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맛집

삼도경계 서운산 雲下村 - 노부부의 도토리묵과 손두부

양효성 2010. 6. 8. 00:14

 

 

       삼도경계 서운산 雲下村

            - 노부부의 도토리묵과 손두부

 

 

스위스의 바젤은 비르스 강과 비제 강의 어귀에 라인 강을 끼고, 프랑스·독일·스위스의 세 나라 국경이 만나는 라인란트 입구에 있다. 원래는 켈트족인 라우라치 부족의 거주지였다는데 강가에 삼각형의 탑이 서있을 뿐 주변에는 아무 것도 없다. 이것이 국경표시라니 어이가 없다. 입국심사는 대개 버스나 기차에서 우리나라 검문소 지나듯 하니까..

 

57번 국도로 안성에서 남쪽으로 가다보면 ‘안녕히 가십시오! 안성!’ - 이런 표지가 나오는데 대략 이 부근이 충남 천안-충북 지천-경기 안성의 삼도가 만나는 지점이다. 그 포인트에 탑을 하나 세워도 기념이 될 것 같다.

 

서울에서 가자면 다리 건너 왼쪽에 바우덕이의 묘가 나온다. 민중배우 안성남사당패 바우덕이는 탁월한 능력으로 경복궁 중건에 동원되어 사기가 떨어진 노동자와 백성들에게 신명의 힘을 불어넣었다. 흥선대원군은 이의 보답으로 천민 집단 안성남사당패에 당상관 정삼품의 벼슬을 내려 주었다는데, 이것이 안성남사당패 영기(令旗)에 걸린 옥관자라는 것이다.

 

그 묘의 표지판을 지나 언덕으로 오르면 청룡저수지가 나오고 호수가의 커피숍과 보트를 타는 놀이손님들이 보인다. 계속 들어가 청룡사 주차장을 지나치면 서운산 등산로가 이어진다. 그 입구 길가에 ‘雲下村’ 이라는 작은 현판이 구름위에 걸려 있는데 비닐하우스가 있는 평범한 농가다. 내가 이 집을 찾는 이유는 동네 텃밭의 채소로 음식을 만드는 할머니 때문이다. 텃밭의 상추와 돌미나리-비닐하우스에서 직접 내리는 손두부, 아마 서운산에서 주웠을 도토리로 쑨 묵 - 메뉴는 간단하다. 왼쪽은 막걸리 등 술 - 오른쪽은 묵무침, 손두부, 버섯전... 술 한 잔을 기울이면 남색하늘의 흰구름처럼 느긋해진다.

 

무엇보다 개울에는 졸졸 맑은 물이 흐르는데 두 손으로 움킬 만하다. 잠시 내려가 세수를 하면 술 한 잔을 더 할 수 있다. 주인은 매우 섬세한 성격인 모양으로 주변에 돌을 쌓고 물을 흘리고 장난감 같은 인형이 씨이소오를 타고 또 태극기도 흔든다. 비닐하우스에는 앙증맞은 선인장이 자라고 있다. 아이들은 신기하다. 물위를 지나는 계곡의 바람은 시원하다. 할아버지는 연로하시고 등산객들로 붐비는 주말에 손님으로 붐비면 나는 야해를 구하고 선불을 하고 셀프서비스로 우선 목을 축이기도 한다. 시골집에 돌아온 편안함! 그것을 이 구름마을에서 나는 느낀다.

 

 

개울옆 입구 나뭇가지에 '운하촌'이라는 현액이 있고 이 길을 따라 들어오면 주차할 수도 있다.

오른쪽이 등산로 초입 

 

손님은 대부분 등산객...

 

이 정도면 둘이서 요기를 하고...

 

채소는 저 밭에서...

 

아이들은 이 폭포가 신기하다

 

 

두부는 이 간단한 솥에서 끓여진다. 

 

비닐 식물원

 

흐르는 물은 산에서 내려와 첫번째 집을 만나 맑다.

 

 

     운하촌 : 전화 032-672-9757 / HP 010-3293-9091

                안성시서운면청룡리32번지 - 청룡사 주차장에서 직진 약 200미터 - 등산로 입구

 

  여러 블러그에는 서운산을 잘 소개하고 있다. 무엇보다 등산로가 숲으로 그늘이 되어 관악산처럼 태양을 머리에 이고 돌길을 걷지 않아도 되는 것이 이 산의 미덕이라는데 나는 아직 한걸음도 그 산에 발을 떼지 못했다. 장차 이 부근에 살려고 하는데 그때는 당연히 그 산에도 오르려고 한다. 빌려온 글을 잠시 요약해둔다.

 

서운산(547m)은 경기도와 충북의 도계를 이루는 산이라는 것은 앞서 말했지만 숲이 우거지고 경기평야치고는 높이가 있어 등산객이 끊이지 않는다. 서쪽 능선에서 남쪽으로 해발 535m에서 460m 지점까지 반면식 토축산성인 서운산성이 남아 있는데 임진왜란 때에 홍계남이 수축하여 방어전을 전개했다고 한다. 청룡사는 고려 24대 원종 6년(1265년)에 명본국사가 지어 대장암이라 하였으며 그 후 고려 공민왕 13년(1364년) 나옹화상이 다시 크게 중창하여 청룡사로 고쳐 부르게 되었는데 나옹화상이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청룡을 보았다는 것이 그 연유다.

1900년대부터 등장한 남사당패의 근거지로 건너편에는 아직도 남사당 마을이 남아 있다고 한다.

 

또 서운산 동북쪽 기슭의 석남사는 문무왕 20년(680년)에 고승 석선이 창건했다는데 임진왜란 때 불타 영조 때 해원선사가 중수했다는데 등산로를 따라 300m쯤 올라가면 높이 6m,폭 8m의 바위면에 5m가 넘는 마애여래불상(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09호)도 볼 수 있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