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다알프스의추억

기다알프스의 추억[4] 제3일 - 萬年雪에 내리는 비

양효성 2010. 8. 22. 18:30

 

 

 

       기다알프스의 추억[4]

                 제3일 - 萬年雪에 내리는 비

 

 

雷鳥 : 해발2400미터에는 雷鳥가 살고 있다. 이 ‘우레새’를 이 사람들은 ‘라이쬬’라고 부른다.

사진으로 보면 암컷은 까투리를 닮았고 수컷은 살진 독수리로도 보이는데 飛翔할 때는 장끼로도 보인다. 빙하시대의 새로 지구가 더워지자 고산으로 서식처를 옮겨 이 서늘한 산에 230마리 정도가 아직까지 살고 있다고 한다. 그 새는 보지 못했지만 그 이름을 가진 산장이 오늘 우리가 잘 곳이다.

 

富山市 中新川郡立山町蘆峅寺74 ☏076-465-5727 雷鳥沢[휫데]

 

그 주소를 한 장씩 나누어 가졌다.

이 산장에 도착하기 위해 택시-기차-전철-등산열차-고원버스 등 제자리에서 바꿔타는 것이지만 짐을 지고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해야한다. 더구나 휴가철이어서 사람이 붐빈다면....그리고 어제는 우산을 짊어지고만 다녔는데 오늘 날씨는?  

 

 

오늘 밤은 여기서 잘 것이다.

 

중요문화재 - 1924년 건립으로 한 때 전철이 지나다녔다. 

 

사이가와다리[犀川橋] : 세운지 얼마 되지 않은 다리가 문화재라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틀간 산책로가 되어 준 이 강이 고마워서 사진을 한 장 찍어두기로 했다.

1592년 임진년 왜란은 7년간 계속되었는데 이 다리는 1594년에 나무로 세워져 약 300년 유지되었다. 1919년은 기미독립운동의 해인데 이 해에 미제 철근을 사용해서 전철이 지나가는 콘크리트다리가 세워졌는데 3년도 못 채우고 1992년 사상초유의 호우에 붕괴되고 말았다.

1924년에는 동경제대출신으로 미국유학을 마친 關場茂樹씨가 영국제 철강을 이용해 만든 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으니 80을 넘긴 셈인데 이 다리가 앞으로 얼마나 더 버티며 중요문화재의 관록을 쌓아갈지...귀족들의 골통품은 국보가 되고 서민의 의식주는 민속이 되는 세상이 마뜩치 않아 이 다리를 문화재로 삼은 그들에게 깊이 공감했지만 이 순간만은 나는 그 다리 아래를 흐르는 맑은 물과 잉어가 더 부러웠다,

 

 

 

일주문을 닮은 정문과 철골의 가나자와 역 

 

우리 회사는 택시값도 싸고요-

 

 

친절함에 대해서 : 李선생은 직접 부딪쳐보면서 일본인들의 친절함과 투명성 성실성 등이 인상에 남는 모양이다. 출근길의 택시를 세운다. 기사는 트렁크에 네 개의 배낭을 정리해준 뒤 안전띠를 단속하고 먼저 물티슈를 한 장씩 건네준다. 조수석 앞에는 선명한 사진에 井口秀樹란 이름이 또렷이 적혀있다. 택시가 좋다고 하니까 우리 北交タクシ-는 다른 차보다 차비가 싸고 쾌적하다고 회사 선전명함을 건네준다. 다른 택시는 기본요금690円에 277미터에 할증이 붙어 片町에서 驛까지 1090円인데 北交タクシ-는 560円 기본에 342미터 割增으로 驛까지 800円밖에 안 드니 290円이 절약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한화 약 4500원인가? 거스름은 사양할까 하는데 동전박스를 내놓고 일전까지 신속하게 거슬러 주는데 미소가 등산길을 즐겁게 해준다.

그들도 한 때는 웃지만은 않았다. 전국의 내란시기와 침략전쟁의 시기 등등. 7세기에 그들은 한국이 스승이었다고 한다. ‘좋은 아침입니다’는 인사말을 독일에서 배워왔다고 들었는데 맞는지 모르겠다. 세월이 흐르고 明治維新이 있었고 그리고 그 웃음을 만든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다떼야마로 가는 목조의 낡은 전철역

 

다떼야마의 구름다리

 

협곡

 

기차타기[가나자와[金沢]⤍도야마[富山]] : 철골 구조의 가나자와 역 원형광장에는 택시와 버스가 번호대로 둥그렇게 승강장을 이루어 따로 터미널이 없다. 東광장은 일반여행지 西광장은 공항버스인데 모두 대합실이 있어 표를 사고 관광팜플렛을 얻고 자판기에서 요기도 할 수 있다.

