仁川 時事

2010년 除夜의 종소리...갈등의 해소

양효성 2011. 3. 1. 13:35

 

         2010년 除夜의 종소리...갈등의 해소

 

 

 

  올해 새로 인천시장이 서고 광저우에서 아시안게임 깃발을 들고 광저우에서 돌아왔다. 환율과 집값이 안정되고 무역은 사상 최대의 흑자에 코스피는 2000을 돌파하고 대통령은 G20의 중심에 섰다. 의욕과 성과의 한해였음에도 연말의 거리는 쓸쓸하다. 자유시장체제가 성장의 과실만큼 그늘도 있을 수 있고 과도한 노동과 경쟁의 피로에 따른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는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지만 인간관계가 삭막해진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반만년을 흐르던 국토의 강줄기는 파헤쳐지고 정찰기의 추락과 각종 크고 작은 재난에 구제역과 연안어선 조업제한 날치기파동 정치인사찰 등등 서민의 마음은 어둡다. 무상급식과 체벌금지와 교실의 붕괴도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게 만든다.

 

 

  새 총리는 지역 종교 세대 빈부 등등의 갈등을 해소하는데 기여하기를 바라며 국민과의 疏通으로 집무를 시작했다. 그러나 사회의 갈등을 해소한다는 목적으로 출범했던 위원회가 삐걱거리고 인권을 존중한다는 위원회는 오히려 인권을 훼손한다는 뒷말이 무성하다. 사회가 평등의 가치를 지키려면 개개인의 정체성이 정립되어야 하고 그 정체성이 상호 존중되어야 한다. 사람이란 누구에게나 공유하는 보편성이 있는가하면 완전히 일체가 될 수 없는 개성이 있어서 공유하는 부분을 중점 부각함으로써 한 사회를 풍부하게 할 수 있는데 이것을 우리는 共感帶라고 부른다. 공감대는 OX가 아니라 ⧍다.

 

 

  그러나 생각이 다른 상대방을 무시하고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밀어붙이면서 시민들은 서로 피로했다. 이제 한걸음 물러서서 공통점을 찾으려 힘써보자! 보수란 적어도 지켜야할 가치가 뚜렷하고 연륜이 있을 때에 성립되는 말이다. 뿌리나 밑천을 훑어보면 쥐뿔도 없어 보이는 주제가 하루아침에 깃발만 들고 나선다고 보수가 될 수 없을뿐더러 거리에 나선다고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진보가 서민의 지지를 얻어내기는 힘들다. 각자 자신의 주장을 분명히 하고 타협의 여지를 생각해야 한다. 무리한 주장이나 억지의 판단은 누가 무어라 해도 국민의 몫이다.

 

 

  무엇보다 헌법이 보장한 종교의 상호존중은 반드시 회복되어야 한다.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교회당만 바라보면 왠지 구원될 것 같고 기꺼이 구세군의 냄비에 성금을 내고 지나가지 않는가? 산사에서 울리는 종소리는 방황하는 마음을 가다듬어 주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이슬람을 화면에서 만나면 중동에 평화가 올 것 같은 희망을 품게 된다. 우리의 憲法에는 宗敎와 思想의 自由가 명시되어 있고 그 바탕에는 상호 존중이 깔려 있지 배타와 증오의 보자기가 덮여있는 것은 아니다. 사회의 지도자들이 갈등을 조장한다면 이는 헌법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일이다. 공자는 ‘덕은 반드시 이웃이 있다(德不孤必有隣)’고 했고 예수는 이웃뿐만 아니라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했다. 사탄이 있을 수 있다면 오히려 주예수를 빌려 사욕을 채우고 악행을 저지르는 자들이다. 다행히 조계사에 크리스마스트리가 세워지며 성자들은 민생에 종파가 따로 없다는 따스한 손을 내밀었다. 부디 그 손을 뿌리치지 말고 그 불빛을 실마리로 군사 외교 교육 등등 각계가 서로를 존중하며 묵은 때를 씻으며 제야의 종소리를 들었으면 한다. <*>

 

** 묵은 글이다. 어제 명동을 지나갔다. 성당을 바라보며 이 글이 생각났다.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교회당만 바라보면 왠지 구원될 것 같고

기꺼이 구세군의 냄비에 성금을 내고 지나가지 않는가?

 

 

건너편에는 한경직 목사로 이름난 영락교회

 

그 은행나무에는 까치집도 겨울을 나고 봄을 기다리고 있었다.

 

밤은 깊어도 그 시계는 멈추지 않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