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2학년 50년 전의 日記에서...
어린이날이 막 지났다. 1954년은 6.25휴전 이듬해이다. 檀紀로 4287년이니 그 유명한 雙八년도[88]의 바로 전 해다. 그때도 초등학교에서는 수업이 진행되었는데 ‘찢어진 일기’에서 그 흔적을 찾아본다. 과거와 현재 지금 초등학교 2학년 학생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할아버지의 과거에 손자의 동심을 몽타주 해본다.
일기 원본과 선생님의 격려<부분>
5월 ?일-(페이지 손실)
..... 아침주례에 교장선생님께서 ‘방정환’ 선생님이 어린이날을 세우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옛날의 아이들은 천대받고 있었는데 방정환 선생님이 아이들을 높혀주고 5월 5일은 어린이날로 정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귀중한사람이 되었습니다. 이것도 방정환 선생님 덕택이니 우리들은 방정환 선생님 이름을 잊어버리지 맙시다.
주례가 끝난 다음 의논해서 쥐잡기 놀이를 하였습니다. 내가 원하던 굴렁쇠를 사주셨습니다. 어린이날 기념으로 사주신 것입니다.
5월 9일 일요일
우리동네 곤이삼촌은 기마대 대장입니다. 공일이면 끄덕끄덕 말타고 오십니다. 우리동네 아이들은 말앞으로 모입니다. 하루는 나를 보시고 “말 탈까?” 하시더니 그 커더란 말등에 번쩍 들어서 올려놓아 주셨습니다. 나는 무서워서 벌벌 떨었습니다. 한참뛰니 먼산이 올라갔다-(페이지 손실)
5월 ?일
-(페이지 손실) .....남기고 돌아가셨다.
학교에 가니 당번들은 부지런히 청소를 하고 있었고 아이들은 조용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자리를 바꾸고 용성이하고 맞절을 하게 되었습니다. 구령할 때 코속에서는 코가 들어있었는데 맞절이 생각나서 먼저 용성이가 나를 보고 웃었습니다. 나도 웃다가 드르륵하고 코가 나왔습니다. 아이들은 나를 보고 모두 웃었습니다. 선생님은 나를 보고 구령을 그만두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큰 실수를 하였습니다. 박남석이 한테 종이를 얻어서 코를 풀었습니다. 오후에 동완이 아저씨가 토마토 모종 가져와서 밭에 심었습니다. 벌써 꽃이 핀 것도 있었습니다. 여름방학 때쯤 빨갛게 익은 토마토를 뚝 따먹을 것을 생각하고 침을 꿀떡 삼켰습니다.
5월 11일 목요일
아침에 학교에 가서보니 벌써 양복 입은 사람, 한복 입은 사람들이 모여옵니다. 우리학교에서 국회의원 강연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조선 대학교 뒷산에 가자고 하셨습니다. 산에 올라가서 학교 운동장을 내려다보니 시장판 같이 모여서 강연을 듣고 있었습니다. 마이크 소리가 우리가 있는 데까지 들려왔습니다.
5월 12일 수요일
오늘 산보 갈 때 큰 공을 가지고 학교로 갔습니다. 학교에 가보니 수돗물이 좔좔 흐르고 있었습니다. 나는 세수하고 보니 공도 씻겨주고 싶었습니다. 나는 그 공을 가지고 차고 가슴에 안고 하다가 넥타이 셔츠에 흙이 묻었습니다. 어머니가 꼭 꾸중하실 것이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집에 오니 어머니가 꾸중을 않 하셨습니다.
막동이라 그러는가 봅니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녁에 호야를 사러 가게에 가는데 나 혼자 가도 안 무서웠습니다.
5월 14일 금요일
우리는 공부를 잘하는 어린이가 됩시다.
우리는 씩씩하고 참된 어린이가 됩시다.
우리는 참고 견디는 어린이가 됩시다.
부지런하고 동정심 많은 어린이가 됩시다.
남의 잘못을 말하지 맙시다.
이 약속을 00이는 항상 잊지 않고 잘 지킬 줄 압니다. 선생님도 어렸을 때, 푸른 남해바다 감도는 완도의 어느 섬에 살 때 이러한 약속을 정해 놓고, 약속대로 살아보려고 애 쓴 일이 있습니다.
착하고 참되고 아름답게 살기 위해서 항상 노력 합시다. 00이의 입술에서 이 노래(약속)가 그치지 않고, 00이의 마음에 태양이 빛날 때, 00이는 더욱 더욱 좋은 사람이 될 것입니다. -선생님
5월 17일 월요일
어제 저녁에 과자를 먹었더니 아침에 일어나니까 밥이 먹기 싫었습니다. 오후 학교에서 시험 칠 시간부터 배가 아프고 머리도 아파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나는 집에 와서 누웠습니다. 어머니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들여다보십니다. 어머니가 옆에 안계시면 머리가 더 아프고 어머니가 계시면 덜 아픈 것 같았습니다. 밤에 어머니는 내가 변소에 다니는데 따라다니시느라고 잠도 못자셨습니다.