나이가 들면 지하철역에서 반대쪽 출구로 고개를 내밀기 일쑤다. 또 자동발매기로 표를 사는 것은 정말 어렵다. 중국소년이 집에 왔을 때 두리번거리는 나대신 전철표를 뽑아내는 것을 보고 혀를 끌끌 찼었다. 할 수 없이 티켓 예매소의 줄에 합류했다.

‘急行입니까?’

‘아니오!’

넉 장의 표를 들고 플랫폼에 가니 기차는 시발역이어서 이미 대기하고 있는데 자리를 잡고 보니 건너편에 매끈한 기차도 도야마로 간다. 한 20분쯤 먼저 출발하는 차고 급행이다. 굳이 이 기차를 타는 것은 한걸음이라도 서민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 보게 하고 싶은 것인데 마음이 바쁘다. 자유여행은 샛길로 빠지면 뒤끝을 감당할 수 없는 迷宮으로 이끌어간다. 어디 단체관광에서 기차를 타볼 수 있는 기회가 그리 많은가?

 

 

역무원에게 할증하고 바꿔 탈수 있느냐고 물으니 좋다고 한다. 일가족이 또 배낭을 들고 옆 차로 옮겨 탔다. 급행료는 완행열차의 두 배보다 좀 더 비싸다! 휴우! 넷이서 4천円이면 될 것을 9천円 쯤 준 것 같다. 기대 밖으로 기차는 바닷가에서 좀 떨어져 달린다. 아무래도 萩[하기]에서 松江[마쯔에]로 가는 해변의 아름다움을 즐기기에는 틀렸지만 高鋼[다까오까]에 한번 서고 거의 半시간 만에 富山역에 닿는다. 富山역에서 해변이 아닌 山쪽으로 출구를 잡는 것이 중요하다. 반대로 가면 한참 되돌아와야 하니까...

 

무로도[室堂]로 : 드디어 무로도를 통과해서 扇沢[오기자와]에 도착하는 표를 1인당 9,230円에 시간표와 함께 받았다. 이 시간표가 매우 중요하다. 알프스를 통과하는 역뿐만 아니라 우리는 종점에서 信濃大町[시나노오마치]로 다시 거기서 松本으로 가서 내일 밤을 보내야 하니까- 샀다. 발매일부터 5일간 통용이라니 한시름 놓았다. 역 앞에는 각양각색의 전철이 달린다. 이 전철은 국철인 JR이 아닌 私鐵이다. 즉 개인이 운영하는데 도처에 그런 私鐵이 있어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이 전철은 시골역을 지나가니 도시관광에 지친 나그네에게는 정취가 그만이다.

 

10시30분 출발! 다행히 모두 이 산골사람들이 승객이다. 낡아 보이는 전철은 서부영화의 역마차처럼 흔들리며 매우 빠른 속도로 들판을 달린다. 오차가 좀 있지만 손목시계의 고도는 40-70미터에서 좀처럼 올라가지 않는다. 이 전철은 宇奈月溫泉을 종점으로 구로베 도로코열차와 연결되는 本線과 다떼야마선과 支線이 있고 다떼야마까지 가는 20개의 역이 있다. 절이 있었을까? 寺田역까지 본선과 함께 가다가 갈라져 이제 다떼야마[立山]를 향해 농가를 지척에 두고 논길을 가르며 전철은 달리고 암청색의 북알프스가 구름모자를 쓰고 병풍처럼 둘러섰다.

가나자와에서 百萬石거리를 본지라 ‘五百石’이라는 역 이름이 재미있는데 그 다음에는 ‘釜ケ淵’이 나온다. 우리말로 訓借하면 ‘가마메’ 정도가 되는데 전라도에는 ‘가마미’라는 해수욕장도 있다. ‘가마-구마-개마-고마-가미-熊[곰나루-구마모또]-釜-劍-黔-...’ 등등은 모두 한국고대사의 관련있는 지명으로 나는 보는데 일본에서는 ‘神’도 ‘가미’로 읽는다. 또 이 알프스에 험하기로 유명한 劍山이라는 산도 있다.

 

 

케이블열차와...

