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재발견

어린이날 - 부지깽이의 돌

양효성 2010. 4. 23. 18:30

 

 

                             어린이날 - 부지깽이의 돌

 

 

 

                                                  川元はま子 女史의

                                                  여자아이들의 祝日인 3월3일 히나마쯔리 그림엽서

 

 

올봄은 춥다. 그래도 벚꽃은 핀다. 추우나 더우나 아기들은 피어난다. 새싹처럼! 이 세상이 어두워도 아이들은 뱃속의 어두운 10개월을 한 순간에 울고 이내 방싯거린다. 마치 어둠을 밝힐 구세주가 태어난 듯!

그렇다. 네가 구세주가 아니면 구세주가 세상에 어디 있으랴?!

황돈이가 3월에 태어났다. 황돈이는 여자 아이다. 황돈이는 황금돼지 해에 태어나서 黃豚이다. 우리는 황돈이를 머시깽이라고 부른다.

‘머시깽이 왔나?’

그러면 달랑 안겨 신발을 벗겨 달라고 한다. 머시깽이는 따뜻하다. 머시깽이는 똥을 싸도 더럽지 않다.

‘왕건이요-오-!’

하고 조기살점을 떼어주면

‘왕건이요-오-!’

하고 날름 받아먹는다.

할아버지는 중국말을 조금 안다. 더러운 것을 빨고 있으면

‘뿌-싱[不行 : 안돼요! 라는 否定의 뜻]’

할아버지는 부지불식중에 소리를 지른다.

머시깽이는 눈치로 <하지 말라!>는 것을 알면서도 빤히 쳐다본다.

한 해 - 또 한 해 머시깽이가 자란다. 이제는 제법 고집도 부린다. 야단을 치면

‘할아버지가 뿌싱한다-’하면서 고집을 부린다.

 

머시깽이는 요즘 슬프다. 부지깽이가 태어나서 엄마를 빼앗아갔다. 할머니하고 있으면 그나마 위안이 된다. 주말이 되면 할머니한테 와서 할아버지에게 안기면 신발을 벗겨 주신다. 공원에서 비둘기를 쫓아다니다가 할머니의 동화를 들으며 잠든다.

‘할아버지는 머시깽이만 좋아해! 세상에서 머시깽이가 제일 예뻐!’

머시깽이는 외롭지 않다고 다짐하신다.

 

 

                                                                川元はま子 女史의 남자아이들의 祝日인 5월5일 그림엽서

 

 

집에 돌아가면 부지깽이가 내 장난감을 갖고 논다. 기기 시작하더니 내 머리칼을 쥐어뜯는다. 참! 부지깽이는 사내아이다. 나는 할아버지 방에 들어갈 때 항상 눈치를 보는데 부지깽이는 제멋대로 기어들어간다.

‘저게-어디라고 기어들어간담!’

나는 다리를 붙잡고 늘어지는데 할아버지는 책만 보고 계신다.

‘할아버지는 머시깽이만 좋아해!’

그 말을 언제까지 믿을 수 있을까?

어린이집에 다니면서 아기는 젖을 먹고 어린이는 밥을 먹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친구도 있는데 부지깽이는 친구가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올해는 병아리반에서 토끼반이 되어 2층이 우리 교실이다.

‘학교에 잘 다녀왔니?’

할아버지는 어린이집이라고 가르쳐드려도 맨날 - 맨날 학교라고 하신다. 왜 학교와 어린이집도 구별하시지 못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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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은 춥다는데 나는 감기가 들어도 춥지 않다. 벚꽃이 핀다. 나는 벚꽃에게 물어본다.

‘너는 몇 살?’

‘...........’

‘오늘은 며칠?’

‘...........’

 

나는 자꾸 조른다.

 

‘너는 몇 살?’

‘.....하루......’

‘오늘은 며칠?’

‘.....하루......’

‘맨날 하루래? 너 바보야?’

 

할아버지가 일본에 다녀오시면서 장난감을 사다주셨다. 건반을 누르면 ‘아-이-우-에-오’

소리가 나온다. 할아버지는 한자사전도 사주셨다. 중국에서 팬더도 사다주셨다. 할아버지는 모르는 것이 없다.

‘할아버지! 벚꽃은 왜 나이도 몰라?’

‘응! 그 꽃은 나이가 없어!’

‘왜? 나는 네 살인데-부지깽이는 한 살이구! 며칠인지도 몰라?’

‘그래! 날짜도 몰라!...오직 봄만 있을 뿐이지-’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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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봄의 벚꽃은 잿빛하늘을 배경으로 그래도 어두운 마음을 밝게 해준다.

                                                                                                                   <松島에서>...

 

 

일본에서 沫茶를 함께 마시던 부인은 화가였다. 우리집으로 손수 그린 카드를 보내왔다. 3월3일에 ‘히나마쓰리’라는 여자아이들을 위한 명절이 있다고 한다. 답장을 했더니 이번에는 사내아이 명절이 5월5일이라면서 또 카드를 보내왔다. 지금 벚나무가 아름답다면서...며느리가 한국말을 배워서 시어머니가 그림을 그리고 며느리가 편지를 쓰는 이 엽서는 아름답다. 내게 계집애와 사내 두 외손주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일까?

우리는 해가 저물면 ‘하루’가 지났다고 하는데 일본에서는 봄을 はる[하루]라고 한다. 왕벚꽃나무가 일본에 가서 繁盛했다고 한다.

 

5월4일은 부지깽이의 돌이고 5월5일은 어린이날이고 5월3일은 돌아가신 왕할머니의 生辰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