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모음

이세기 시인과

양효성 2009. 11. 15. 09:44

그 숲

 

아가 아가 그 숲에 가지마라

鬼神의 울음 무섭지 않니?

아가! 아가! 그 숲에 가지 마라!

 

뻐꾸기가 우는 거예요?!

귀신이 아니에요!

 

여우울음소리야! 호랑이야!

가지마라! 가지마라!

 

토끼가 우는 거예요!

약방아 찧는 토끼가 어젯밤 달에서 내려왔어요.

 

토끼는 벙어리야.

울 리가 없지...

토끼는 저 멀리 별나라로 갔단다.

달에는 이제 토끼가 없단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숲에는 꽃잎들 춤추고 풀숲에 별님들이 숨바꼭질해요.

 

아! 정말 철이 없구나!

날리는 건 가랑잎 - 채이는 건 풀이슬.

 

아니야! 아니야!

아니긴! 아니긴!

소나기 퍼붓고 불벼락도 보았느냐?

아니야! 아니야!

별똥별 떨어지고 불꽃놀이 하는 거야.

너 정말 할애비를 믿어라!

네 애비도 저 숲에서 돌아오지 않는다.

이미 벌써 석삼년을...

 

그럼 왜 할배는 매일 아침 숲에 가는 거야?!

.............

저 숲은 鬼神의 숲

祭지내러 가는 거야...

저 숲은 禁忌의 숲

그 祠堂에 가는 거야!

 

.............................

 

할배가 죽거들랑 그 숲에 가렴...

 

..............................

2009.11.

 

 

지난 금요일엔 이세기 시인의 서재에 갔다. 바빌론의 탑같은 서재에는 시가 있었다. 발코니에서 도시의 불빛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등대를 쫓고 있는 것 같았다. 초겨울 밤바람속에서도 그는 고향의 소금냄새를 가려 마시는 것 같았다. 인주옥에서 병어조림과 두부부침을 먹고 거리의 미술 이진우화백도 만났다. 그가 전시하는 그림에는 노인들의 어린시절이 있었다. 우리는 집으로 돌아와 밤새 詩를 읽고 놀았다. 집에 사람 사는 것 같았다. 李世起 시인은 단숨에 쓰고, 쓴 詩는 고치지 않는다고 한다. 엄기수 형은 말이 없었는데 많은 말을 품고 있는듯했다. 김지환 기자는 싱글거리고 있었다. 집사람은 과일만 깎고 이번에는 밥을 차리지 않았다. 여행을 떠나는 사람은 누구나 느낌이 있는 삶의 모습을 그리워한다. 이세기 시인의 시를 읽으면 한 개의 섬이 계절과 냄새와 맛을 풍기며 동영상으로 다가온다. 토요일에도 김장을 하면서 ‘먹염의 바다’를 읽었다. 아파트 29층에서 마치 섬에 떠있는 것 같았다. 게도 잡고 물고기도 보고 바다바람을 쐬는 것 같았다. 그 섬이 멀리 느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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