 

산사람들...그래도 입석도 있는데...

 

두 사람의 미녀들...

 

미녀의 들판에 서있는 삼나무

 

수령300년의 스기...

 

네번을 굽이치는 폭포는 아련히 보이고...

 

 

야생마처럼 달리던 전철이 千垣에서 갑자기 점잔을 떨더니 속도를 줄이며 구름다리와 협곡을 좌우로 보여준다. 골짜기만큼 산이 올라간다는 말이 실감났다. 그런 잠시 ‘산이 서다’는 立山[다떼야마]에 전철은 머문다. 아무래도 ‘山이 우뚝 서다’는 부사어를 첨가해야겠다.

 

11시29분에 내렸는데 10분 뒤에 케이블카가 출발한다. 해발 475m에서 7분간 1.3Km를 올라가서 977m에 우리를 내려놓을 테니 시간보다 높이가 문제다. 29도의 경사를 유지하며 단숨에 케이블은 500m를 끌어올리는 것이다. 사람들이 붐비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많았는데 다행히 자리는 잡을 수 있다. 산에 가는 사람들은 모두 얼굴이 맑고 밝고 심장은 뛴다. 11시47분 순식간에 ‘미녀의 들판[美女平]’에 우리는 내렸고, 3분 뒤에 다음역으로 떠나는 고원버스가 있는데 물도 마실 겸 40분을 쉬고 12시40분 버스를 타기로 한다. 니가다와 북해도에 산다는 할배동창들은 오랜 友情을 이 산에서 과시하며 산책길에 나선다.

 

웬 미녀들인가 했더니 정류장 앞에 산보다 높이 솟은 두 그루의 나무에 얽힌 전설이다. 두 사람의 늘씬한 미녀들을 한참 우러러 보았다. 광장 건너에도 성냥갑만한 버스를 발아래 두고 杉나무가 서있다. 전망대에는 방금 타고 온 케이블카의 레일과 바퀴와 케이블을 전시하고 있었다.

 

12시40분, 정류장 천막위에 바늘구멍이 뚫린 고무호수를 걸쳐놓고 물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 서늘한 산에서 조금이라도 더위를 식히려고...

 

버스는 시원한 삼나무 그늘을 터널삼아 굽이를 돌다가 주춤거리며 300년 된 삼나무를 보여준다. 안개가 짙어지고 창밖이 흐려지기 시작한다. 버스천정에 길이 있는데 어느새 그 길 위에 버스는 올라있다. 마주 오는 버스를 피하려 멈추는 줄 알았더니 . ‘瀧見臺 Takimitai 1280m’이라는 표지판이 보이고 그 유명한 称名瀧[しょうみょうだき - 瀧은 급한 여흘 또는 瀑布다] - 350m의 四段瀑布가 아스라이 보인다. 李白의 飛流直下三千尺이 새삼스럽지만 다떼야마에서 저 폭포쪽으로 간다면 우리 걸음으로는 하루를 더 여기서 자야한다.

 

굽이를 돌던 버스는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반복하며 고원을 오르고 안개가 가릴 뿐 視野는 떨키나무로 오히려 시원하게 열린다. 이제 키높은 나무는 보이지 않고 풀들도 바람 따라 누웠다.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평지에서 그 맑던 날씨가...별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彌陀ケ原[1930m-대략 한라산 정상쯤 되나?], 天狗平[2300m]에는 산장도 있고 정류장도 있는데 비에 쫓긴 등산객들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점심도 문제고 그냥 통과하기로 한다.

 

고원의 비탈길과 누워있는 마무들

 

만년설 위에 유령처럼 드러나는 다떼야마호텔-무로도 정류장

 

 

萬年雪에 내리는 비 : 이제 알프스를 넘어온 구름은 이 고원에 거칠 것 없이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데 빗줄기가 장난이 아니다. 구름 밑에서 바로 맞는 비는 더 거센가?! 수증기로 차창이 흐려지는데 난데없이 산 중턱에 나타나는 하얀 덩어리는 무엇인가? 관광엽서에서 수없이 만년설 이야기는 보았지만 어느 심산유곡을 찾아간 작가의 발견이겠지?! 했는데 분명 눈덩어리들이다. 그 눈덩어리를 배경으로 인터넷에서 낯익은 2450m 산중에 있는 ‘호텔다떼야마’가 산 위에 비를 맞으며 떠 있는데 그곳이 바로 무로도의 정류장 옥상호텔이라는 것은 도착하고야 알게 되었다.