참 고마우신 엄마-엄마 괴롭히지 않도록 합시다. -선생님
5월 18일 화요일
병원에 갔더니 약냄새가 코를 찌릅니다. 의사 선생님이 진찰을 하시더니 음식을 주의하라고 하셨습니다. 병원에는 아픈 사람들이 진찰을 하려고 많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시끄러워지더니 수레에 다친 아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들어왔습니다. 그 아이는 주사도 놓고 약도 발랐는데 침대 위에서 그냥 죽어버렸습니다.
그 아이는 여섯 살쯤 되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들 같이 학교도 못 다니고 죽은 것을 생각하니 참 불쌍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밑에서 따뜻하게 죽지도 못하고 그렇게 죽는 것은 참으로 못 볼일입니다.
5월 20일 목요일
오늘 국회의원 선거의 마지막이라고 씨름하는 사람같이 아우성 치고 다닙니다. 학교에는 여러사람들이 아침부터 열을 지어 섰습니다. 길에서 정성태 찍으십시오, 박철웅 찍으십시오 하고 외치며 가는 사람마다 표를 줍니다.
5월 21일 금요일
호남신문 호외가 왔는데, 정성태씨가 국회의원이 되었습니다. 나는 증조 할아버지 하고 내기했습니다. 할아버지는 박철웅 씨가 된다고 하시고, 나는 정성태씨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이겼습니다. 만세~
부슬부슬 비가 내립니다. 오후에 학교 갈 때 비가 왔습니다. 다른때는 어머니가 우산을 받쳐 주셨지만 어머니도 안오셔서 비를 맞고 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선생님이 우산을 쓰시고 우리집 앞으로 지나 가셨습니다. 나는 선생님 하고 불렀습니다. 선생님이 가실 때 불으신다고 하셨습니다.
나는 좋아서 얼른 옷을 입고 가방을 메고 귀를 쫑긋하고 선생님의 소리만 기다렸습니다. 학교에 가니 선생님께서 도화지 열장주시며 1학년 9반교실에 가서 미술 그리라고 하셨습니다.
5월 22일 토요일
비가 자주오니까 썩은 판자굴뚝에 하얀 버섯이 핍니다. 판자 기둥으로 달팽이가 기어올라 가고 있습니다. 비오기 전에 부는 바람은 따뜻하고 비개인후 바람은 머리 아플 때 물수건 올려논 것 같이 시원합니다.
5월 23일 일요일
오전에 부지런히 공부해놓고 학교에 가서 실융이 하고 토끼장속에서 옛날 이야기 하며 놀았습니다. 토끼는 제세상이다 하고 홀딱홀딱 뛰다가 주둥이를 오물오물 풀을 먹습니다.
“토끼 귀는 안테나
라디오 없어도 음악 들리지?
토끼 눈은 빨간보석
누나 반지 했으면
토끼 꽁지 잘라서
새색시 연지 찍는 것 만들지
토끼똥은 검정콩
아가는 모르고 주워 먹을지도 몰라.”
5월 24일 월요일
오늘 아침 비가 와서 학교 가는 길에 한강이 되어 길을 막았습니다. 누나가 사생공책 살려고 어머니 한테 돈 10환을 타가지고 판매부앞에 왔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10환짜리를 안사고 5환짜리 공책한권하고 5환짜리 연필 한자루를 사서 나를 주었습니다. 나는 이제부터 절대 쌈 안한다고 내 마음하고 굳게 약속했습니다.
5월 25일 화요일
오늘 학교 가니 아이들이 변소 가고 밖에서 놀고 있습니다. 시간에 선생님께서 카드를 1부터 20까지 깨끗이 만들어 가지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집에 와서 부지런히 만들었습니다. 나는 좋아서 어쩔줄을 몰랐습니다. 나는 이것을 쭉 늘어놓아 보았습니다. 어머니가 와보시고 근사하다고 하셨습니다. 나는 작은방으로 가서 동선이 아저씨한테 가서 자랑하며 카드를 가지고 재미있게 카드놀이를 하였습니다.
6월 14일 월요일
우리 앞집 학생이 망원경을 가지고 와서 나를 보여주었습니다. 나는 망원경을 내 눈에 대니까 먼 산에 있던 조선대학교가 갑자기 내 눈 앞에 와있고 산도 내 앞에 바짝 와서 가로 막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망원경을 한 손으로 든 채 나는 조선대학을 만져 볼려고 손을 쑥 내밀었습니다. 그랬더니 아무리 손을 저어도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망원경을 떼니까 도로 저 멀리로 달아났습니다. 하도 이상해서 나는 멍하니 먼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밤에는 망원경을 가지고 높은 산위에 올라가서 꽃동산이 있고 경치좋은 궁전을 바라본 꿈을 꾸었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어찌 다시 짜게 하리오.
