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에서... 미술관에서...

베를린의 브뤼케[다리파]미술관[2]...키르히너 등

양효성 2016. 11. 30. 16:27

        베를린의 브뤼케[다리파]미술관[2]

 

독일표현주의 미술이라고 하는 편이 좀 더 쉬울까? 미술관에 있는 그림 몇 점을 더...

 

드레스덴의 고등공업학교 학생이었던 키르히너Ernst- Kirchner(1880~1938), 헤켈Erich-Heckel 슈미트-로틀루프 Karl Schmidt-Rottluff(1884~1976) 등이 1905년에 창립한 다리파[Die Brücke]에는 프리츠 블라일, 막스 페히슈타인, 오토 뮐러, 에밀 놀데 등이 가세했다고 한다.

 

앞서 소개한 잔센주 켐니츠 근교의 로틀로푸에서 태어난 칼 슈미트-로틀루프 Karl Schmidt-Rottluff(1884~1976)와 더불어 이 미술관의 몇 작품을 소개한다.

 

Ernst Ludwig Kirchner

출생일 1880. 5. 6, 독일 바이에른 아샤펜베르크

사망일 1938. 6. 15, 스위스 다보스 근처

 

표현주의 미술가 그룹인 브뤼케파를 이끈 인물로서 심리적 긴장과 에로티시즘으로 가득한 작품으로 유명했다. 1898년 키르히너는 독일의 후기 고딕기의 미술가들, 특히 그에게 일생 동안 영향을 미친 뒤러의 판화에 감명을 받았다. 그러나 유겐트스틸 운동과 노르웨이의 표현주의 화가 에드바르트 뭉크의 동적인 화풍을 더해 단순한 형태와 밝은 색을 즐겨 사용하였는데 1904년 아프리카와 폴리네시아의 미술을 접하게 되면서 더욱 가속화되었다. 키르히너에게 있어서 진정한 미술은 내면세계의 갈등을 직접적이고 강렬하게 시각적인 매체로 나타내는 것이었다.

 

1898년 키르히너는 독일의 후기 고딕기의 미술가들, 특히 그에게 일생 동안 영향을 미친 뒤러의 판화에 감명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유겐트스틸 운동과 노르웨이의 표현주의 화가 에드바르트 뭉크의 동적인 화풍에 영향을 받아 단순한 형태와 밝은색을 사용하게 되었다.

 

1911'브뤼케' 회원들은 베를린으로 활동지를 옮겼으며, 키르히너는 그곳에서 제1차 세계대전 전에 독일의 주요한 전위잡지인 질풍 Der Sturm을 위해 훌륭한 목판화들을 제작했다.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의 소설 슐레밀 기담 Peter Schlemihl's wundersame Geschichte(1915)과 표현주의 시인 게오르크 하임의 시 움브라 비타이 Umbra Vitae(1924)에 실려 있는 그의 삽화들은 20세기의 가장 뛰어난 동판화로 평가된다. 키르히너는 정신과 육체가 쇠약해지자 스위스로 갔다. 그의 후기 풍경화들은 대개 우의적이며 문명에 시달리지 않고 자연과 함께 평화롭게 지내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오랫동안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나치가 그의 작품을 '퇴폐적'이라고 공표하자 자살했다.

 

Otto Müller

출생 1874, 독일 리바우 - 사망 1930. 9. 24, 브레슬라우

 

표현주의 운동의 일원이었던 독일의 화가·판화가.

특히 누드와 집시 여인을 소재로 한 특색있는 그림으로 유명하다. 1910년 드레스덴에 기반을 둔 표현주의 화가 그룹 '다리파'(Die Brücke)에 참여했을 당시 그의 작품에서는 독일의 아르누보 운동인 '유겐트 슈틸풍'의 곡선의 영향이 돋보였다. 그러나 과격하게 길쭉한 인물 표현은 표현주의 조각가 빌헬름 렘부르크 작품과 유사하다.

 

그는 1919년부터 내내 브레슬라우에서 교편을 잡았다. 다른 많은 현대 독일화가들의 작품처럼 그의 작품은 1933년 나치 정권이 독일을 장악했을 때 '퇴폐주의'라는 낙인이 찍혔다.

 

 

에밀놀데Emil Nolde

1867. 8. 7 독일 부르크할트 근처 놀데~ 1956. 4. 15 니뷜 근처 제뷜[seebüuell].

 

독일의 표현주의 화가·판화가·수채화가.

 

격정적인 종교화와 불길한 분위기를 담은 풍경화로 유명하다. 종교에 열광하고 죄의식에 괴로워한 그는 황금 송아지를 에워싼 춤 Dance Around the Golden Calf(1910, 뮌헨에 있는 바이에른 국립회화미술관알렉산드리아 항구 In the Port of Alexandria와 같은 작품을 제작했다. 알렉산드리아 항구 In the Port of Alexandria는 연작 이집트인 성모 마리아의 전설 The Legend of St. Maria Aegyptica(1912, 함부르크 미술관) 중의 하나인데, 이 연작은 등장인물들의 에로틱한 광란, 그리고 악마 같고 가면을 쓴 것 같은 얼굴들을 거친 도안과 조화되지 않는 색조로 그렸다. 9폭의 폴립티크(polyptych성단의 배후 등에 4패 이상의 패널을 이어 맞춘 화상)예수의 생애 The Life of Christ(1911~12, 제뷜 아다와 에밀 놀데 재단) 의심하는 도마 Doubting Thomas에는 예수의 상처를 보고 도마가 느끼는 경건한 두려움을 통해 종교적 회의에서 벗어나려는 그 자신의 고민이 표현되어 있다. 1913~14년 그는 민족학 탐험대의 일원으로 동인도에 갔다. 그곳에서 그는 소박한 신앙에 감명을 받고, 그 느낌을 석판화 무희 Dancer(1913)에 표현했다.

 

이상은 다음백과의 에밀 놀데인데 그냥 한 작품에 표현된 그의 기질을 가감없이 받아들이는 것이 더 맛깔스러울지 모르겠다.

덴마크와의 접경 해변인 에밀놀데가 만년을 보낸 제뷜[seebüuell]에는 놀데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 같다. 미술관 로비에는 안내 리플릿이 준비되어 있다.

작품 한 점 [Ein Werk]

집 한 채 [Ein Haus]

한 화가의 삶[Ein Leben]

 

그리고 제뷜[seebüuell]畵室(화실)을 방문하는 것은 미술관을 찾는 것 그 이상이라는...표어를 내걸고 있다. 그 하늘에 펼쳐지는 노을의 조화는 어찌 보면 놀데의 화폭을 예비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키르히너의 나부

 

키르히너-

오토 뮐러...

오토 뮐러...

오토 뮐러

칼 슈미트 로틀로프의 사인이 선명하다.

 

에밀 놀데의 격정적 붓놀림과 폭발할듯한 색채...

 

놀데-

 

놀데-

 

칼 슈미트...묵화를 연상케 하는...

칼 슈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