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촌가는길

길 없는 길

양효성 2014. 12. 14. 10:58

 

길 없는 길

 

1.

往年에 우리 집 땅을 안 밟고 다닌 사람이 없었다.’는 동네말이 무슨 뜻인지 시골살이를 하면서 처음 알게 되었다. 궁금하다면 대강 지금 마을안길이라든지 그리고 고샅이라든지 새마을도로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길을 걸어보면 어름어름 고개를 끄덕일 것이고 지적도와 토지대장을 떼어 보면 좀 분명해질 것이다. 지도에는 분명 길로 되어 있지만 지적도를 떼어보면 百結先生이나 性徹스님 누더기처럼 이리저리 잘린 길은 인근 주민들의 논밭을 도려낸 것으로 토지대장의 소유주들이 그 주인들이다.

그러니 지금도 남의 땅을 밟고 다니는 셈인데 희안한 것은 그 주인들 대부분이 유령이라는 것이다. 어떤 길조각[누더기 조각이라고 해야하나? 퀼트길이라고 해야하나? 어쨌든... ]은 도시로 떠나 이곳에 땅이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돌아가신 할아버지나 고조할머니의 것이어서 이 분들은 저승에서도 이 길조각을 쥐고 있는 셈이니 어찌 편히 잠들 수 있겠는가? 선생이 나서서 이 일을 정리하려해도 고조할머니의 자손이 얼마인데 그 사람들 도장을 다 받고 그 복잡한 상속법의 관문을 뚫고 토지대장을 정리할 수 있겠는가? 이 퀼트길을 따라 오리를 더 들어가야 옴팡집이 나오는 선생은 한마디로 盲地[맹지]에 사는 셈이니 길 이야기만 나오면 가슴이 오그라든다. 국민학교[일제 때는 小學校, 요즘엔 初等學校라고들 부르지만 어디까지나 선생에게는 국민을 위한 국민의 학교다.]뒷담을 따라 와곡다리를 건너고 축사를 따라 가다가 다시 와곡2교를 건너 봉황천과 개죽천이 합수되는 지점을 돌면서 개죽천에 걸쳐놓은 시멘트 암거를 건너서 또 한참을 산기슭을 더듬어야 그의 옴팡집추녀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병천이나 입장의 시장에라도 다녀온 밤이면 꿈속에서 갈라진 얼음장을 디디다 동태가 되는 심봉사를 본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어째 그리 마음이 약허유?! - 한번 난 길은 나랏님도 못 막는 기유!!’

동네 사람이 핀잔을 주어도 평생 小學을 쥐고 사는 선생은 드디어 콩당콩당 가슴이 뛰는 자각증세로 병원에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 또 가슴앓이를 하게 되었다.

 

2.

그런데 갑자기 그 길이 빠꼼하게 터졌다. 200미터의 학교 뒷길인데...그만! 곰씨네 집 앞에서는 예 그대로다. 아무튼 길이 터지고 나니 이게 무슨 영문인가 싶어 공선생은 또 다시 가슴이 콩당콩당 뛰기 시작했다.

- ... 살다보니 별 일도 다 있네? 이게 먼 일이여?!... -

 

 

 

이 그림만 보면 저 학교 뒤에 마을이 있을 것 같지 않다.

 

 

그림의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급하게 우회전하면서 길은 이어진다.

 

 

내리막에 논밭이 보이지만 비탈 왼쪽으로 10여호의 집이 있고 개울 건너 다리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