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상해에 다녀와서
* 글쓴이 김유현은 미혼으로 H대학에 출강하면서 논문을 준비하는 등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편집자 주>
중국 상해를 처음 방문하였다. 베이징을 2번 방문한 적은 있었지만, 중국이라는 나라는 누구라도 알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방대한 땅을 가지고 있으므로 전혀 다른 곳이라는 것을 예상하였었다. 방문의 목적은 중국의 업체와 근무하고 있는 회사와의 기술협상을 하기 위해서 현재 호서대학교 대학원에 재학 중인 중국인 유학생과 함께 방문하였다. 따라서 카메라도 챙기지 못할 정도로 중국에서의 기술협상에 모든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기 때문에 외국방문이라는 젊은 청춘의 기대감은 미션수행이라는 무거운 짐에 눌려져 있었다.
방문 일정은 다음과 같았다.
2010년
3월 17일 10시 출국 ~ 중국 도착 후 17시 까지 China Flat Panel Display 학회 및 박람회 참석 및 논문발표 ( 上海 新國際 博覽 中心 ), 식사 후 호텔 투숙
3월 18일 호텔 내에서 미팅 준비
3월 19일 미팅
3월 20일 자유시간 ( 19일, 20일 모두 미팅일정으로 계획. 20일 미팅일정 취소 )
3월 21일 오후 12시 중국 출국
전시장에서 후배
3월 20일 자유시간 : 3월 20일의 계획되었던 미팅의 취소로 어쩔 수 없이 상해에서 1박하게 되었다. 비행기표를 예매하고 며칠 뒤 받은 통보로 자유 시간으로 상해의 주변 도시인 蘇州에 있는 拙政園을 방문하였다. 이러한 넉넉한 일정( 이번 중국방문에 대해서는 오직 1번째는 회사일의 수행이었고 그 후 회사로의 특이사항 보고 등 모든 공적인 일정이 무사히 마무리 되었을 때 자유 시간을 가지기로 계획하였기 때문에 무리한 일정을 계획하지 않았음)으로 중국 출장을 다녀오고 몇 가지 느낀 점을 한국을 돌아와 다시 되새김질하여 본다.
세계의 중심은 중국이 아니다. 중국의 중심에 세계가 있다.
도착한 상해의 모습은 이미 선진화가 되어 있었다. 정돈된 건물들, 깨끗한 인도와 도로 등 모든 것이 서구 선진화된 도시와 마찬가지로 세련됨을 발산하고 있었다. 호텔에서 짐을 푼 뒤 상해 신국제 박람 중심( 上海 新國際 博覽 中心 )에서 진행되었던 China Flat Panel Display 학회와 반도체, 디스플레이, 태양전지 관련 박람회를 참석하였다. 개인적으로 학회에 제출된 논문 발표도 있었지만, 후배들에게 발표를 양보하고 내일 모래 있을 업체와의 미팅 전에 이 업체가 어떤 기술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제품을 생산하는지 등 전시된 제품을 통해서 알아보고 정리하였다. 그 후 박람회의 종료까지 2시간 정도 남아 필요한 제품 및 기술이 전시되어 있는지 박람회장을 둘러보기로 하였다. 물론 2시간가량 박람회장을 둘러본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었지만 당초 목표가 박람회 참석이 아니었기 때문에 중국 내의 산업( 실제로 그 나라의 산업은 당연히 어떠한 기업이 자리 잡고 있느냐가 관건이며, 박람회는 이러한 업체들 간의 상호 교류의 장으로서 그 나라의 산업 수준과 주력기술이 무엇인지를 추측할 수 있게 한다.)의 현황을 어린 기술학도로서 견학하는 마음으로 참석 하였다.
처음으로 느낀 점은 역시 중국은 스케일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도 킨텍스, 코엑스 등 전국에 5개 정도의 국제박람회 규모의 박람회장을 가지고 있지만 이곳은 박람회장이기보다는 규모가 작은 국제공항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어리석은 연속적인 생각으로 “중국 내 인구가 많기 때문에 그 만큼 중국 기업들이 많을 것이고 이러한 기업들의 박람회 참여를 위하여 박람회장도 크게 건설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라는 우둔한 생각을 가졌다.
