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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와 대마도[影島 對 馬島]-3. 조선통신사 公式路程(루트)

양효성 2015. 7. 9. 08:19

     영도와 대마도[影島 對 馬島]-

3. 조선통신사 公式路程(루트)

 

대마도라는 이름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마도(馬島)하고 있는(마주보고 있는) 을 줄여 대마도(對 馬島)’가 된 것인데, 그렇다면 마도는 어디에 있을까? 영도가 바로 그 마도다. 왜 그런가? 영도의 본명은 絶影逸馬島[절영일마도]’였는데 줄여서 絶影島[절영도]라고 하다가 아주 줄여 影島[영도]가 되었다. 지금 쓰시마는 영도를 마주하든 절영일마도를 마주하든 부산 쪽을 마주하고 있는 섬이라는 사실은 틀림이 없다. 그래서 그런지 대마도의 北端인 히다까스[比田勝]에 가면 영도[影島]가 마주 보이고 한국과 핸드폰으로 통화도 되고 당연히 영도에서 이 섬이 바라다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영도의 본명인 절영일마도이야기도 좀 붙여두어야 하지 않을까? 빛처럼 빠르게...즉 그림자를 끊고 달리는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 빼어난 말이 절영일마[絶影逸馬]’인데 그 말을 기르는 섬이니까 절영일마도라고 부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증거가 있는가? 대동여지도에는 絶影그리고 이라는 글자가 보인다. ‘목장이라는 말이고 당연히 말[]을 길렀다는 뜻이다. 그 말이 絶影逸馬이고 絶影’[절영]이라고 새겨둔 곳은 절영도, 즉 영도다.

 

일본 사람들에게 말[]은 또 어떤 의미였을까? 두 다리로 걷는 것 빼고는 문명의 교통수단이 없던 시절에 말[]이야말로 그들에게는 교통의 혁명이었다. []뿐만 아니라 대륙의 문물이 대마도를 통하지 않고는 일본에 전해질 수 없었으니 그만큼 일본인에게는 이 쓸모없는 섬이 문명의 젖줄과 보석함의 열쇠구실을 함께 한 太陽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당연히 대마도의 박물관에는 떠나온 항구 부산의 왜관도도 있고 그 왜관에서 외교의 근본은 믿음이라는 성신교린을 실천한 雨森芳州[아메노모리 호오슈]의 초상화도 있고 또 그의 저서 交隣提醒[교린제성]도 판매하고 있다. 집집마다 풍어를 기리는 고이노보리(のぼり)도 바닷바람을 타는가 하면 길에는 조선통신사가 지나간 길에 紀念角柱도 세워놓고 있다.

 

10여 차례 동경에 간 조선통신사들은 모두 부산에서 직선으로 40km에 불과한 이 징검다리섬에 닻을 내리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주민이 4만 명도 안 되는 대마도에 연간 4만 명의 한국인이 방문한다니 이 또한 놀랍지만 2014년도에 일본을 방문한 275만 명의 한국인들이 100년전 이라면 모두 이 섬을 지나야했었다면 또 어떤 생각이 들까?

 

一衣帶水 - 대한해협을 허리띠 삼은 한일관계에 대마도는 버클[帶鉤]같은 구실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어찌 보면 한일양대국 사이의 제3국처럼 에도와 한성사이의 외교적 조율도 하고 그간의 통상무역은 말할 필요도 없지만 바람을 기다리며 항해일정도 조율하고 그 사이 의술이나 시화 마상재 등등 문화교류도 했었으니까...

 

아무튼 이 글은 조선통신사의 공식루투설정에 앞서 워밍업이랄까 그런 前提 구실을 하는 셈이니까 이제 본론으로 직행하기로 하자. 水路의 기항지를 기술하는데 집중해야하는데 불시에 배를 대야하는 피항지가 아닌 공식항로 또는 공식 기항지가 있었느냐 하는 것 - 아울러 우리가 대마도를 경유할 경우 입국심사를 하고 부산에서 출항할 때 출국심사를 하듯 대략 여섯 척의 배에 어떤 인원이 어떤 화물을 싣고 어떻게 운항했는지- 그 사이 휴대폰이나 무전시설이 없던 시절 행정연락은 어떻게 했는지 등등...그 당시의 기록을 중심으로 다음 회에 재구성해보기로 하자.<*>

 

대동여지도에는 해운대-오륙도-영가대-부산포-두모포 등등 부산의 명소는 모두 나온다.

바다에 '절영'이라는 곳이 영도이고 '목'이 말을 기르는 목장이라는 의미다.

가까이 가보면 우리 남해안의 어느 섬 어느 해안같은 느낌이 드는데...

 

이즈하라의 이 배는 이끼섬을 경유해서 후꾸오까로 가는 여객선...

대한해협에 떠있는 등대와 같은 섬- 대마도를 이 배는 실감케 한다.

대마도 이즈하라 시청

10년전 묵었던 민박 '쯔쯔'

민박 쯔쯔의 마즌편 이번에 묵었던 호텔 '마루야'

이즈하라 그 옛날의 등대

풍어-고이노보리는 댓가지에서 바람을 타고...

1811년 조선통신사의 길- 영접장소

박물관에는 마상재 두루마리가 잘 보존되어 있고....

이즈하라 성

이즈하라의 역사...

조선통신사 관계 서적

대마풍토기

교림제성의 본문

왜관도 1678년 이설된 초량왜관

아메노모리호오슈의 초상

뒤에 유명산이 ...

연간 4만명의 대마 방문객은 이렇게 페리를 타고...[2층객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