 

 

버스에서 내리자 빗줄기는 수직으로 퍼붓는다. 산 저쪽과 이쪽에서 오르고 내리는 우리같은 관광객에 산행을 마친 등산객까지 정류장은 혼잡하다. 선택의 여지없이 식당으로 직행하는데 이미 밥이 없단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식당이라고 아무 때나 밥을 주는 것은 아니다. 齋때에 밥 먹으라거나, 끼니를 거르지 말라는 말도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호텔 커피숍에서 커피와 오무라이스를 시키는데 건너편 의자에 길게 누어있는 중년부인이 심상찮다. 결국 링겔을 꽂고 간호원이 부축해서 움직이는데 이제 집사람이 머리가 아프다고 한다. 2400미터를 단숨에 올라온 탓인가? 숙소 직원의 말로는 여기서 3-40분이라는데...

 

문만 열고 나가면 되는 다떼야마의 호텔에 방이 있는지 물어본다. 2인1실 1인당 성수기요금이 30,450円이라는데 어떤 방도 빈 것이 없다고 한다. 창밖으로는 빗줄기에 휘감긴 등산객들이 속속 입구로 몰려든다. 산속의 비라지만 쉽게 그칠 것 같지 않다. 왕년에 전국체전유니폼도 입어본 할망구가 왜 이러나?! 進退兩難인데 정신이 좀 드는지 집사람은

‘山莊에 가면 누울 수 있겠지?’ 힘없이 묻는다.

‘암! 저녁도 먹을 수 있고...’

‘얼마나 걸리는데?’

‘1-2시간?!’

일부러 시간을 좀 늘렸는데 그러면 갈만하다고 한다. 안심제로 가져온 우비를 꺼내고 방수포를 배낭에 씌우는데 李선생 배낭에는 그것이 없다. 이런! 등산센타의 노쓰페이스인지? 방수포를 물어보니 3500円이다. 아니? 5만원이나 한다고...李선생은 우비를 뒤집어쓰면 된다고 한다. 하기야 젖어서 안 될 물건도 없다. 심호흡을 하고 빗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몇 걸음 걷고 보니 못 맞을 까닭도 없다.

 

얼마 걷지 않아 아름다운 미꾸리까[みくりが - 이름이 좀 닮은 민물고기가 생각난다]호수가 만년설을 배경으로 푸른 물을 뽐내고 있다. 맑은 날에는 이 호수가 거울이 되어 北알프스의 연봉을 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겨를이 없다. 여기서 왼쪽으로 돌면 내리막이어서 길이 좀 수월할 것 같은데 ‘지옥의 계곡’에는 유황가스가 진동하고 오늘은 진입금지다. 언덕에 온천장이 보이고 주위가 한눈에 들어오는데 둘러보니 영락없는 분지로 화산의 분화구속에 우리가 갇혀 있는 것이다. 잘 곳이라고는 지나온 다떼야마호텔, 이곳 온천, 조금 더 가면 雷鳥山莊과 라이쬬휫테와 또 한 곳 입산산장...

 

산장 주인의 말로는 여기까지 오면 거의 반이라는데 내려가는 길은 능선을 돌아 다시 오르고 雷鳥山莊까지 오니 나도 호흡이 가쁘고 가슴이 짓눌리는 것을 참기 어렵다. 게다가 지독한 유황가스가 비에 젖어 견디기 어렵다. 구역질을 하고 배낭을 곧추 세우고 미끄러운 돌계단을 게걸음으로 걷는다...유황계곡에서 잠시 쉬다가 돌아서니 절벽아래에는 오색 천막이 꽃을 뿌린 듯한데...난데없이 드러나는 귀곡산장 - 그 건너에 갈색의 산장이 보이는데 시멘트와 페인트는 낡아 떨어지고 불빛은 없는 거대한 이 폐가가 오늘 우리의 숙소이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미꾸라지호수? 미꾸리까...만년설이 테두리를 두르고 있다.

 

멀리 보이는 것은 온천으로 몇 안되는 숙소의 하나 -

저 고개를 세 개 넘어 라이쬬 휫데가 있다.

 

유황의 지옥 - 왼쪽에 가스가 한창 분출하는데 결국 지옥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구름과 만년설

 

밤은 별을 묻고 이렇게 오다

 

 

 

우리는 전날 밤 산장에 대해서 이야기했었다. 군대숙소처럼 남녀가 따로 침낭에서 자고 공중변소를 이용하고 군대식으로 밥을 먹는다는...