그러한 낡은 생각 속에서 넓은 박람회장을 시간 내에 빠른 속도로 둘러보며 받게 된 충격은 4박 5일간 중국에 머물며 혀를 내두르는 습관을 가지게 하였다. mks, centrotherm 등 반도체 관련 진공, 증착, 측정, 설계 등 각 분야에서 1등 2등을 다투는 다국적 기업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대학원을 진학하고 6년 째 박람회장을 견학한 경험 중에서 처음이다. 그 뿐만 아니라 소형 부품 및 작은 센서를 만드는 업체까지도 일반기업이 아닌 초일류기술집약적 소형 기업까지 참석한 것을 보면 이곳은 정말 반도체에 관련된 모든 핵심 산업이 집약된 박람회임이 분명 하였다.
필자는 반도체 관련 산업에 전문적으로 회사에서 4년간 근무를 하면서 여러 가지 힘든 경험을 하였는데, 그 중에 대표적으로 겪고 있는 애로 사항은 어떠한 제품을 만들 때 한 회사에서 모든 부품을 공급 받지 못하므로 원하는 부품이 어떤 특정 회사에 한정되거나 또한 똑같은 부품의 특성이 특정회사의 제품이 他회사의 제품에 비하여 월등히 높을 때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팔기 싫으면 안 팔면 된다. 여기 아니라도 팔데 많다. 물건이 없어서 팔지 못한다. 주문량이 한정되어 있다.” 등 정말 빌어서 사야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곳 上海 新國際 博覽 中心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이 세계의 모든 大小의 일류기업들이 “물건 좀 써주세요.”라고 장에서 물건을 파는 것이 부럽고 탐나기까지 하였다. 만약 이것이 여행 사업이었다면 “중국인들은 여권을 만들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세계의 중심은 중국이 아니다. 중국의 중심에 세계가 있다. 어떠한 매력으로 전 세계는 중국의 중심으로 들어오고 싶어 하는 것일까? 분명한 것이 중국의 중심에 이렇게 세계가 집중된다는 것은 또 다른 세계가 형성되는 것임이 분명한 이야기이다. 체내에 들어오기 전의 음식의 성분과 소화가 되고 난 후의 음식은 화학적인 반응으로 그 성질이 완전히 다르다. 그리고 몸의 상태에 따라서 선택하여야할 음식은 변화하며, 더 맛있고 영양가가 좋은 음식을 찾게 된다. 분명 기술도 중국의 needs에 따라서 그 판도가 결정될 것이다. 그보다도 무서운 것은 그러한 기술들과 기업들이 중국내에 흡수되어 어떠한 새로운 기술과 기업이 창출되고 이러한 기술과 기업이 세계를 어떻게 변화시킬지를 생각하면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비효과라고 했던가? 나비가 날개짓을 하면 어떠한 곳에는 태품이 분다고.. 과연 나는 이렇게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무엇을 하여야할지 아니 어떻게 살아남아야할지 과연 대한민국은 어떠한 방향으로 향해야할지 나는 이 급변하는 시대에서 어떤 노력으로 사회에 실질적인 기여 할지 내 머릿속의 생각은 점점 증폭되어만 간다.
전시장에 길게 늘어선 줄- 13억 인구를 실감한다.
중국의 기차는 길다 - 생활은 準備와 忍耐다.
2010년 3월 20일 공적인 일을 마치고 자유 시간을 가졌다. 도시에서의 생활에 머리도 식힐 겸 “자유 시간은 조용하고 경치 좋은 곳에서 보내자!”란 생각으로 선택한 곳은 蘇州의 拙政園. 중국 방문의 목적은 여행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곳이 어떤 곳이고 어떻게 만들어 졌는지는 솔직히 잘 모른다. 분명한 것은 마음먹고 기차를 타기로 한 것이었다.
