷가라서 그런가?!’
‘공기가 맑아서 그렇겠죠?!’
‘태국에서도 그늘에만 들어가면 시원하지!’
‘지금 큐슈에서는 어떻게 지낼까?’
‘어휴! 그놈의 습도- 구라시키에서는 옷이 몸에 착 달라붙어서...빨래도 마르지 않고...또 대만의 습기는...북경은 그래도 건조해서 그나마...’
그러고 보니 일본 목욕문화의 발달- 건조의 정도가 중국-한국-일본의 순서로 섬과 반도와 대륙의 기후와 의식주를 떠올리게 한다.
‘사람의 熱氣! 자동차의 熱氣! 가로등의 熱氣...’
그런데 그렇게 후덥지근하지는 않다. 성벽에는 개미처럼 인부들이 달라붙어 보수를 하고 있고 관광객은 붐빈다. 어떤 사람은 가게의 평상에 드러눕기도 한다. 겐로꾸엔과 성을 잇는 구름다리를 한가로이 지나며 어제 지나온 히가시짜야를 흘낏 본다. 홍등가인 그곳은 이곳에서 지척인데 근무를 마친 사무라이들은 한 잔 하러 강을 건너갔을까?
성벽을 따라 마루에 올라 그늘아래 마련된 서너개의 평상에 모두 나누어 앉아 쉬었다. 이곳의 천수각은 파괴되고 길게 뻗은 50間이나 되는 행랑채에는 온갖 문물이 전시되었겠지만 이미 문을 닫았다.
육교에서
성벽에 매달린 인부들은 ....
천수각은무너지고 행랑채만 남아!
가나자와에서 제일 높은 - 제일 시원한- 제일 편안한 자리 ....수도도 있다.
일본근대문학관
城길을 돌아 내려오니 현청별관과 시청, 무엇보다 부러운 근대문학관- 중앙공원 안에 있는 그 건물은 이시카와 第四高等學校였는데 문화교류기념관으로 함께 쓰고 있었다. 겐로꾸엔식으로 하면 蒼古와 宏大, 幽邃와 人力과 水泉을 갖춘 학교였고 문학관이었다. 벽돌이 고색창연했고 숲이 있어 넓어보였고 또 물이 도심의 가로등을 따라 흐르고 있었으니까...길 건너 시청옆에는 잔디밭에 21세기미술관이 드넓게 자리 잡고 있었다. 인천으로 말하자면 문학산에 천수각터가 있고 그 옆에 겐로꾸엔, 산 아래 시청 그리고 문학경기장만한 미술관과 길 건너 도서관과 방송국이 있는 그런 형국이다. 인구50만도 안 되는 도시에...
21세기 미술관에는 원래 여자사범학교가 있었던 모양이다. 청동 소녀상 아래 ‘이곳은 본래 동창회 사무실이 있었다!’는 비석이 서 있다. 참 억척스런 동창할머니들이로고 ... 콜로세움을 연상케 하는 둥근 유리벽은 무척 더워 보이는데 그 안은 의외로 시원하다. 그 유리벽을 따라 도는 것은 무료다. 풀장을 만들어 놓고 물결이 은은하게 등불을 따라 움직이는 설치미술은 어린아이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경비원은 멀찍이 부동의 자세로 서있다. 풀과 정지된 여자 경비원! 이 조화는 내게 새로운 미술세계였다. 그 안은 모두 유료전시장-교체 작업이 한창이다. 홀에는 온갖 미술품과 도서실과 체험교실...종이로 만든 한화5만원의 나들이 가방은 신기하다. 엽서를 한 장 샀다. 구마모또의 화가를 생각하면서....
뜰에는 스텐레스 의자와 나팔과 플라스틱 원형벽을 돌며 스펙트럼처럼 세상을 무지개로 보게 하는 설치미술이 관람객을 한 바퀴 돌게 만들고....
시민들은 퇴근길에 출근길에 또 휴일에 이 미술관 공원을 사랑한다.
점심 때 도시락을 파는 할머니는 그렇게 유식해 보이지는 않았다.
‘어머! - 관광하러 오셨어요? 한국분?! 21세기미술관에 가보세요!’
그렇게 말했으니까-
21세기 미술관
회랑에서 바라본
초등학생들의 그림이야기
무지개를 통해 세상을 본다면...
저녁밥은 6시 전에 먹기로 했다. 집사람의 당뇨를 조절하기로 합의했으니까-
택시를 타기가 쉽지 않은 것은 일본구루마의 핸들이 오른쪽에 있기 때문에... 노망기 때문에 길을 건넜다가 다시 건너오려면 이 아니 웃기는 일인가? 젊은이들 덕에 소매를 이끌려 자리에 앉고는 ‘제일 유명한? 오래된 市場으로-’
近江市場은 알아두었는데 일본어로 이 한자를 어떻게 읽는지 알 수가 없다. 아무튼 시장도 6시[아마 7시쯤 되었을 것이다.]에는 이미 철시를 한 뒤지만 몇 군데 식당만은 열려있다. 한 집은 줄지어 앉아 있다가 자리가 비면 들어가고 또 새로운 대기자가 찾는다. 우리는 그 앞집 じもの亭에서 덴부라에 생선알밥 등등 4인4색의 음식을 시키고 애주가를 위해 백산이라는 이름이 붙은 17度짜리 술을 한 독구리[900円] 시켰다. 애주가께서 이제야 일본 물가가 실감나는 것 같았다. 白山은 2700미터쯤 되는 일본 三大名山의 하나라고 하는데 말하자면 이 동네의 鎭山이다. 나도 한 잔 얻어마셨는데 우리나라 정종과 아주 비슷한 맛이었다. 좀 달착지근하다고 할까?
4인4색의 시장 저녁
택시를 타고 호텔 뒤 시나가와강변에 내렸다. 오늘 아침 이또선생의 병원을 지나 강가의 수퍼에서 맥주를 사왔다. 애주가가 어떻게 알았는지 육포에 삿보로-麒麟-아사히 고루 골라왔다. 오랜만에 맛보는 麒麟의 깊은 맛이 좋았다. 강바람은 불고 아무도 없는 강변에서 하늘의 별을 한없이 바라보았다. 그 별들 가운데 인공위성과 까마득이 날아가는 비행기를 잘도 찾아내고들 있었다. 이 중늙은이들까지 별이 아닌 인간의 별을 신기해하는 그런 세상이 되었는가? 별들로 하늘이 비좁아 보였다.
내일은 저 별을 따라 가나자와에서 도야마로 다시 전철을 타고 海拔0에서 2400미터까지 산으로 올라갈 수 있을까?
방으로 돌아와 산장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세장 만들었다. 혹시 잊어버릴까봐- 오늘아침은 호텔에서 먹고 점심은 도시락을 사먹고 저녁은 시장에서 그리고 네 군데 입장료와 세 번 택시를 타고 호텔비를 지불하는 등 절약했지만 내일은 모두 곱으로 돈이 들 것이다. <계속 - 다음은 3일째 北알프스에 내리는 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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