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군 안국사지의 高麗 석조삼존불입상
大木匠이 살 집의 上梁式이 있다고 T교수가 전화를 했다. 서산 인터체인지에서 마애불쪽으로 돌면 된다고...
부지런히 차를 몰았다.
明堂은 幽宅으로는 最適이나 살집으로는 煞이 끼어있다는 말에 매우 놀랐다. 따라서 이승의 집터와 저승의 집터가 다르다는 말인데... 길이 나서 망해버린 천석꾼의 집터를 교재 삼아 이 마을의 風水에 대해서 몇 가지 이야기를 들었다. 마을의 有志들이 모인 자리여서 상량식이 끝나고 술잔이 한 巡杯 돌고는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안국사터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글자가 몇 자 남았는데 판독이 어렵고...고려시대의 불상이 있고... 본당의 터[舊址]는 250미터쯤 뒤에... ’
얼핏 마애삼존불 뒤편의 普願寺 터가 아닌 가 했는데, 아니라고 한다.
백제의 삼존불도 이 동네에 있고, 또 고려의 삼존불도 여기 있다면 대를 이어 이 땅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어떤 계층의 어떤 사람들이 어떤 소망으로 이런 불상을 세우고자 했던가? 그리고 어떤 과정을 거쳐 폐사가 되었는가?
初伏의 여름 해가 이미 기우는 석양에 새마을 포장길을 어렵사리 돌아 절터에 내렸다. 석탑을 우러러 보며 불상 앞에 선다. 불상의 방갓은 어울리지 않게 커 보이지만 천년 동안 불상의 옥안을 풍우로부터 지킨 그 힘은 정말 대단하다. 더구나 어떻게 기울지도 갈라지지도 않고 그 이마에 얹혀있을까? 단순히 - 不均衡! 그렇게 말할 일은 아니다.
불상의 뒤에는 고래가 파도를 박차고 튀어오르듯 거대한 바위가 누워 있다. 여기 몇 자의 글자가 보이는데 용미리석불의 경우와 너무 흡사하다. 겨우 보이는 몇 자의 명문은 당대의 것인지 후대의 것인지 불분명한데 세월이 흐르며 여러 번 되새겨지거나 첨가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백과사전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충청남도 당진군 정미면 수당리 안국사지에 있는 고려시대의 석조삼존불입상은 보물 제100호로 본존불은 491㎝, 좌협시보살 355㎝, 우협시보살 170㎝.
정말 우러러 보이는 거대한 크기다.
현재 불상의 아랫부분과 대좌가 땅속에 묻혀 있어 전체적인 형태를 알 수 없으며, 특히 좌협시보살의 머리부분은 거의 파손되어 있다고 했는데 그대로다.
본존불은 거대한 불상으로 네모진 얼굴에는 가늘고 긴 눈과 납작한 코, 두툼하고 작은 입이 형식적으로 표현되어 있고, 원통형의 머리 위에는 4각형의 커다란 판석(板石)이 놓여 있다. 몸체는 좁은 어깨에 신체의 굴곡이나 법의(法衣)의 옷주름이 거의 생략되어 돌기둥 같은 형태이다. 두 팔은 몸에 붙인 채 지나치게 길고 빈약하게 표현되었으며, 조각기법 역시 치졸하고 평면적으로 처리되었다. 오른손은 가슴 위로 올리고 왼손은 배부분에 놓여 있는데 손가락의 표현이 분명하지 않아 정확한 손 모양을 알 수 없다.
이 삼존불상에 보이는 네모지고 납작한 얼굴 형태, 4각형의 보개(寶蓋), 밋밋한 원통형의 몸체 등은 고려시대의 괴산미륵리석불입상[보물96호]을 비롯하여 익산고도리석불입상[보물46호] 등과 같이 충청도지방에서 많이 나타나는 불상의 특징으로 지방토착적인 성격이 강하게 반영된 불상이라고 할 수 있다고 했는데 삽교 세심천 호텔 뒷산의 불상[禮山揷橋石造菩薩立像 보물508호]과 파주 용미리, 그리고 은진미륵 등 한 시대의 불상을 모아 놓고 고려청자를 배열하며 고려를 재구성해보는 것도 또한 흥미로울 것이다. <*>
탑에 새겨진 불상은 많이 마모되었다
왼쪽 협시보살은 반쯤 묻혀있고...
부처가 바라보고 있는 곳은...
부서진 연꽃과...
고래를 닮은 돌에는 몇 자의 명문이...
석양의 폐사에서...천년을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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