아무튼 숙소에 도착했다. 매니저는 한국의 한라산 설악산과 지리산과 마이산에 다녀왔다는데 한국말은 내 일본말과 똑같은 수준이었다. ‘어써어세여!’ 이 말만은 학실히(?) 했다. 그리고 등산객들로 북적거렸다는 것은 어제 예약하면서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 집에 사람들이 산다는 것이 적이 안심이 되었다. 일행이 비옷을 벗는 동안 1인당9500円을 내고 3층의 키를 받고 식사 시간이 저녁도 아침도 7시까지라는 것, 식당의 위치, 화장실, 온천이용은 무료라는 것을 알아들었다. 젖은 신발과 비옷과 우산을 모아 카운터 옆 건조실에 걸었다. 전기난로가 이글거리고 있었다.

 

8인실이라고 적힌 방은 매우 직선적으로 설계되어 있었지만 웬 떡이냐? 침구도 있고 베개도 있고 옷걸이도 있었다. 벗을 것은 모두 벗고 젖은 것은 모두 걸고 노숙경험이 가르쳐주어 꼭 챙겼던 신문을 펴서 통로에 깔았다. 습기를 말리는 데는 이것보다 좋은 것이 없다. 그러고 보니 배낭에 알뜰한 부인들이 마련한 맥주에 내가 무로도에서 산 1800엔짜리 니혼슈 한병!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비를 맞아서 그런지 집사람이 좀 정신이 들었다.

 

바닥을 치면 山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은 人之常情이다. 식당에서의 저녁은 훌륭했다. 칠기찬합에 고루 반찬이 놓여 있고 국과 밥만 떠오면 되었다. 창틀이 유화의 액자가 된 비에 젖은 산은 장엄했다.

 

맥주는 카운터에도 토방에도 또 식당에도 무진장 냉장되어 있었고 산이나 들이나 값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맥주를 한 잔 들이키고 방으로 돌아오자 부인네들이 춥다고 한다. 그러면 온천탕에 다녀오라고 했다. 우리는 니혼슈를 한 잔 더 마셨다. 김을 모락모락 피우며 돌아온 부인들은 더 이상 춥지 않다고 했다. 우리도 山을 바라보며 더운물에 몸을 맡겼다. 더위를 무지하게 타고 온천은 더 싫어하는 李선생도 탕에서 나올 줄을 모른다. 물은 끊임없이 넘쳐나고 산은 가까이 오고...

 

카운터에서 몇 번 날씨를 물었다. TV는 없다. 신문에 내일 저 아래는 맑다고 한다.

‘山에서는 날씨를 알 수 없다’

그것이 이 사람의 답이었는데 이때 그의 銜字가 小竹淸文[こたけ きよふみ]이라는 것과 한국의 여러 山에 올라보았다는 것을 알았었다.

한국인이 여기 많이 찾아오고 그의 신세를 지는 것 같았다.

 

집사람은

‘내일 늦잠 좀 늦게 출발하면 안돼요?’

그러자고 했다.

술이 남았는데 李선생이 한번 눕더니 일어나지 않는다.

 

별 : 나도 잠이 들었다. 그리고 일찍 깨었다. 이런 경우 공동화장실과 목욕탕은 일찍 사용하는 것이 서로에게 좋다. 까치걸음으로 내려갔더니 목욕탕에 아무도 없다. 그리고 창에 별이 붙어 있었다.

‘Seize the star!’

맞는지 모르지만 퀴리부인이 폴란드에서 망명하여 파리의 겨울밤 벌어진 기왓장 틈으로 별을 바라보며 향수를 달랬다는 그 별이 - 그리고 정지용의 별이...

온천물에 적신 손으로 그 별을 훔쳐보았다.

밖으로 나와 북두칠성을 찾아보았다. 구름장들이 이불빨래처럼 너울거리는 사이로 별은 너무 가까이 있었다.

 

더듬더듬 제자리로 돌아와 깊은 잠에 빠졌는데 잠 못 이루던 어떤 사람이 그 어둠속에서 어떻게 알아보았는지 그때가 새벽 1시였다고 한다. 三更의 온천욕...

‘銀漢이 三更인제...多情도 病인양 하여 잠 못 이뤄’ 했던 것일까? ’

<계속: 다음은 구로베 댐의 무지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