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재발견

할아버지의 편지 - 버스를 빨리 타려다

양효성 2010. 3. 21. 23:53

 

               할아버지의 편지

                                         - 버스를 빨리 타려다

 

 

2009년 봄 북경에서 한국어를 한 달 가르친 일이 있었다. 북경은 추웠다. 팔달령 만리장성 밖의 황량한 벌판에 세워진 대학은 용경협과 몽고에서 불어오는 밤바람과 황사로 더욱 추웠고 이런 겨울은 몽고의 파오에서 양털이불을 둘러쓰고 ‘蒙古王[59度가 넘는 白酒]’를 마시며 늑대의 울음소리를 들으면 오히려 나을까? 시멘트집에서 지내는 것은 오히려 문명의 퇴보였다.

상윤이도 어느 여름날 피서삼아 이 용경협과 강서초원에서 말을 탔지만 겨울의 이런 고통은 모를 것이다.

 

그날 저녁 신문에는 만리장성 구경을 하고 돌아가는 버스를 타려고 지름길을 찾아 하산하던 젊은이들이 울타리를 잘못 넘는 바람에 호랑이에게 물려 죽은 일이 보도되었다. ‘동물왕국’을 만들어 돈을 벌려던 호랑이굴로 뛰어들어 虎患을 만난 것이다. 그리고 시골에서 북경구경을 하려던 전날 밤의 꿈은 그 젊은 나이의 청년을 불귀의 객으로 만들었다.

 

그보다 앞서 서울 대공원에서 고등학생들이 대낮에 소주를 마시고는 호랑이가 정말로 사람을 잡아먹는지 철책을 기어 올라가 내기를 하다가 불귀의 객이 된 일이 있었다. ‘내기를 하다가...’ 이것은 사실이다. 박지원의 ‘虎叱’이 아니다.

 

인생 도처에 위험은 도사리고 있다. 狐假虎威라는 말이 있었는데. 요즘은 오토바이의 위세를 빌려 폭주를 하다가 저도 죽고 남도 죽이는 신종 虎患이 더 무서운 시대가 되었다. 하느님의 입장에서는 중생이 이승에 있으나 저승에 있으나 마찬가지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의 입장에서는 육도를 윤회하여 다시 인간으로 환생하기에는 너무 막연한 일이다. 그래서 아침 이슬같이 짧은 인생을 헛되이 살지 말라고 싣달타는 가르쳤다.

 

忠告라는 글자는 마음의 가운데를 지키고 - 즉 객관을 중시하고, 목숨을 걸고[소 -犧牲]아뢰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衷言이라는 말도 가슴을 열어젖히고 - 즉 발가벗고 露骨的으로 直言하는 느낌이 있다. 베토벤의 하일리겐슈타트의 遺書를 읽어보면 그런 절박한 심정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만큼 목숨을 걸고 듣기 싫은 것이 또한 충고다. 특히 젊은 날에는 그런 법이어서...

‘너! 또 술 처먹고 노래방에 가는 거냐? 이 집안 말아먹을 놈아!’

이렇게 소리치면 야구방망이를 들고 나오는 패륜아가 있는 법이어서...

‘公子께서는 어디로 行次하시려는지요?’

이렇게 점잖게 묻는 법도가 있었다. 그러면 李夢龍 도령께서는

‘小子 廣漢樓에서 하늘을 우러르고 宇宙의 攝理를 觀한즉 그 道理를 論하는 체험학습 현장에서 세미나를 하고자 하나이다.’

하면서 자율학습을 빼먹곤 하였다. 그래서 이 작가는 南原의 ‘梁某’였던 것 같은데 板木에서 그 이름을 칼로 깎아버리고 학교에서는 禁書로 규제했던 것 같다.

 

眞珠는 돼지우리에서도 빛을 발하고 그 빛이 영원불멸하지만 인간은 카멜레온을 닮아 검뎅이를 만나면 검게 되고 빨갱이를 만나면 빨갛게 되는 법이어서 ‘近墨者黑’이라는 말도 유행하였다.

 

S야!

습관은 환경이 만든다. 습관의 나쁜 점은 반복된다는 것, 그리고 잠복기가 있다는 것이다. 지금 이 세상은 도를 넘는 소음의 노래와 일그러진 도시의 그림과 뒤틀린 詩의 통곡으로 일그러져 있다. 그러니 순진한 마음이 스폰지처럼 얼마나 빨리 그 公害를 빨아들이겠느냐? 벌써 3월이 가고 두 달은 화살처럼 지나간다. 잘 하다가 하루 잘못하면 돌이킬 수 없는 奈落으로 빨려 들어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날 꼭 해야 할 일 한 가지는 꼭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잘 알 것이다.

 

3월19일 오랜만에 아벨서점에 들렀다. 요즘은 책을 사지 않고 내다 파는 것이 일인데 오히려 몇 권의 책을 골랐다.

열화당에서 낸 ‘경기도 도당굿’은 1982년3월25일 동춘동 동막에서 있었던 굿을 사진으로 기록한 것인데 아마 네가 태어나기도 전이겠지. 그곳은 이미 네가 살고 있는 아파트가 되어버렸으니 기록의 중요함을 새삼 실감하겠다.

경희대학교 민속학연구소에서 펴낸 ‘韓國의 民俗 3(1986)이라는 논문집에는 ‘近代化에 따른 歲時風俗의 變化(金明子)’, ‘德積群島의 通過祭儀(金俊基)’ 등 여러 논문이 실려 있는데 모두 흥미롭구나.

국립민속박물관에서 펴낸 ‘民俗學硏究(2007)에는 ‘경기도 남부 도당굿화랭이-미지의 계보와 의미(김헌선-시지은)’, ‘경상북도의 마을신앙의례 분포와 문화권역(이기태)’ 등등이 실려 있다.

이런 논문집의 제목을 훑어보다 지난번 북경에서 사온 민족대학의 ‘中央民族學院 學報(1985)를 서가에서 뽑아 보았다. 이 책에는 ‘晩唐著名朝鮮詩人崔致遠(金東勛)’ 등이 실려 있다.

아울러 ‘청계천을 떠나며(이웅선)은 배다리를 생각하며, 인천을 위해 인천이야기 100장면(조우성), 인천의 하천 이야기(유중호 등) 등등도 함께 골랐다.

마지막으로 최창조 선생의 ‘북한 문화유적 답사기’를 사면서 ‘북한 민속학사(주강현)’도 골랐다. 네가 지금 공부하는 ‘민속학사’를 떠올리면서... 네가 1학기 공부를 열심히 하면 이런 책들은 방학 때 집에 와서 단숨에 볼 수 있을 것이다. 알다시피 이 책들은 거의 연속성이 있는데 그냥 토막토막 사보았다.

 

친구 사귀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친구란 함께 길을 걷는 사람이라는 이야기도 했다.

지금 떨어져 있어도 언젠가는 다시 만나는 것이 친구라는 것도 이야기 했다. 어떤 서양 할아버지가 대학이란 ‘고독한 자의 산보’라고 말했다.

할아버지의 이런 편지는 평생 한번 쓰는 것이다.

건강하여라!

 

                                                                      대학 입학 한 달이 다 되어가는 주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