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의 10일간
[1] 제1일 1월1일
2004년 1월1일 어머니는 이미 저 세상으로 가시고 나는 仁川 國際空港에 있다. 나를 낳아준 어머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나에게 生命을 주었으니 그 생명을 거두어 가는 것도 어머니일 것이라는..
11時 滿席의 에어버스는 4,000㎞의 말레이시아를 향해 6시간 30분의 비행에 들어간다. 말레이시아 항공은 처음이다. 스튜어데스의 가무잡잡한 얼굴과 붉은 꽃으로 수놓은 옥색 투피스가 異國的이다. 쿠알라가 30度라면 1시간마다 약 5度씩 더워지는 것일까? 몇 겹으로 껴입은 옷들은 하나씩 벗으면 된다. 겨울에서 여름으로 가는 여행!
아내를 시켜 보험을 들게 했지만 자세한 것은 묻지 않았다. 단 둘이 남은 우리는 지금 함께 飛行機에 타고 있다. 언제부터인지 비행기가 흔들리는 것이 두렵다. 타이완의 玉山에서 輕飛行機가 에어포켓에 걸렸을 때는 오히려 신이 났었는데...옆자리의 자리가 비좁은 중년 夫人은 싱가포르의 접경 조호바루에 사는 華僑! 한국여행은 처음이라는데 별 감동이 없다. ‘쇼핑! 쇼핑!’하면서 정작 산 것도 없고 기억하는 곳도 없다. 나보고 어디 가느냐고 묻는다.
-랭커위이!
-오! 랑까위!!
영어식으로 한껏 멋을 부려 길게 발음했더니 아주 짧게 ‘위’에 聲調를 넣어 대답한다. 이제부터는 ‘랑까위’다. 한 때는 비행기를 타면 기내식이 期待되었는데 말레이식 국수에 생선과 농협김치 배는 고픈데 입맛은 없다. 비행 전날에는 짐도 쌀 겸 일부러 잠을 줄여 갇혀있는 지루한 시간을 食困症과 함께 때우기로 한다. 깨어보니 겨우 臺灣을 지나고 있다. 時差를 한 시간 뒤로 조정하고 권하는 맥주를 마신다. 紺色캔에 Tiger! 호랑이라고 씌어있다. 야간 쌉쌀하면서도 부드러운 맛! 칼스버그와 기린비어의 중간쯤 될까? 땅콩 안주도 고소하다. 상냥하고 예의바른 여승무원이 뜻밖에 한국말을 한다. 대한항공과 말레이시아 항공이 공동운영하기 때문에 파견근무중이라고...맥주를 칭찬했더니 내릴 때 이슬이 맺힌 타이거 다섯 캔과 땅콩을 媚笑로 포장해서 건네준다. 참으로 오랜만에 인정을 느낀다.
오후 5시30분 석양의 공항에 내리고 보니 時差보다는 30度의 溫度差가 문제다. 아니지-그 溫度差異 때문에 이 赤道여행을 떠난 것이 아닌가?
국제 공항은 한가해 보인다. 쿠알라 신공항은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모노레일을 타고 국내선 청사로 옮겨 계단을 내려온 뒤 히잡을 쓴 여인에게 여권을 제시하고 긴장한다. 북경-후꾸오까-뉴욕-함부르그 공항 어디에서건 이 알 수 없는 두려운 머뭇거림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인가?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데 두려움을 심어준 것은 누구인가? 문화의 발달은 이 최초의 접촉이 주는 두려움의 두께에서 판가름 날 것이다. 입국심사는 너무나 간단히 끝났다. 앞으로 반갑게 인사할 태도를 기르자!
아내와 둘이서 랑까위 까지 가야할 길이 걱정되어 그 히잡을 놓쳤지만 나는 이미 이스람의 나라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국내선 라인의 긴 복도는 閑暇하다. 대형 유리창밖엔 적도의 太陽과 웃자란 闊葉喬木이 적도의 태양을 뽐내고 있는데 에어컨이 작동하는 실내는 검고 희고 크고 작고 마르고 살찌고 런닝셔츠에 온몸을 감춘 이스람여인에 우리 같은 초겨울의 복장 등 세계의 모든 인종이 모인 난민촌 같다. 다만 표정이 밝은 것만이 常夏의 햇빛과 닮았다. 이 기묘한 장면을 카메라에 담을 여유가 없다. 10여분의 여유! 담배를 피울 시간은 없다.