정신을 못차렸는지 또 한번 어리석은 마음에 기차표를 예매하지도 않고 창구에서 바로 구매하였다.(중국어를 전혀 못하는 관계로 기술협의에서 중국어 통역을 하여 줄 중국인 유학생-孟梅와 같이 동행하였다.) 당일은 토요일이었다. 기차 출발은 12시 15분. 1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아침을 먹지 않아서인지 출출하여 기차를 기다리는 시간에 점심(샤브샤브)을 먹었다. 고급 호텔 음식점이라 서빙 직원들은 정말 친절하였고, 음식은 일본에서 먹은 음식보다 훨씬 정갈하였으며, 맛 또한 어느 나라 어느 음식에 젼혀 뒤지지 않을 정도로 맛있었다. 중간 기차 출발 25분전 孟梅는 기차를 타야한다고 이야기 하였지만 이 맛있는 향연을 중간에 놓치기가 싫어 기차 출발시간 10분전에 음식점 떠나기로 하고 정신없이 점심을 즐겼다. 아뿔사! 상해역! 승차권 창구와 기차 탑승 장소가 이렇게 멀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500mm 쯤을 뛰었을까? 아니 1km를 뛰었을 것이다. 탑승시간 3분을 남겨 놓았지만 승차 장소에 들어서기 전 승무원은 출입을 제제하였다. 기차는 10분 연착이 되었어도..
승차권을 환불하고 2시간 뒤 출발하는 다음 승차권을 구매하였다. 졸정원의 관람시간(오후5시)을 생각하면 호텔로 돌아갈 마음도 있었지만 오기가 받쳐 “졸정원의 입구라도 구경하겠다.”는 생각으로 1시간은 피곤에 지친 중국인들과 마찬가지로 의자에 누워 잠을 청하고 1시간은 역내를 돌아다니며 중국의 역은 어떤지 둘러보았다. 그중에서 기억에 남는 머릿속의 사진이 있다면 숨 가쁘게 돌아가는 대도심지의 기차역에서 드문드문 아이를 품에 안은 엄마들을 볼 수 있었다. 디지털화 된 회식 도심지에서의 아이를 끌어안은 부모의 모습과 그 표정은 참으로 뭐라 표현할 수 없는 마음속의 흐뭇함을 안겨 주었는데, 언제부턴가 한국은 그리 좁은 나라에서 가솔린 자동차의 대량 보급으로 아이를 안은 부모의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순간 메마른 마음이 들도록 하였다.
승차한 기차는 한국의 새마을호보다 그 내관이 훨씬 깔끔하였으며 광활한 중국땅을 달려야하는 이유 때문인지 속도 또한 160km/h 이상으로 달렸다.(상해와 소주의 거리는 대략 서울과 대전 정도의 거리로 추정된다. 약 50분 소요) 蘇州驛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내 머릿속은 혼란스러워 졌으며, 내 입가의 미소와 마음은 각각 눈 내리는 겨울을 처음 보는 아이처럼 설레 이게 하였다. 중국, 사람 정말 많다. 말로만 13억인가? 15억인가? 대한민국 인구의 거의 30배에 달하는 인구를 순간이나마 체험할 수 있는 기회였다. 상해역에서 느끼지 못하였지만( 운좋게 탑승구와 탑승차의 거리가 짧았었다.) 기차의 길이가 상상을 초월하였다. 기차에서 내린 후 蘇州驛의 출구로 나오는 시간이 걸어서 20분 정도 걸렸을까? 蘇州도 도시기는 하지만 중국내에 이러한 도시는 많을 것이고 蘇州驛 정도의 규모를 가진 역들이 많다는 것을 생각하니 끔찍한 생각이 들었다. 또한 사람은 어찌나 많은지 어렸을 적 부모님과 형과 함께 추석이나 설날에 버스를 타고 시골집으로 향하는 느낌과 거의 흡사( 본인의 어린 시절 부모님께서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할머니․할아버지 댁으로 명절을 지내러 갔는데, 인천 터미널에서 수원 터미널로 수원터미널에서 원주터미널로 그리고 평창터미널로 버스를 갈아타며 10시간 이상 어마어마한 인파에 휘말려 하루 종일 힘들게 이동하였던 기억이 생생하다.)였다. 단지 토요일일 뿐인데 정말 명절이면 어느 정도로 번잡할지 전혀 예측을 할 수 없게 한다. 蘇州驛에 비하면 천안역은 버스정류장 정도라고 생각하니 헛웃음이 저절로 나왔고 사실 서울역이 건물이 높아서 그렇지 넓이로만 본다면 아마 蘇州驛보다도 작을 것이다.