후에는 쓸 데 없이 밖에 버려
사람에게 밟힘이 되리!
-聖句-
볼려고 하는 자에게는
충분한 빛이 있고
보지 않으려고 눈을 감는 자에게는
어둠이 있을 뿐이다
-파스칼-
6월 27일 일요일
석류꽃
나는 석류나무 밑
돌 위에 앉아 책을 읽는다
책 위에 석류잎 그림자
아롱 아롱
눈이 보시다
툭 머리를 때린다
깜짝 놀라서 석류나무 쳐다보는
코등을 또 톡 때리고
석류꽃은 굴러 떨어진다
겨운낮 마당엔...
메리가 졸고 있다
-지난 일요일 선생님 댁에서
7월 14일 수요일
오늘은 시험 보는 날이었다. 나는 아침부터 부지런히 공부해 가지고 오후에 학교 가보니 아이들이 삥 둘러 싸고 있었습니다. 그곳으로 뛰어가 본즉 박영렬이하고 강대영하고 사나운 장닭 같이 주먹을 국 쥐고 둘이 마주서서 성이 나 가지고 눈을 뚝 뜨고 쏘아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나는 아이들을 헤치고 뛰어 들어가 강대영이를 저 멀리 떼어다 놓고 하하하, 하고 웃었더니 싸움하던 아이들까지도 따라 웃었습니다.
저녁에 뒷집 봉우가 병아리 한권[* 학교 문집이었을 것이다?!] 주며 너희 선생님이 너 주라고 하시더라. 하고 가져왔습니다.
나는 밥먹는 것도 잊어버렸습니다. 차근차근 읽어보니 내 것도 있었습니다. 나는 어쩐지 부끄러웠습니다.
9월 3일 금요일
오늘 전람회가 시작되자 우리들은 차례차례 전람회 구경을 하였습니다. 내 것이 특선이라는 말을 듣고 보니 5학년 언니들것이 더 잘된 것 같이 보였습니다. 그중에도 (부처님)하고 (푸른 포도), (두살 짜리)는 퍽 좋았습니다. 이 다음에는 노력해서 더 좋은 시를 쓰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집에 오면서 어머니가 특선한 상으로 꽃삽과 공을 사주셨습니다. 나는 꽃삽, 장난감, 공, 필통 모두 다 가지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중에서 한 가지 고르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꽃삽을 고른 이유는 이 꽃삽으로 꽃나무를 심어서 좋은꽃을 피워가지고 내마음도 이렇게 다스리려는 뜻입니다. 내가 어른이 되어서도 이 꽃삽으로 꽃을 심고 이사를 가도 언제나 나를 따라 다닐것입니다.
9월 4일 토요일
오늘은 토요일입니다. 토요일마다 아침에 다녔는데 이번에는 언제 갈는지 몰라서 학교에 가보니 우리반은 꼭 두 명 밖에 없었습니다. 조금 있다 어머니가 오셔서 오늘은 오후에 온다고 하셨습니다. 집에 안가고 남진이 집에 가서 놀다가 해가 서산에 넘어간 뒤에 집에 와서 어머니한테 매를 맞었습니다.
서리온 아침
따뜻한 이불속에서
나오기 싫은 아침
문틈으로 들어오는
두부찌개 냄새 구수하다
지붕에 보얗게
첫 서리왔다
밥짓는 어머니 손시릴가봐
어제밤에 누가와서
끄려놨는가
우물에선 모락모락 김이
나온다.
위의 일기는 두번째 권으로 표지가 떨어져 나갔다.
대신 세번째 일기의 표지를 스캔했는데 오직 당시의 노트가 어떻게 생겼는지 그것이 흥미롭다.
* 落張이 많은 日記는 당시의 맞춤법과 띄어쓰기 잘못 쓴 글씨 등을 그대로 두었다. 당연히 이 日記를 公開할 생각이 없었는데 어느 초등학교 선생님께서 ‘...비가 자주오니까 썩은 판자굴뚝에 하얀 버섯이 핍니다. 판자 기둥으로 달팽이가 기어올라 가고 있습니다. ...’ 이 구절을 보시고 칭찬하셨다. 이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옮겨본다. 지금 네 살짜리 머시깽이가 ‘할아버지 잡수세요!’하고 딸기와 사과를 가져왔다. 이 아이가 일기를 쓰기 바라면서... 이 일기를 타이핑하는데 안동대학교 민속학과 이상윤 군이 수고를아끼지 않았고 그는 '주막의 등불' 카페에 '나른한 태엽'이라는 제목으로 그 일상을 연재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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