가게에서 한 권의 책이 눈에 들어온다. 묵직한 목공예 사진첩인데...나는 그 親近한 연꽃 透刻문양에 놀란다. 우리 절의 천장 문짝 어디서나 보는 그 부드러운 線과 깊고 엷은 陰影...그 한 장의 蓮꽃 때문에 얼른 그 책장을 넘긴다. 펜화로 纖細하고 精誠스럽게 圖案을 그려놓고 조각의 과정이 자세하게 실려있다. 나는 古典의 復活을 본다. 사실 이번 여행은 아내를 위한 것이다. 한번만은 이제 할머니가 되면 돌이킬 수 없는 아내만의 中年卒業을 아쉬워하는 休養旅行을 하는 것이 속내이니까...그래도 일본문화와 한국문화의 源流에 대한 잠재의식은 자극만 받으면 雨後竹筍처럼 到處에서 불끈불끈 뿔을 내민다. 나는 그 책을 들었다 놓았다 한다. 100$을 몇 번 되뇌어 보면서...그리고 짐의 핑계보다는 쿠알라에 가면 더 좋은 책이 있겠지?! 그러나 이런 豫想은 번번히 어긋난다. 내 기준의 국가 랭킹은 GDP가 아닌 GDCP(Culture)-즉 地域內문화총생산이고 특히 그 지식의 결실인 책의 생산에 있으니까? 문화대국의 출판의 특징은 1) 책값이 비싸다 2) 전문서적이 많다-그러니까 30部도 출판하고 限定本도 많다 3) 출판되자말자 희귀본이 된다-再版을 안하는 경우가 많다. 이 삼자의 구조는 상호 필연의 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북경의 琉璃廠에서 明末의 辭典을 한 권 산 일이 있다. 나는 일생 일대의 巨金을 ‘너무 비싼데!!’라는 한 마디를 덧붙여 支拂했다. 그러자 주인은 책을 포장하면서 웃었다. ‘다 읽고 가져오세요-언제든지 덧붙여 살게요!!’. 歲月이 책값을 더한다는 생각-그리고 당신이
가무잡잡한 얼굴에 하얀 이로 웃는 상긋한 종업원들은 겨울나그네의 마음을 녹여준다. 보잉 727 복도식 좌석도 친근하다. 비행기는 印度洋을 바라보고 夕陽을 향해 離陸한다. 안전벨트를 풀고 구름위에서 바라보는 노을은 참으로 아름답다. 7시간의 搭乘-그리고 새벽부터 짐꾸리기-그 피로를 구름의 群舞가 씻어준다. 그림자연극같기도 하고 그랜드캐년의 아이맥스 映畵같기도 하고...거기다가 나는 그리그의 피아노 協奏曲을 그려가면서 꽃무늬로 몸을 가린 이국 소녀가 건네주는 ‘타이가’를 마신다. 꽃구름은 목화농장에 분홍 노을을 만들다가 바벨탑을 세우기도 하고 폭풍을 만들다가 다시 산수화를 그린다. 이번 여행이 순조롭기를..
비행기는 구름속을 뚫고 바다를 선회하며 마중하는 誘導燈을 따라 미끄러진다. 트랩을 내리자 熱風이 몸을 에운다. 이 나이엔 이 溫氣가 그래도 좋다. 사실 이번 여행은 사우나를 걷는 기분이 優先이었으니까. 가이드는 내 비슷한 이름을 들고 한가하게 원주민들과 잡담을 하고 있다. 換錢을 하고 한국관에서 저녁식사를 한다. 가이드는 이 식당을 경영하며 우리같은 손님을 案內도 하는 모양이다.
-오서 오세요! 맛있게 드세요!