拙政園을 다녀오면서 광관지나 사람이 많이 모이는 역에서 꽃샘추위를 뚫고 나오는 싹처럼 강하게 사는 중국인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拙政園의 입장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미리 돌아갈 차표를 예매하지 않은 것이 화근이며, 지금까지도 중국인에 대한 강한 이미지가 뇌리 속에 생생하게 박힌 원인을 제공하였다. 拙政園을 관람하고 蘇州驛에 다시 돌아온 시간은 오후 5시 30분 蘇州驛으로 도착하였을 상황을 생각하였을 때, “뭐 1시간만 기다리면 되겠지?”라는 우둔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예매를 할 때에 기차의 출발시각은 8시 20분. 한국에서는 정말 오지를 가지 않는 이상 상상할 수도 없는 기다림이었다. 서울에서 대전까지 기차의 간격이 거의 3시간임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억울할 일이었으며, 꼭 벌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5분 정도 골똘히 생각을 하다가 앉을 곳을 찾고 주위를 둘러보니 머릿속에 딱하고 생각나는 문장은 “물 반, 고기 반이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는 땅 반, 사람 반이다.”이었다. 엄청난 인파였다. 어느 곳 하나 앉을 곳이 없을 정도로 그렇게나 넓은 蘇州驛이 사람으로 도배가 된 것을 보니 머리가 어지러워 졌다. 자포자기의 심정? 다른 버스 터미널 등 방법을 모색하여 보아도 어디를 가도 이렇게 사람이 많이 있을 것을 예상하면 도저히 자리를 움직일 수가 없었다. 오직 이 자리를 지키고 받은 기차표를 가지고 되돌아가는 것만이 최고의 상황이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2시간이라는 시간을 기다려야한다는 것. 마땅히 갈 곳도 없었고 식사를 할 곳도 없었다.( 역에 있는 KFC만 보더라도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는 상황은 고사하고 화장실도 들어가지 못할 정도였다. ) 준비한 책을 읽거나 오직 같이 동행한 孟梅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오직 최고의 기다림의 즐거움이었다. 그렇게 기다리다 보니 모든 사람들도 나와 孟梅와 같이 이야기의 연속이었다. 한국 사람들은 중국인에 대한 대표적인 생각 중 하나는 “중국인들은 시끄럽다.”는 것인데 반대로 이렇게 중국인의 생활을 조금 경험하고 보니 ‘시끄럽다’라기 보다는 그 나라의 문화로 받아 들여 졌다. 오히려 사람과 사람간의 대화는 또 다른 생각을 만들 수 있으며 서로간의 이해의 시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니 묘한 느낌이 들었다.
