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모음

金洙暎의 詩와 時間 - 詩와 詩人의 얼굴

양효성 2016. 10. 21. 04:08

            金洙暎時間

 

                                  詩詩人의 얼굴 -

 

* 114일은 광주학생의날 기념일인 113일 다음날이다. 1965114일에 김수영은 어느날 古宮을 나오면서라는 시를 쓴 것으로 민음사 김수영전집에 나와 있다.

 

1965년 서리 내린 늦가을에

열아홉 少女

김수영의 를 읽은 소녀가 있었네...

어느날 古宮을 나오면서

 

1965년 서리 내린 첫 겨울에

열아홉 少年

덕수궁 돌담길 낙엽을 밟으면서

김수영의 를 모르는 소년이 있었네...

어느날 古宮을 나오면서

 

돌담길은 길게 이어져 있었네.

누구도 그 돌담 안을 드려다 볼 수 없었네...

발돋음 하려는 意志가 없었기에...

발돋음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었기에...

 

긴 줄은 國際空港에도

긴 줄은 페리埠頭에도

긴 줄은 東西南에도

늘어 서 있었는데...

 

아무도 발돋움하려 하지 않았네...

새치기 하는 사람도 없었네...

 

모두들 自由를 반납하는

그 긴 줄에서

모두들 隱匿旅券을 들고

구두를 벗고

양팔을 들고

- 마치 만세를 부르듯이 양 팔을 들고...

- 마치 반드시 돌아오겠다고 맹세를 하듯 양 팔을 들고...

모두들 自由를 반납하는

出入口에서

웃음인지

비웃음인지

슬픔인지

亡命인지

무슨무슨 드림인지

그런 표정을 짓고 있었지...

 

굳이 檢索臺

서지 않더라도...

國會에서도

官公署에서도

衛兵所에서도

象牙에서도

심지어 집으로 돌아가는 아파트 守衛室에서도

自由를 반납하는 그 긴 줄은 끝이 보이지 않았네...

 

2016년 가을에

그러니까 丙申年 霜降

1965년 열아홉 그 소녀가 아니라...

2016년 가을에 열아홉 된 소녀가...

김수영의 를 읽어 주었네....

어느날 古宮을 나오면서

 

때묻지 않은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가녀린 목소리로..

따박따박...

 

김수영의 를 읽어 주었네....

어느날 古宮을 나오면서

이미 自由返納해버린

旅券도 없는...

白髮

1965년에 열아홉이었던 소년에게...

 

 

어느 날 古宮을 나오면서

金洙暎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王宮 대신에 王宮의 음탕 대신에

五十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越南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二十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情緖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第十四野戰病院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스들과 스펀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펀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무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絶頂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 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 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二十원 때문에 원 때문에 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작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작으냐

정말 얼마큼 작으냐……

 

   

우리에겐 머물렀으면 하는 시간도 있고...

디딤돌이 되었으면 하는 그런 시간도 있다...

꼭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친구인지 김수영의의 시를 그리워하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