말레이 사람들의 시중을 받으며 韓食을 들고 있으니 어쩐지 어색하다.
숙소로 향하는 해변의 포장마차는 불을 밝히고 나그네들은 시원한 음료를 저마다 오른 손에 들고 있다. 파타야의 밤에 비할 것은 못되지만 그야말로 盛市를 이루고 있다. 베네치아 바르셀로나 남국해변의 밤은 모두 이렇게 불을 밝히고 노래하고 서울의 아침처럼 흥성거린다. 주요한의 불놀이 一節이 생각나는 밤이다. 저들은 모두 늦잠을 잘 것이다. 한국과 時差는 거의 없지만 熱帶가 만들어낸 이 시차로 우리는 苦生을 했다. 夜行性인 나는 오히려 고향에 온 듯했지만 30년 出勤으로 遺傳子가 변해버린 집사람은 여행중 내내 이 생활 시간차로 고생을 했다.
-랑까위는 제주도의 4분의 1쯤 되는데 한나절이면 돌아볼 수 있어요! 교민은 11명인데 세대차도 있고 주변은 천국인데...無聊하다는 말일게다. 李箱의 倦怠가 떠오른다. 나는 그 한나절의 倦怠를 찾아 여기 온 것이다.
20여분을 달려 밤의 아와나에 旅裝을 푼다. 그러나 긴 複道를 한참이나 걸어 열고보니 창은 수영장을 향해 열려있다. 正初의 호텔은 북적거린다. 프론트에 정중하게 부탁하여 바다를 바라보며 아침을 맞을 수 있게 되었다. 창문을 여니 밤바다! 颯爽(삽상)한 바람! 그리고 별! 피로는 한 숨에 달아난다. 잠을 이루기는 어렵겠다. 내복을 벗어버리고 촛불이 일렁이는 야외 식당으로 내려간다.
아내는 구아바 쥬스를 나는 타이거를 마신다. 우리는 무슨 이야기인지 드문드문 이야기를 하고 정월 초하루의 열대의 바닷바람을 섞어 마시고 또 촛불을 바라보고 또 마신다. 취하지 않는다. 말레이 사람들은 정말 조용하다. 서로의 눈동자를 바라보고 하얀 이를 드러내 웃고 그리고 조용히 일어선다. 아까부터 하이네켄을 한 캔씩 놓고 아이스크림을 핥으며 청춘 니혼진(日本人)들이 짝을 이뤄 喧騷! 요즈음 젊은애들이 해외에서 버릇없이 군다는 것은 오히려 일본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하도 시끄러워 한마디 한다.
-스미마셍 니혼진데스까?
그들은 그 의미를 모른다. 저희들은 동경에서 왔는데 한국 사람이냐고?! 물으며 한국을 좋아한다고 반가워한다. 島國은 島國일 뿐이다. 한 때 말레이를 占領했고 그 땅에 다시 온 이 젊은이들의 다떼와 혼네는 무엇일까?
우리는 일어나 로비를 지나 밤의 수영장을 거닐어 본다. 파라솔아래 백인들이 모여 술파티를 벌이고 있다. 미풍처럼 속삭이며...우리도 일광욕의자에 누어 하늘의 별을 본다. 별들은 마치 원피스에 묻은 반딧불 무늬 모양 가까이서 구슬처럼 빛난다. 아내는 깜박 잠이 든다...나는 잠시 놓아둔다. 시골집의 한 여름 툇마루에서 자다가 우리는 이슬 때문에 새벽녘에는 어김없이 방으로 기어들곤 했었다. 할 수없이 아내를 깨운다. 그 이슬 없는 상쾌한 잠을 신기해한다. 나무의자의 틈으로 바람은 불어 자장가가 따로 없다. 우리 대나무 平床의 智慧를 나는 다시 생각해본다. 편의 때문에 합판을 깔고 또 닦기 좋게 비닐 장판을 씌웠던 어리석음에 쓴웃음이 나온다. 돌아가서 다시 平床을 만들어야지...
오늘은 쓴 돈이 없다. 지중해풍의 카페에서 한 30링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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