기차 시각은 가까워 오고 기차를 타기 위하여 역에 들어갔을 때는 기차역과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의 인파가 있었다. 孟梅는 본인이 매고 있던 가방을 자신의 가슴으로 옮겨 두 팔로 꼭 껴안았다. 기차 플랫폼으로 들어가는 출입구 아직 표확인이 되지 않았음에도 사람들의 압박에 내 두발은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어영부영하다가 가차를 놓치게 되었을 때 다음 기차나 하루를 이곳에서 보내야 할 생각을 하니 어떻게든 플랫폼으로 나가 꼭 기차를 타야만하는 상황이었다. 이니 꼭 반드시 그래야만 하였다. 그렇게 표확인이 시작되고 밀려드는 인간의 파도에 내 몸은 주변에 가해지는 벡터의 합에 의하여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였다. 어떻게든 안간힘들 썼고 다행히 플랫폼으로 갈 수 있었다. 그 때 한 노랑머리를 가진 외국인의 외침이 아직까지 귓속에 생생하다. “It like a football game!" 정말 이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돌아오는 기차역에서 곰곰이 오늘 있었던 중국에서의 기차여행을 생각을 하여보니 중국인의 삶에서 순간의 방심은 그대로 나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기차역에서 순간 딴 생각을 하였을 때 무슨 일이 생길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가 없다! 사람이 많다는 것은 정말 예측하기 힘든 상활을 만드는 듯하다. 그만큼 철저한 準備와 忍耐는 그들의 생활필수품 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의 기차가 긴 이유는 그 만큼 많은 사람이 타는 이유도 있으며, 역과 개표구와의 간격이 너무나도 길고 기차의 배차시간이 짧으면 그만큼의 인구가 통제가 안 되기 때문인 것으로 예상될 때, 중국은 疑心의 나라이기 전에 統制의 선진국임을 예측할 수 있었다.
이러한 느낌들을 하나하나 얻어가면서 孟梅에게 개인적인 질문하나씩을 던졌다. “너 내가 기차타고 蘇州 가자고 할 때 싫었지?”, “너 왜 나한테 미리 이야기 안했니?”...
양자강의 유람선 - 막 푸동 개발구앞을 지나고 있다.
蘇州에도 拙政園이 있고, 푸동에도 졸정원이 있다.
蘇州 拙政園은 정말 물과 나무와 돌 그리고 건축의 조화가 서로 잘 어울리는 멋진 곳이었다. 4년 전 자금성과 이화원을 다녀오고 그 규모와 기술, 예술에 충격을 받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拙政園은 한 곳에 서서 360〫〫〫〫도를 돌았을 때에 각각의 화폭의 조화와 반전이 완전히 새로웠다. 본인은 예술이나 건축 문학을 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아름답고 시적인 표현을 하지 못하지만 머릿속에는 짙은 초록 위에 푸른색 아래는 짙은 회색의 자연과 인간의 기교가 서로 엉겨서 무언가 안락함을 주는 느낌 이었다.
상해로 돌아오는 길에 몇 일전 중국 업체 사람들과 푸동에서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잠시 들린 푸동의 건물들이 떠올랐다. 최첨단 서양 같으면서도 웬지 서양 같지 않고 동양적인 느낌이 드는 건물들, 걷고 달리면서 바라보는 각도마다 서로 다른 형상과 느낌을 주는 건물들, 건물의 사이사이 중간 앞뒤의 건물들 간의 조화와 형상들에 느껴지는 마음은 서양에서 볼 수 없는 묘한 매력과 운치, 멋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蘇州에만 拙政園이 있는 것이 아니다. 푸동에도 拙政園이 있다. 단, 蘇州의 拙政園은 당시 왕헌신이 조정을 조롱하기 위해서 지어진 정원이라고 하면, 상해의 푸동은 세계를 상대로 중국이 세계의 첨단도시를 상대로 조롱?을 하기 위하여 세워진 특구라고 생각된다. 무엇보다 무서운 것은 중국이 가진 기술이다. 拙政園을 만들 수 있는 기술과 역사가 있는 나라. 서양으로부터 신기술을 받아들여 그것을 푸동과 같이 5000년의 철학과 역사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나가는 중국은 참으로 놀랍다. 이러한 생각을 하며 정말 내가 할 수 있고 앞으로 어떠한 일들을 하여야 할지 이번 상해를 방문하며 받은 충격 또한 나를 당분간 아프게 할 것 같다.<*>
上海에는 밤에도 선인장처럼 고층 빌딩이 자라고 있다<푸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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